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이 눈앞에 있어도 느끼지 못할 때가 있다. 행복은 숨어있어서 찾아야 할 때도 있지만 눈앞에 있어도 느끼지 못할 때가 있다. 행복을 대하는 마음에 따라 달라진다.
나는 이벤트맨이던 남편을 과거형 남자로 만들어 버렸다.
우리는 만난 지 6개월 만에 장거리 연애를 하게 되었다. 나는 수원으로 발령이 났고 남편은 부산에서 근무했다. 남편은 만난 지 1년이 되는 날 내가 근무하는 학교로 장미 100송이를 보냈다. 여름방학 동안 수원에서 영어연수를 받고 있을 때는 연수원으로 생일 축하 꽃다발과 케이크를 보내기도했다.
결혼을 하고도 크고 작은 이벤트를 열어줬다. 결혼 후 네 번째 생일 아침, 자고 있던 나를 깨웠다. 겨우 눈을 뜨고 거실로 나와보니 바닥에 빨간 장미와 양초로 커다란 하트를 만들어 놓았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이벤트에 놀란 나를주방으로 데리고 갔다. 식탁에는 미역국, 불고기, 샐러드 등 생일 음식이 소담스럽게 차려져 있었다.계란프라이를 닮은 작은 들꽃도 수줍게 꽂혀 있었다.
어느 해 생일에는 아이들과 나를 용산에 있는 오피스텔로 데려갔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거실에는 큰 벚꽃나무가 서있었는데원목식탁과 어우러져 멋진 분위기를 연출했다. 왼쪽에는 하얀 그랜드피아노가 있었고 창밖으로 한강이 내려다 보였다.
남편이 아들에게 귓속말을 하니 아들이 피아노 앞에 가서 앉았다. 곧바로 어떤 남자분이 조각 케이크를 가지고 나왔다. 아들의 피아노 연주에 맞춰 다 같이 생일축하노래를 불렀다. 남편은 피아노 옆에 있는 스탠드 마이크앞으로 갔다. 반주가 흘러나오고 남편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박상민의 '하나의 사랑'이었다.
"가슴속에 차오르는 그~~~ 댈~~ 이렇게 외면하지만~~"
노래를 마친 남편은 주머니에서 편지를 꺼내 읽기시작했다.
요즘 젊은 세대가 한다는 프러포즈이벤트를 몇 번이나 받았는데도 고맙다는 표현을 충분히하지 못했다. 쓸데없는 데 돈을 쓴다며 남편을 타박하기도 했다. 받은 사랑을 갚아야 한다는 생각에 부담스러워했다.
준비한 사람의 마음을 생각해 감사히 받고 작은 정성으로 갚으면 될 것을 행복인 줄 모르고 살았다. 남편은 더 이상 이벤트맨이 아니다. 결혼기념일에 내가 좋아하는 꽃으로 만든 꽃다발을 사 오는 정도로 현실과 타협했다.
남편의 이벤트가 어른인 나에게는 성공적이지 못했지만 나의 내면의 아이에게는 큰 위로와 안정감을 준 것 같다. 한결같은 사랑 덕분에 어린 시절 가지고 있던 불안과 예민함이 치유됐다. 나의 내면의 아이를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어른으로 성장시켜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