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의 밤은 검은 고요만을 품어야 했다.
잠 못 드는 아버지를 위해.
빛이 없는 어둠과 소음 없는 적막으로
밤을 정전시키면
비로소 마음 한켠에 편안함이 내려앉았다.
빛과 소음이 정전된 밤에 점점 익숙해졌고,
짙은 어둠을 겹입을수록 감각은 예민해졌다.
작은 빛에도 눈이 부셨고,
작은 소리에도 신경의 촉수가 곤두섰다.
'예민함'이 나의 벗이 되었다.
예민한 감각으로 새를 관찰해 그리고,
열두 살의 교실에 공연할 연극 대본을 썼다.
날카롭게 벼려진 상상은
시간의 흐름을 망각하고
늦은 밤까지
흰 종이에 대화를 써 내려갔다.
글짓기 숙제가 있던 열세 살,
내 방 유리창은 투명한 종이가 되었고
하얀 분필로 어린 서사를 채워나갔다.
어른이 되고, 모서리가 깎인 예민함은
여름의 길목에서 목련나무에 달린 꽃눈을 발견했다.
무성한 잎에 가려져 한쪽에 은둔해 있던 꽃눈이
나의 무뎌진 예민함 속으로 들어왔다.
목련의 꽃눈은 여름부터 가을까지
크고 푸른 잎이 번성할 동안
조용히 분화하고 있었다.
목련은 분투했던 여름, 가을을 거쳐 추운 겨울을 버티고,
마침내 봄의 온기 속에 만개하는 인내의 꽃이었다.
글이 이끄는 삶도 소리 없이 본연의 모습을 만들다
추위를 견디고 피어나는 벅찬 용기였다.
목련의 여름눈 같은 글을 삶에서 만날 때까지
두 아이를 낳고 성인으로 키우는
'어른의 시간'이 필요했다.
나이의 숫자로는 꽉 찬 어른이 되고도,
그 나이만큼 영혼이 성장하기 위해선
책과 글의 시간이 필요했다.
목련이 삼계절동안 꽃의 영혼을 생장시킨 시간처럼.
인생의 첫 계절에 하얀 종이와 맑은 유리창에 새겨진 이야기는
두 번째 계절에 여름눈이 되어 숨었고,
세 번째 계절에 꽃눈 안에서 비로소 꽃잎과 꽃받침으로 분화되며 꽃이 될 준비를 하고 있다.
나는 진정 쓰는 사람이 될 준비를 끝낸 걸까?
꽃눈의 영혼이 단단해지려면 감정의 바람에도 정신의 추위에도 제련되어야 한다.
브런치에 300개의 글이 쌓였고, 3개의 꽃받침이 완성되었다.
지금부터 글의 꽃잎을 만들어가기 시작한다.
감정에 솔직해도 흔들리지 않고,
정신에 집중해도 차가워지지 않는 꽃대를 세워간다.
인생은 어쩔 수 없는 조건을 지니고 있다.
어리석은 사람은 그것을 피하고자 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그런 건 알 바 아니다, 나와는 관계없는 일이라고 큰소리친다. 그러나 그의 큰소리는 입술에서 멎지만, 그의 인생 조건은 그의 영혼에서 떠나지 않는다.
사람이 일면에서 그것을 피한다 해도 다른 위험성이 있는 면에서 그것의 습격을 받는다.
-자기 신뢰철학, 랄프왈도 에머슨
결국 나의 검은 밤으로부터 온 예민함은 벗으로 공존했고, 인생 조건이 되었다.
예민함은 글의 꽃눈을 맺게 했고, 꽃눈의 영혼을 생장시켰다.
예민함에 의해 잉태된 글은 이 순간도 꽃잎으로 분화 중이다.
사진 출처 : 핀터레스트, 개인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