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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나들이 Jun 24. 2024

아무 일의 법칙

올해 들어 세 번째 열무김치다.

열무를 씻고 물기를 빼고 소금에 절이고 뒤집고

양념을 갈고 양념에 버무리고 반나절은 열무 곁에 꼼짝없이 붙어 있어야 한다.

검은색 봉지에 담겨온 열무는 우리 집 냉장고에서 사흘 동안 빈둥댄다.

냉장고를 열 때마다 내가 왜 이걸 사 와서 사서 고생이냐며

투덜거리는 주인의 푸념을 들어야 한다.

기다림에 지친 열무가 잎을 누렇게 만들어버리려는 찰나에

게으른 주인은 그제야 열무를 꺼내 씻기고 소금을 뿌려준다.


물을 만나면 펄펄 살아나 당당하던 푸르던 열무가 소금 한 줌에 몸을 낮춘다.

이렇게 차분하고 참한 것을 보면 느껴지는 안정감이 있다.

그 뻣뻣하던 줄기가 유연해지고 겸손해진다. 닮고 싶은 모습이다.

일할 때는 후회되고 힘들지만

둘러앉은 순간의 따뜻함이 좋아서

건강의 행복을 챙겨주는 든든한 뒷배가 되어주고 싶어서

몇 시간 동안 열무에게 곁을 내어준다.

'아무 일의 법칙'에 따른 열무의 행복이다.


호기롭든 조심스럽든 일을 시작하고 나면 

이 일을 왜 시작했는가에 관한 근본적인 의문과 후회가 밀려들 때가 있다.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도 아니고 큰 이익을 남기는 것도 아닌데

뭐 하려고 이렇게 일을 크게 벌였나,

그냥 편하게 살면 될 것을,

일을 벌이지 않아도 아무 일 없이 살 수 있는 것을

시작했냐고 반문한다.

그런데 마지막 질문이 조금 걸린다.

"아무 일 없이 살 수 있는 것을."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했다.

일을 벌일 때의 마음은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 인생에 대한 도전이었다. 새로운 것을 원하는 호기심이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무료함을 멀리하려고

아무것을 했던 것이다.

그렇게 스스로에게 설명한다.

그러다 막상 일을 끝내고 그 달 맛을 보고 나면

하기 잘했다고 스스로 대견해한다.

다음에 또 일을 벌이게 되면 똑같이 불평하겠지만

 '아무 일 법칙'을 떠올려 보기로 했다.

아무 일이 일어나라고 도전하고 호기심을 채우는 과정은 '아무 일 법칙'안에서 정당성을 회복한다.



한 줄 요약 :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지 않는 무료함을 멀리하기 위해 아무것을 해본다. 요리든 글쓰기든 저질러본다.


#라라크루 #라이트라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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