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사람들의 풍경
오래 마음속에 묻어 둔 질문에 답을 얻고 싶어 서둘러 안동에 숙소를 예약하고 길을 나섰다. 이번 여행의 목적은 표면상 만개한 배롱나무 꽃을 보기 위함이라고 정했다. 하지만 진짜 여행의 이유가 그것이 아님을 알고 있다.
30년도 훌쩍 지난 일이다. 버스 터미널 앞을 지나다 갑자기 떠나야만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매표소로 달려가 “제일 먼저 출발하는 표 주세요”라고 말하고 나니 어느새 어둠이 내려앉고 있는 안동에 도착해 있었다. 활자로만 배운 하회탈의 정신, 오래된 전통의 하회마을, 건축미가 아름다운 도산서원 등의 지식은 낯선 거리에서 느껴지는 막막함을 해결하는데 아무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때 옆자리에 앉아 동행한 중년의 남자가 얼굴에 드리워진 근심을 알아차렸는지 “학생 커피 한잔 할래요?”라고 묻는다. 대답은 “아저씨! 커피보다 저녁 사주시면 안돼요?”이었다.
몇 시간짜리 인연을 앞세워 당당히 밥을 사달라고 요구한 나는 요즘 말하는 근자감(근거 없는 자신감)이 하늘을 찔렀던 때였나 보다. 배가 고팠는지 낯선 사람 앞에서도 밥이 달게 넘어갔다. 버스 안 스몰토크를 통해 이곳으로 여행 온 학생이라는 것, 어떻게 여행할지 대책이 없다는 것, 도산서원과 하회마을을 가 보고 싶다는 정도의 정보를 알게 된 그가 말했다.
“보아하니 안동을 어떻게 돌아볼지 구체적 계획이 없군요. 내일 마침 일정이 하루 비어요. 학생만 괜찮다면 안동 가이드해 줄게요. 내일 아침 10시까지 이곳으로 와요. 혹시 불편하다 생각하면 오지 않아도 돼요. 그럼 안전한 숙소 잘 잡아서 쉬어요”라는 말을 남기고 휑하니 사라졌다.
다음 날 어색했지만 불편하지는 않고,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 여행자와 안내자의 동행이 시작되었다.
30여 년 전의 풍경이지만 아직도 도산서원 가는 길의 고즈넉한 아름다움이 떠 오른다. 파란 하늘과 그 하늘을 온전히 담고 있던 깊푸른 물의 고요, 마치 그 시대의 유생처럼 도산서원에 깃들어 있는 전설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던 그는 최고의 가이드였다. 점심으로 먹었던 생소한 이름의 메뉴 ‘헛제삿밥’은 쌀밥과 고기를 먹고 싶었던 유생들이 가짜 제사를 지내고 함께 음식을 나누던 풍습에서 만들어진 전통음식이란다. 근엄하고 진지할 것만 같은 유생들이 그런 유쾌한 반란의 의미가 담긴 음식문화를 만들어 냈다는 것이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와 맛과 스토리텔링까지 완벽하게 잡은 한 끼를 체험했다.
하회마을은 오래된 나무와 집들 그리고 여전히 살아 있는 옛 숨결을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나지막이 쌓은 돌담 골목을 돌아서면 푸른빛을 띤 하얀 한복을 입고 정갈하게 비녀를 꽂은 여인의 뒷모습을 볼 것만 같은 착각에 빠져들게 만들었다. 그는 하회마을에서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그저 옆에서 함께 걸어 줄 뿐이었다. 그 배려 덕분에 오롯이 나만의 사색과 감상으로 빠져 들 수 있어 오래도록 하회마을의 풍경과 향취를 간직할 수 있었다.
하루 여정이 끝날 무렵 그는 지인의 식당으로 데려갔다. 낯선 여학생을 데리고 밥을 먹으러 온 친구를 의아하게 생각할 법도 한데… 의문을 드러내지 않고 그저 따뜻한 환대로 맞아주신 걸 지금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멀리서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했네.”
“이 친구가 안동 구석구석 잘 보여줬어요?”
“음식이 먹을만해요?”
