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명(使命)!
심부름하는 목숨,
삶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이자 명령이다.
한 번도 나의 사명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다.
새벽 독서를 하기 전까지 나의 '사이 시간'들은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상상하고 있었다.
나의 무의식이 연출자가 되어 나를 주연으로 하고 나의 감정을 상하게 했던 사람을 조연으로 캐스팅해 단편영화를 찍고 있었다.
그 드라마에서 나는 내가 당황해서 하지 못했던 말을 당당하게 하고 있었고, 일상에서는 싸움의 불로 번질까 하지 못하던 말도 통쾌하게 하고 있었다. 시나리오의 결말은 결국 감정싸움이었다.
눈앞에 영화가 상영되고 있으면 같이 출연한 조연이 현실에서도 미워질 때가 있었다. 조연은 주로 법으로 묶인 가족인 경우가 많았다. 지금 현재는 아주 잘 지내고 있으므로 나는 과거의 일로 영화를 찍고 있었던 것이다.
의식이 깨운 나는 서둘러 상영관을 닫고 무의식 속에서 빠져나오곤 했다
그런 내게 요즘 무질서한 상념이 없다.
사유하고 사색하느라 무의식 감독, 에고 주연의 영화를 촬영하지 않은지 몇 달째다.
이제 상념 대신 사명을 생각한다.
사명은 자연 안에서 나를 위대하게 만드는, 내가 마땅히 품어야 하는 가치이다.
나는 사명이라는 귀한 명령 앞에 나를 세운다.
그 안에서 스스로 존재한다.
결혼 첫날 신부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아버지는 엄마에게 모질게 구셨다. 결혼 첫날부터 응어리를 삼키고 살아온 세월이 얼마나 고되었을지, 얼마나 따뜻한 사랑에 갈급했을지 그간 엄마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나는 엄마에게 최소한의 빛을 전하는 촛불이 되었고, 그 빛은 엄마의 어둠 속에서 달빛의 위안이었다.
그 빛에는 측은지심과 애정과 보살핌이 있지만
언젠가 당신의 초에 내 불꽃을 건네받아 스스로 불을 밝히길 기대하는 희망이 가장 강하게 타오른다.
그 모든 것을 포함하는 단어는 사랑이다.
학교의 아이들에게 꺼내는 말투는 평소보다 부드러움과 상냥함을 두 배 더한다.
단호함이 필요한 상황이 있지만 화가 필요한 상황은 없다.
화는 나약함의 표현이다.
화를 낸다는 건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한 분노감을 표현하는 것이다.
화를 내고 나면 감정에 대한 사과나 보상이 뒤따라야만 관계가 회복된다.
그 불필요한 과정을 생략하기 위해 아이들에게 더 다정하게 말한다.
아이들이 써 준 편지에는 친절한, 항상 웃는, 화를 안내는, 재미있게 공부하게 해주는 이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다.
내가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아이들이 그대로 느낀다면 이 또한 나의 사명이 아닐까.
스스로 공부하고 싶은 마음은 억압적이고 무서운 분위기에선 수은주를 올리기가 힘들다.
무서움과 긴장이 있는 공간에서는 감정을 다스려야 하는 수십 개의 영혼들로 어수선할 것이다.
고요한 감정의 바닷속에서 열정도 일어나고 우리 안의 천재도 깨어난다.
그래서 늘 교실 안에 사랑을 풀어 따뜻하고 부드러운 공기와 싹이 발아하는 생기가 감돌게 한다.
나의 사명은 부모님에게도, 아이들에게도, 학생들에게도 배움이 일어나는 사랑을 전하는 것이었다.
신이 나에게 내린 임무는 소중한 존재들 앞에 서서 그들에게 필요한 사랑을 나눠주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