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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 선물로 선함을 잇다.

by 리인

큰 바다에 있는 물과

산속 계곡에 있는 물을 보고 배우라.

얕은 계곡물은

시끄러운 소리를 내지만

깊은 바닷물은

고요하고 움직임도 거의 없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궂은일을 하는 사람들.

그들에게 감사를 표현할 때

요란한 소리를 내지 않고

깊은 바닷물처럼 고요하게 마음을 전하는 사람들이 있다.


보람을 느끼게 하는 감사 인사와

달콤한 칭찬을 바라지 않는다.

나눔의 가치만을 소중하게 여기는 신성한 마음과

진심에서 우러난 행위만 남긴다.


그런 사람과 교감하며 지내는 건

내 안의 선의를 더 찾아쓰라는 신의 목소리를 듣는 것 같다.


학교를 청소하는 여사님들 휴게실에

누군가 포도 한 상자를 놓고 갔다.

맛있게 드시라는 쪽지와 함께.

여사님들은 포도를 선물한 사람이

누군지 알아내기 위해 쪽지를 들고

수소문하기 시작했다.


부모님이 포도 농장을 하는 선생님에게 묻고,

휴게실과 가까운 교실의 선생님에게 묻고,

교감 선생님에게 물었다.

결국 필체의 주인이 밝혀졌다.


여사님들은 교실로 그녀를 찾아가

연신 고맙다며 인사를 했다.

고맙다는 인사를 받고나서 그녀는 난감해졌다.

"부담스러워서 이제 선물도 못하겠어."


그녀는 나와 17년 지기 동료이자 선배이다.

사건을 비밀에 부치고 싶었던 그녀의 계획이 틀어졌다.


저번 날 누구에게 포도를 주느라 그리 바삐 간 거냐고

묻자 그때서야 내게 이야기를 풀어 놓은 것이다.


그녀의 조용한 베풂과

땀방울에 대한 감사,

경계를 나누지 않는 포용,

주변을 보는 따뜻한 시선

두 손이 모아졌다.

깊은 바다 같은 그녀의 마음 곁에

함께 머물고 싶었다.


그녀의 얘기를 듣는 순간,

그녀가 그리는 선(good)의 색과 결에

스며들고 싶었다.

깊은 바다로 흘러가는

맑은 강물이 되고 싶어졌다.


매일 아침,

수업을 하러 가는 나의 카트와

청소를 하러 가시는 여사님의 카트는

복도에서 만난다.


아이들의 마음을 빛낼 자료를 담은 카트와

아이들이 지낼 공간을 빛낼 도구를 담은 카트는

다른 모양이지만 같은 쓰임이다.

아이들을 빛내기 위한 쓰임.


여사님이 카트를 두고 화장실 청소를 하는 사이,

견과류가 든 종이가방을 카트 위에 올려놓았다.


가방 안에는 견과류 세트와 함께

"여사님,

늘 감사합니다.

행복한 추석 보내세요."

프린트된 쪽지를 붙여 두었다.

고맙다는 말을 듣지 않아서

느끼는 비밀스러운 기쁨.

선이 선을 낳는 기쁨.

이 기쁨으로 충만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빛을 밝히는 이들에게

진실된 선의를 조용히 행할 때마다

우리는 조금씩 우아해질 거라 믿는다.


'선한 인간이란 어떠한 인간인가'라는 문제를 논의하는 일에 더 이상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선한 인간이 되어라.*


*살아갈 날들을 위한 공부, 레프 톨스토이

*명상록, 아우렐리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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