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고는 '자아' 또는 '나'라는 뜻의 라틴어이다.
프로이트는 에고를 말을 타고 있는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에고는 무의식적인 충동인 이드를 제어하려고 애쓰는 것,
욕망과 충동을 규제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프랑스 정신 분석학자 라캉은 프로이트를 재해석하며
에고를 거울 속의 나라고 했다.
에고는 존재하는 자신에 대한 이미지와
스스로를 동일시함으로써 만들어진 허상이라는 것이다.
프로이트의 에고도 라캉의 에고도 현재를 살지 못한다.
에고는 과거와 미래를 산다.
에고는 우리를 현재가 아닌, 과거와 미래에 묶어두어
진정한 나를 바라보지 못하게 만드는 존재(주 1)이다.
에고는 과거의 기억 속에서 자신을 바라보며 생존하려고 하고
스스로를 미래에 투사하면서 만족감을 가지려고 한다.
에고는 우월감 혹은 열등감으로 살아간다.
에고는 자신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과거의 기억에 의거하여
어떤 사람이나 일이 나에게 피해를 주지 않나 경계한다.
내가 할 일이나 내게 벌어진 상황이 잘못되지 않을까 두려워한다.
과거의 기억으로 현재를 비판하는 것은 에고의 본성이다.
그러니 과거의 상처를 현재의 아픔으로까지 끌어오는 것은 에고의 작용이라고 할 수 있다.
에고는 미래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현재 자신이 느끼는 인식대로 미래를 판단한다.
판단하고 비판하는 것은 에고가 주로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어떤 일을 하려고 할 때 에고는 과거의 기억을 끌어와 현재의 자신을 재단하고
미래의 일을 미리 판단해 버린다.
이 과정에서 왜곡이 발생할 수 있다.
나의 에고가 판단하는 내가 너무나 부정적이고 비판적이면 두려움이 커서 시도조차 하지 않을 수 있고
나의 에고가 판단하는 내가 과장되어 있다면 노력이 뒷받침되지 않는 무모한 도전으로 실패를 맛볼 수 있다.
에고를 알기 위해서는 인간이 가진 그림자를 알아야 한다.
그림자는 융이 만들어낸 것으로 가려진 의식,
인간이 알아보지 못하거나
보고 싶어 하지 않아서 의식하지 못하는
그 자신의 모든 거부된 현실영역(주 2)이다.
즉 인간이 의식하는 영역이 자아이고
의식하지 못하는 영역이 그림자이다.
그림자는 우리가 인식할 수 없는 영역이지만 우리 안에 내재되어 있다.
그림자는 에고가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영역이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방어하는 것에 반응한다. 예를 들어 살면서 자신을 거슬리게 하는 것이 있다면 자신의 그림자 영역일 수 있다. 외적으로 거부하고 과민하게 반응한다는 건 자신이 보고 싶지 않은 것에 대한 반응이다.
거부하고 방어하는 것도 결국 관심을 기울이고 몰두하는 것이 된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주 3)
결국 에고를 알고
에고가 인식하지 못하는 그림자의 영역까지 볼 수 있어야 우리는 온전해질 수 있다.
그것이 치유의 시작이다.
주 1)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 에크하르트
주 2,3) 몸은 알고 있다, 뤼디거 달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