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지나치며 마주친 해바라기들은 다 고개를 빳빳히 들고 있었다. 그랬기에나는 해바라기에 대해 해를 바라보고 꼿꼿히 서 있는 식물 정도로만 정의내렸던 것일지도 모른다.
처음 집앞 베란다의 해바라기가 꽃을 피웠을 때는 늘 그렇게 고개를 들고있을거라 착각했다. 그런데 내가 생전 처음 씨앗부터 심어 키운 해바라기는 점점 고개를 숙였다. 분명 시든 것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물이 부족한건가 싶어 다른 식물보다 물을 더 주었다. 그래도 해바라기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심지어 세 개 중 하나는 허리까지 아래로 휘는 것 같아 아슬아슬했다. 나는 다시 해바라기 줄기에 막대기를 덧대고 끝까지 버텨라고 속삭였다.
그러곤 그런 해바라기가 궁금하여 해바라기에 대해 찾아보았다. 해바라기는 꽃이 열매, 즉 해바라기씨로 변할 때 무거워서 고개를 점점 숙인다고 되어 있었다. 어쨌든 해바라기는 이제 점점 시들어갈 것이다. 생각보다 빨리 고개를 숙이고 비실거려서 실망스러웠다.
내 인생의 해바라기는 해바라기 시계, 그림액자 속 해바라기, 해바라기 조화, 길가다 마주친 해바라기가 전부다. 이사를 할 때 해바라기 시계를 샀고 이사를 와서 돈에 쪼들릴 때 해바라기 그림을 벽에 걸었다. 친정집 현관 안에는 엄마의 돈에 대한 갈증을 달래기 위한 해바라기 조화 몇 개가 세워져 있다.
이제 내 인생의 해바라기에 대한 기억이 바뀔 것이다. 피지 못하고 몇 달 키만 삐쭉 자라던 해바라기, 벌레에게 나뭇잎을 내어준 해바라기, 지지대를 붙여주지 않으면 줄기가 휘청거리는 해바라기, 아주 잠깐 핀 해바라기꽃, 그리고 열매맺어 고개숙인 해바라기, 빨리 시드는 해바라기.
하지만 나는 그런 해바라기가 참 좋았다. 한여름 내내 기다림과 설렘, 조바심을 주었던 해바라기야, 잘가라. 너의 씨앗은 잘 받아 다음 계절에 다시 심어줄게. 햄스터 먹이가 될지도 모르겠지만 너의 이름만은 기억속에 넣어둘게. 그것이 한여름 내내 애쓴 너에 대한 예의인 것 같아. 너처럼 우리도 피고 지는 시간이 있을테고 그 시간을 지혜롭게 받아들이는 것 또한 너에게 배울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