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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그네 Jun 25. 2024

[역사속의오늘사건] 1950년 6월25일

한민족의 비극 6.25가 발발하다

세계사적으로 국가가 형성된 이래 가장 긴 휴전을 하고 있는 대한민국

1950년 6월 25일 일요일 새벽 4시 북한이 '폭풍'이라는 작전명으로 북위 38선 전역에 걸쳐 남한을 선전포고도 없이 불법 남침하면서 발발한 전쟁으로, 유엔군과 중국 인민지원군 등이 참전한 국제적 대리전으로 비화되어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이 체결되기 전까지 3년 1개월 간 이어졌다. 이후 남북한 모두 준 전시상태를 유지하며 군사적 대치를 이어갔으며, 세계사에 유례없이 긴 휴전으로 지금 이 순간에도 실시간으로 휴전 기록이 경신되고 있다.


6.25는 원체 많이들 알고 있으므로 그 원인, 경과 과정, 결과는 제하고 용어, 명칭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자 

비 한문 MZ세대들이 헷갈려 하는 북침과 남침에 대한 국립국어원의 정의

많은 사람들이 남침과 북침을 헷갈려 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남침이 맞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을 참고하면, 남침(南侵)은 북쪽에서 남쪽을 침범함.으로, 북침(北侵)은 남쪽에서 북쪽으로 침략함.으로 정의를 하고 있어 6.25 전쟁은 북쪽 나라의 남침(南侵)으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

전쟁 명칭으로 특이하게 전쟁이 발발한 날짜를 공식적으로 사용하는 6.25

일반적으로 전쟁은 분쟁의 주체, 전투는 발생한 장소를 그 명칭으로 쓴다. 반면 이 전쟁은 (남한 기준으로는) 특이하게도 발발한 날짜가 그 이름으로 쓰인다. 대한민국 정부 및 한국사 교과서에서는 공식적으로 6.25 전쟁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으며, 민간에서도 관습적으로 날짜-사건을 조합해 6.25 전쟁으로 부르고 있다. 

6.25를 영어로는 Korean War라고 부르는데 이는 UN측에서 붙인 명칭이다

영어로는 Korean War라고 부른다. Korean War라는 이름은 자본주의 진영에서 전쟁을 주도한 UN군 사령부에서 붙인 것이다. 

중국에서는 6.25를 '항미원조 전쟁'이라고 하는데 이는 조선(북한))을 도와 미국에 대항한 전쟁이란 뜻이다

북한에서는 조선전쟁 혹은 조국해방전쟁이라고 부르고, 중국에서는 조선전쟁 혹은 미국에 대항해 조선(북한)을 지원한 전쟁이라는 의미의 항미원조(抗美援朝) 전쟁이라고 부른다. 

일본에서는 6.25를 '조선전쟁'이라는 명칭으로 부르고 있다

한편 일본에서는 조선전쟁(朝鮮戦争)이라고 부르며 현재 중국도 정식 수교국인 한국을 의식해 항미원조전쟁 대신 조선전쟁이라는 용어를 좀 더 많이 사용한다. 여기서 조선이라는 말은 대한민국에서 쓰는 접두어 '한(韓)-'을 대신해서 한자문화권에서 쓰는 표현이기 때문에 조선전쟁이나 한국전쟁이나 의미는 같다.


1952년 공보처에서 발간한 정부간행물 "6.25사변 피살자 명부"와 1952년 국방부에서 간행된 정부간행물 "한국전란지"를 보면 전쟁 당시부터 두가지 용어를 병행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정부 안에서도 이 두가지 단어를 병행 사용했지만 행정관서는 주로 '6.25'를, 군에서는 주로 '한국전쟁'을 사용했다. 

초창기 한국에서는 한국전쟁을 당시 종군기자증에 보면 '6.25 사변'이라고 적혀있다

1973년 한국 정부에서 제정한 각종 기념일에 관한 규정에서도 6·25 사변일(六二五事變日)이 등장하고, 2014. 3.24일에는 6·25 전쟁일로 개정되었다. 반면 한국 정부에서 만든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는 한국전쟁이 등재되어 있다. 또한 민간에서는 아무 설명없이 날짜만 가지고 6.25라고도 불렀고, 6.25 사변 또는 6.25 동란이라도 부르고 있다. 또는 경인공란(庚寅共亂)이라고 불린다. 


