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힌 교사가 되고 싶다.

기억 속의 단 한 명의 선생님

by 리인

신규 2년 차에 4학년 담임을 맡았다. 첫 해에 5학년을 가르쳐서 그런지 새 학기 첫날 긴장감과 설렘을 담은 눈동자로 신기한 듯 나를 쳐다보던 아이들이 참 귀여웠다. 그 해 아이들은 내 교직 인생에서 최고로 호흡이 잘 맞았던 아이들이었다. 내가 아이들을 위해 특별한 수업이나 행사를 준비했을 때 내 생각보다 더 좋아해 주고 성공적으로 마무리시켜 주는 아이들이었다. 그런 날이 차곡차곡 쌓여서 서로에 대한 애정과 신뢰가 깊어갔다. 건망증이 심해진 지금도 개성 있고 사랑스러웠던 아이들의 이름과 얼굴은 선연하게 기억이 난다.


그 당시 학교에는 급식실이 없어서 교실 급식을 했다. 아이들과 친해질 겸 1번부터 돌아가며 한 명씩 내 책상에서 같이 밥을 먹었다.

"요즘은 뭐가 제일 재미있어?"

"학교 끝나면 뭐 해?"

둘이서만 나눌 수 있는 이야기를 하며 밥을 먹었다. 선생님 책상에서 밥을 먹는 것이 신기해서인지 아이들은 나와 같이 밥을 먹는 것을 좋아했다.


그날은 성진이와 밥을 먹는 날이었다. 짧고 뻗치는 머리에 까무잡잡한 얼굴을 하고 쌍꺼풀 없이 동그란 눈과 작고 귀여운 코와 입을 가진 학생이었다. 축구 유니폼을 입고 학교에 오는 날이 더 많을 만큼 축구를 좋아하는 성진이는 친구들과 장난치는 걸 좋아하지만 해사하게 웃을 땐 영락없이 수줍음 많은 소년이었다.

성진이는 급식을 받고는 미리 가져다 놓았던 가방에서 찬합을 꺼내서 펼쳤다. 정갈하게 썰어진 과일과 잡채, 장조림과 같은 정성스러운 반찬들이 소담스럽게 놓여 있었다.

"어머, 이게 다 뭐야?"

"엄마가 선생님이랑 같이 먹으라고 싸주셨어요."

"진짜? 어머니 정말 감사하다. 근데 이거 싸느라고 엄마가 고생하셨을 것 같아."

그러자 앞자리에 앉는 환진이가 끼어들었다.

"성진이가 엄마한테 선생님이랑 같이 먹는다고 싸달라고 했대요."

"진짜? 성진이 마음이 참 고맙다. 근데 다음에는 우리 급식만 맛있게 먹자."

성진이와 이야기를 나누며 어머니가 싸주신 음식을 맛있게 먹었다.


성진이 어머니는 가끔 성진이에게 물통이나 실내화 가방을 갖다 주러 학교에 오실 때가 있었다. 우연히 나와 마주칠 때마다 깍듯하게 인사를 하시며 조심스럽게 말씀하셨다.


"선생님, 성진이가 선생님이 너무 좋대요. 성진이한테 잘해주셔서 감사해요."


"성진이도 그렇고 우리 반 친구들이 다 예쁘고 착해서 제가 더 좋아해요."


그 시절 학부모님들은 말씀을 참 따뜻하게 하셨다. 혼자 자취를 하면서도 아이들과 학부모님들에게 받는 사랑과 응원 덕분에 외롭지 않게 지냈다.


영어교육에 관심이 많던 나는 방학을 이용하여 영어 기본 연수와 심화 연수를 받았고 연수에서 배운 게임과 액티비티를 하나도 빠짐없이 아이들과 다시 해보았다. 교과에 영어는 없었지만 창체시간을 이용해서 책상을 뒤로 옮기거나 대형을 바꿔서 영어게임을 하곤 했다. 나도 아이들도 그 시간을 공부가 아닌 놀이로 재밌게 즐겼다. 그 시간은 우리를 더 끈끈하고 각별하게 만들어주었다.


그렇게 한 해가 마무리 고 아이들은 5학년이 되었고 나는 4학년을 한 번 더 맡았다.

여름방학이 다 되었을 때쯤 교무회의에서 성진이 담임선생님 옆자리에 앉게 되었다.

