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에는 11월에도 태풍이 있었다. 그것도 그냥 태풍이 아니라 나무가 격렬하게 흔들리는 소리가 빗소리보다 크게 들릴 정도였다. 그 덕분에 학교에 갔다가 수업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돌아와야 했다. 다행히 천장이 기숙사에서 학교까지 이어져있어서 우산 없이 빗길을 걸을 수 있었다.
기숙사 안에서 창밖에 비와 바람이 휘몰아치는 것을 보니 한국은 이맘때쯤이면 눈이 와도 이상하지 않을 텐데, 여긴 11월에도 비바람이 가장 무섭구나 싶었다. 물론 지구 온난화로 한국도 열대화가 되고 있으니 몇십 년이 지나면 한국에서도 11월에 태풍을 걱정해야 할 수도... '눈이 쌓이지 않는 강릉', '40도가 넘는 제주도' 같은 것을 상상하며 한국에서 계속 살아간다는 것이 조금 무서워졌다.
이번 주에 학교에 갔을 때 친구들이 유감이야("I'm sorry to hear that")이라고 하던데, 한국의 이태원 사고를 듣고는 한국인인 나를 위로해 준 것이었다. 글로벌한 뉴스에 대한 관심 + 이에 대한 공감까지, 정말 내 친구들은 어찌나 이렇게 자상한지... 나도 한국에 돌아가면 외국인 친구에게 이런 관심을 가져줘야지.
괜히 비가 오는 것을 보면 생각이 깊어진다. 타지에서 부모님의 돈을 더 비싼 물가의 음식들을 사 먹으며 소비하고 있는데 그만큼 성적이든, 친구들과의 시간이든 무언가 달성하지 못하는 것 투성이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더 싱숭생숭하다. 정말 해외에서 이런 식으로 돈을 쓰는 것이 큰 의미가 있을까, 하는 첫 의심의 순간이었다.
전날은 아침에 늦게 일어나서 "수업이다!"하고 후다닥 달려 나갔는데 아침 수업이 종강이어서 괜히 헛걸음했고, 오늘은 아침을 써서 PPT 과제를 제출하느라 아침 수업에 지각했다. 이틀 연속으로 스케줄 관리가 제대로 안 되어서 그런지 수업 중에 졸기도 했다. 뭔가 학기가 지나갈수록 수업이 가빠지는 것은 어디에서나 만국공통인 것 같다.
그럼에도 오늘 수업 중에 존 것에 대해서는 나름의 변명을 시도할 수 있다. 왜냐하면 홍콩의 바이오 의료 시스템에 대한 강의였기 때문. 연사가 중간부터 중국 본토(mainland라고 부른다)의 의료 서비스의 고급화를 위해 책임감을 가지고 홍콩에서의 바이오 메디컬 산업에서 힘써서 일하라는 등의 말을 하는데, 중국중심주의 느낌이 강해서 제대로 듣지 않고 싶기도 했다.
그런데 이렇게 강의를 듣고 돌아오니 내가 중국을 싫어하는 게 중국이 싫은 짓을 해서일까, 아니면 중국이 싫도록 되어버린 건가 하는 의문도 들었다. 왜냐하면 중국이 싫은 이유를 대라고 하면 몇 가지를 이야기할 수 있는데, 그 모두가 내가 언론에서 들었던 정보일 뿐이지 실제로 직접 데이터를 찾아가며 비교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도 이 연사처럼 중국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을 전파하는 사람이 있을 텐데, 혹시 그런 것에 선동된 게 아닐지 내 생각을 돌이켜보는 시간을 가졌다.
홍콩에 오고서 하루에 가장 많은 일을 처리한 날이었다. 아침 운동 - 와칸다 포에버 영화 - 점심 수업 - 도서관 공부 - 장학금 수령 - 저녁 식당 찾기까지 하루 온종일을 빡빡하게 썼다.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 깊은 기억은 장학금을 받은 일이었다.
인생 첫 장학금! 사실 장학금 신청 서류를 냈다는 것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장학금 신청 서류가 홍콩 교환학생 지원할 때 제출하라고 한 서류에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복잡하고 많은 서류들을 처리하던 그때엔 '이게 무슨 서류다'보다는 '이거 처리하세요' '넵' 수준으로 빠르게 하는 게 중요했기에 이메일을 받고서야 알게 되었다.
장학금을 받기 위해서 학교로 비즈니스 복장을 입고 오라길래 대충 하얀 와이셔츠에 블레이저를 걸치고 지정된 장소로 갔다. 사실 장학금을 받는다길래 홍콩의 건국기념일처럼 많은 사람들이 모일 줄 알았는데, '교환학생' 대상으로만 뽑는 장학금이어서 딱 6명만 모였다. 한국인 2 - 싱가포르 2 - 터키 1 - 라트비아 1의 수혜자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6명이 모인 상태에서 담당자들(교수)이 홍콩 이공대에서의 생활이 어떤지 간단하게 물어보는 시간을 가졌고, 나는 보충 강의(Tutorial)의 유무가 한국에는 없다고 답했다. 개인적으로 꽤 신기한 시스템이었는데, 수업을 잘 따라오지 못할지도 모르는 학생들을 위해 '출석하지 않아도 되는' 보충 강의를 교수가 진행하고 학생들 중 원하는 사람만 가도 되었다. 한국에서는 교수님 사무실에 항상 찾아가야 했던, 예약하기도 힘들고 그것도 교수의 시간에 맞춰야 하는 시스템보다는 훨씬 좋았어서 그렇게 대답했는데 좋게 봤는지 담당자께서도 호응을 해주셨다.
솔직히 코로나 효과로 교환학생이 적은 만큼 선정되기 더 쉬워진 만큼 나도 선정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인생 첫 장학금이라 괜히 가슴이 뛰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것도 무려 홍콩 20000달러(한화 340만 정도) - 내가 홍콩에 올 때 기숙사비까지 포함해 가져온 금액이 22000 달러였으니 여기서 쓸 돈을 거의 전부 지원해 준 것이나 다름이 없는 거금이니까. 아마 내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을 순간 중 하나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