6.25 전쟁이란 말은 우리만 사용하는 단어로 우리 민족만의 자주성 주체성을 강조하지만 국제적으로 통용되지 않는 측면이 있다. 한편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Korean War라는 명칭은 객관성 중립성을 보여준다고는 하나, 그 번역어인 '한국전쟁'은 엄밀하게 중립적이지는 않다. 전쟁의 한 쪽 주체인 북한에서 스스로를 '한국'이 아니라 '조선'이라고 하기 때문이다. 


한국 학계에서는 학자들의 입장에 따라서 대체로 6.25 전쟁 또는 한국전쟁으로 쓰인다. 2011년 한국전쟁학회에서 김명섭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한국전쟁이란 용어를 사용할 경우 전쟁 발발 책임이 모호해지거나 전도될 우려가 있다면서 6·25전쟁이라 부르는 게 옳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6·25가 당시 미소 냉전체제 하에서 국제전의 성격을 띤 점을 감안하면 이 전쟁의 영문 표기는 '1950~53 한국 6·25 전쟁(the 6·25 War in Korea 1950-53)' 혹은 '1950~53 한국 공산주의자 전쟁(the Communist War in Korea 1950-53)'으로 번역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선일보는 한국전쟁이란 용어는 미국 수정주의 용어를 좌파가 사용하기 시작했다고 주장한다

조선일보 전병근 기자는 한국전쟁이라는 용어가 1980년대 미국의 수정주의 학자인 브루스 커밍스 시카고대 교수의 책 '한국전쟁의 기원'(the Origins of the Korean War, Vol.1, 1981년 출간·국내에는 1986년 번역·출간)이 국내에 소개되는 과정에서 국내 좌파들에게 확산됐다는 기사를 썼다. 

국방부는 정식 명칭을 '한국전쟁'에서 '6.25 전쟁'으로 바꿨다

국방부에서 발간한 군 공식간행물을 보면 1952년부터 2004년까지 발간된 서적은 제목이 '한국 전쟁'으로 되어 있었지만, 2004년부터 '6·25전쟁'이 사용되기 시작해 2005년부터는 6·25전쟁 한가지만 사용하고 있다. 국방부 지정 공식용어가 과거에는 한국 전쟁이었으나 2004년부터 6·25전쟁으로 변경된 것으로 보인다. 


국립 중앙 도서관에 소장 중인 단행 자료를 검색하면 1980년 이전에 발간된 자료 중 제목이 한국전쟁으로 되어 있는 자료는 제목이 6·25로 되어 있는 자료보다 2배가 더 많이 검색되는 것으로 보아 과거에는 출판계나 학계에서도 일반적으로 '한국 전쟁'이란 용어를 주로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역사에서 벌어진 전쟁이 비단 6.25 전쟁만이 아닌데 한국 전쟁이라고 부르는 것은 혼동이 있을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6.25가 그 사건의 성격을 포괄하지 못하는 것이라면 다른 사건들의 명칭도 바꾸어야 하냐는 문제에 봉착할 수도 있다. 유럽에서도 2월 혁명이나 7월 혁명처럼 그 사건이 발생한 시기를 기점으로 사건의 명칭을 부여한 예도 존재한다. 


따라서 6.25 전쟁이라고 쓰는 것이 문제 없다는 것이다. 물론 어떤 역사 용어를 쓰느냐 하는 것도 그 사건을 바라보는 이에 따라서 다양할 수 있다. 그것 역시도 하나의 해석의 산물이자, 사관을 반영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한국 전쟁이 제 3차 세계대전으로 확전 되는 것을 경계하기 위해 'Korean Conflict'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당시 미국 의회에서는 군사적인 충돌의 의미를 가진 Conflict라는 단어를 사용해 6.25 전쟁을 지칭했다. 6.25 전쟁이 대규모 국제 전쟁으로 비치면 안된다고 봤던 트루먼 대통령과 미국 의원들에 의해 War라는 단어의 사용이 사실상 금기시 되었다. 6.25 전쟁이 World War III가 될 수도 있었기 때문에 공산권 국가와 서방의 대중들에게 6.25전쟁이 '전쟁이지만 전쟁 같이 느껴지지 않도록' 이를 축소하여 지칭한 것이었다(당시엔 Korean Conflict라 불렸다). 후에 6.25 전쟁이 정치인들의 손에서 역사가들의 손으로 넘겨질 때 쯤, War라는 단어가 학계에서 보편적으로 쓰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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