"선생님이 작년에 성진이 담임이셨죠? 성진이가 선생님과 4학년 때 재밌게 지냈던 추억을 못 잊어서 많이 힘들어했어요."

"어머, 그랬군요. 성진이 지금은 좀 어떤가요?"

"지금은 좀 괜찮아졌어요."


성진이 담임 선생님은 성진이가 사춘기까지 온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복도에서 마주치거나 교실에 가끔 찾아올 때는 항상 웃기만 해서 그렇게 힘든 시간을 보내는지 알지 못했다. 좋은 추억을 가지면 항상 행복할 것 같았는데 그 추억을 못 잊어서 힘들어했다니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없어서 마음이 아팠다.


후 첫 발령받은 학교에서 4년을 보내고 다른 도시로 이사를 갔다. 그렇게 시간은 또 흘렀고 우리 학교에 신규 선생님들이 왔다. 신규선생님과 이야기를 하다가 2000년에 4학년이었다는 말을 듣고 떠올려 보니 우리 반 친구들이 신규 선생님과 같은 나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 꼬맹이들이 벌써 24살이 되었구나.' 갑자기 아이들 소식이 궁금해져 그 당시 내가 만들었던 다음 카페에 들어가 보았다. 4학년이 끝나고 6년까지는 아이들의 소식이 간간이 이어지고 있었다. 예전 글들을 클릭하여 글에 쌓인 묵은 먼지를 털어 내고 나서야 아이들에게 간단한 안부인사를 남겼다. 10년 만에 새 글이 등록되었다.


그렇게 내가 글을 남겼다는 사실이 잊힐 때쯤 내 글에 댓글이 달렸다는 알림이 왔다.


성진이가 적은 글이었다.


댓글을 읽고 내가 성진이를 따뜻하게 안아주었을 때를 떠올려보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내 기억엔 성진이는 그저 해맑게 웃는 친구였는데 그런 순간이 있었다니. 그래도 내가 성진이에게 따뜻함을 느끼게 해 줬다는 사실이 참 감사했다.

성진이와 카톡으로 연락을 했다. 성진이는 중고등학교에 진학해서도 힘든 시간을 보냈다고 했다. 공부를 열심히 해보리라 결심하고 독하게 공부했는데 오히려 커닝을 했다는 오해를 받고 큰 상처를 받았다고 했다. 어린 마음이 얼마나 아팠을지 내 가슴이 시렸다. 그 후 운동을 열심히 해서 보디빌더가 되었고 대회에서 상도 여러 번 받았다고 했다. 일찍 결혼을 해서 다섯 살 된 아들과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했다. 정말 멋지고 대견하다고 말해주었다.


내가 그때 성진이를 안아준 순간은 그 아이에게 기억에 남는 선생님이 되고 싶어서가 아니었을 것이다. 그저 상처받은 성진이의 마음이 치유될 수 있도록 진심을 다한 행동이었을 것이다. 나의 작은 행동이 성진이에게 기억에 남는 단 한 명의 선생님이 될 정도로 의미 있는 순간을 만들었다는 사실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나의 작은 행동 하나하나가 아이들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다시 한번 내 소명의식에 무게를 보태었다. 그리고 그 순간을 잊지 않고 힘든 순간을 잘 견디고 버티며 열심히 살아내 준 성진이가 정말 고마웠다.


"성진아, 선생님은 성진이가 나의 제자라는 사실이 참 자랑스럽구나. 너의 노력과 열정은 선생님에게 제일 큰 선물이 되었단다. 신은 우리에게 선물을 줄 때 문제라는 포장지에 싸서 준다고 해. 그 문제를 해결해서 포장지를 풀면 그건 선물이 된다고 하지. 너는 역경을 극복하여 현재라는 선물을 받았고, 너의 노력과 열정은 오늘 선생님에게 가장 큰 선물이 되었단다. 성진아, 행복하게 잘 살고 있어서 진심으로 고마워."


성진이와 연락을 다시 한지 어느새 7년이 흘렀다. 나는 그저 아이들에게 잊힌 교사가 되고 싶다. 아이들이 나를 만난 동안에도 나를 떠난 뒤에도 행복하게 잘 지내서 나와 함께 한 순간도 무탈하게 잊히는 그 시간 속에만 존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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