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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나들이 Oct 03. 2023

딸바보 아빠와 무뚝뚝한 딸

나를 보이다


일전에 브런치 작가님이 쓴 글을 인상 깊게 읽었다. 항상 지적만 하고 강요하는 부모님 때문에 힘들었다는 내용이었다. 막상 어른이 되고 보니 부모님자식 사랑하는 방법을 몰라서 그랬던 것이라 원망도  수 없어서 힘들다고 했다. '사랑하는 방법을 몰라서'라는 구절에서 우리 아버지가 떠올랐다. 아버지는 반대로 내가 원하지 않는 것까지 해주셔서 나를 난처하게 만드셨다.


 아버지는 결혼 전부터 딸을 간절히 원하셨다고 한다. 엄마가   외갓집에 나를 낳으러 갈 때 아들이 태어나면 편지를 보내고 딸이 태어나면 빠른 전보를 치라고 하셨단다. 아버지는 기다리던 공주님이 태어났다는 전보를 받고는 너무 기뻐서 만세를 부르며 춤을 추셨다고 한다. 아버지는 내게 뭐라도 해주고 싶어 하셨고 나는 아버지의 지나친 관심에 때론 난처하거나 때론 당황스러워했다.


 일례로 대학교 때 있었던 일이다. 당시 나는 학교 근처 반지하주택에서 자취를 하고 있었다. 거실을 가운데 두고 방 4개가 둘러싸고 있는 구조의 집이었다. 어느 날 옆방에 자매 2명이 이사를 왔다. 자매가 방을 같이 쓰다 보니 밤늦게까지 이야기를 하고 어떤 날은 피아노까지 쳐서 잠을 청하기가 힘들었다. 이사 온 지도 얼마 안 됐는데 조용히 해달라고 말하기엔 이후 관계가 걱정되어 그냥 참고 지내기로 했다. 그저 집에 갔을 때 부모님께 하소연하는 게 전부였다. 며칠 뒤 웬일인지 옆방에서 들리던 한밤중 소음이 잦아들었다. 그런데 그 친구들이 나를 보는 눈빛에서 묘한 경계심이 느껴졌다. 영문도 모른 채 며칠이 흘렀다.


"똑 똑, 잠깐 와서 얘기 좀 할 수 있나?"

한 날 저녁 옆방 언니가 불러서 그 방으로 건너갔다.

언니는 어렵게 이야기를 꺼냈다.

"우리가 그렇게 시끄러웠으면 얘기를 하지."

무슨 영문인지 몰라 눈이 동그래진 내게 언니가 자초지종을 털어놨다.

며칠 전 아버지가 오셔서 편지를 주고 가셨다는 것이다. 내가 밤에 잠을 못 자서 힘들어하니 좀 조용히 해달라고 부탁을 하시면서.

 예상치 못한 상황에 너무 놀라고 부끄러워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나한테 말도 안 하고 몰래 다녀가셨다니 너무 당황스러웠다. 그 친구들은 내가 아버지께 부탁한 걸로 오해를 했고 그래서 묘한 분위기기 흘렀던 것이다.


 전혀 몰랐다고 미안하다고 말하는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미안함, 부끄러움, 화 복합적인 감정이 응집된 눈물이었다. 옆방 자매들은 오해해서 미안하다며 앞으로는 조심하겠다고 했다. 이해해 주니 고마웠고 다행히 그 일은 잘 마무리되었다.


 나를 아끼고 걱정해 주시는 건 너무나 고마운데 나의 동의 없이 내 영역에 들어와 우리만의 룰을 깨는  같아 마음이 불편했다. 그때는 아버지의 지나친 관심이 긴 여행의 무거운 가방처럼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부모가 되어 딸을 키워 보니 아버지는 시대를 앞서간 딸바보였다는 생각이 .  딸을 위해 2시간 넘게 버스를 타고 와서 부탁을 하고 가시다니. 몇 년 전까지도 40대가 된 딸에게 '내 목숨보다 소중한 우리 딸 사랑한다'귀여운 문자를 보내시곤 했다. 남편에게 문자를 보여주며 내가 이렇게 귀한 딸이니 잘하라고 장난을 치기도 했다. 


 나이를 먹고 보니 그저 부모님이 건강하게 살아계신 것만 해도 감사하다. 아버지는 내가 커가는 모습을 보는 게 삶의 가장 큰 기쁨이었다고 늘 말씀하시곤 했다. 사랑한다는 말도 자주 해주셨는데 정작 나는 한 번도 아버지께 사랑한다는 말을 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자상한 아버지에 비해 상대적으로 무뚝뚝한 딸이라서 아버지께 애정표현을 하는 게 몸에 두드러기가 올라온 것처럼 간지럽다. 그래도 이제는 용기 내어 아버지께 마음을 전해야겠다. 

아빠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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