섬세하면서도 부담스럽지 않게 대해주던 그들의 태도는 감사함과 동시에 의문이 더욱 깊어지게 만들었다. ‘낯선 사람한테 어떻게 이렇게 잘해주지?’
그리고 가장 결정적이었던 것은 식사가 끝난 후 그의 한마디였다.
“터미널까지 배웅해줘야 하는데 일이 생겨서 해 줄 수가 없네요. 택시를 불러 놓았으니까, 안전하게 터미널로 타고 가요. 집까지 조심히 잘 올라가고요.” 라며 가방에 차비까지 넣어 주셨다. 화들짝 놀라 받지 않겠다며 거절해 보았지만 친구 부부까지 합세해 ‘안 받으면 주는 손 부끄러워서 안된다’ 며 끝끝내 챙겨주셨다. 그들의 마음을 어찌 해석해야 할지 몰라 전전긍긍했던 것 같다. 얇고 가벼운 지폐 몇 장은 오래도록 커다란 무게감으로 나를 따라다녔다.
첫날 저녁을 사주고 무심히 떠나던 뒷모습과 차비까지 따로 챙겨 주며 택시로 배웅해 주던 그의 담백한 모습. 오래도록 그분에 대한 감사함과 함께 늘 따라다니던 의문의 답을 찾지 못했다. 스무 살 언저리 학생의 홀로 여행에 동행해 주겠다는 낯선 이의 호의를 어떤 마음으로 받아야 했던 걸까? 끝까지 거절했어야 했나?
지인들은 이 에피소드를 듣고 애정이 담긴 잔소리를 쏟아냈다. “얘는 겁도 없다. 아무나 따라가면 안 돼 무슨 일이라도 생겼으면 어떡할 뻔했어?” 사실 그때 그 호의를 다 이해하지 못했다. 그 호의는 분명 따뜻했으나 동시에 내게는 설명할 수 없는 혼란이기도 했다. 경험하지 못한 과잉친절이었기 때문이다. 그냥 흘려보낼 수도 있는 일이었으나 오랫동안 마음에 남은 채, 시간은 흘러갔다.
오래도록 마음에 남아있는 물음표의 답을 찾고 싶어 다시 안동을 찾았다. 삼십여 년이라는 간극은 길었으나 맑고 높은 하늘과 낙동강에서 불어오는 눅눅한 강 내음, 낯설음이 묻어 나는 거리의 모습은 여전해 보였다. 예전과 다르게 곳곳을 장식하는 ‘한국 정신문화의 수도’라는 슬로건이 여행자의 마음으로 훅 들어왔다. 오랜 전통과 문화가 뿌리 깊게 박힌 도시, 조상의 가르침을 지금까지도 이어가고 있는 사람들, 바로 안동이다.
이육사 기념관을 돌아보고 나오는 길. 고즈넉한 정취의 고전미가 살아 있는 대갓집이 보였다. 그 멋에 끌려 불쑥 대문 안으로 들어섰다. 활짝 열린 대청마루 끝에 앉아 계시던 어르신이 나를 보자마자 반가이 맞아 주었다. “어서 들어오세요. 편하게 둘러보셔도 됩니다” 그분은 퇴계 이황의 종택을 지키는 15대 후손이었다. 땀이 비 오듯 흐르는 여름날이었음에도 묵묵히 고택의 구석구석을 안내했다. 사소한 질문에도 성심껏 답하며 집안 대대로 이어온 정신과 삶을 알기 쉽게 설명해 주었다. 그의 모습은 화려하거나 특별하지 않았다. 그러나 오래된 집을 지탱하는 기둥처럼 단단하고 묵직했다. 그 자세에서 삼십 년 전 만났던 ‘나의 아저씨’의 그림자를 보았다.
저녁을 먹기 위해 찾은 식당에서도 비슷한 결, 다른 모습으로 다가오는 안동 사람들을 만났다. 혼자 식사를 하고 있는데 옆 테이블 손님들이 자연스럽게 말을 걸어왔다. 인심 좋은 말투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를 하다 보니 대화가 제법 길게 이어졌다. 낯선 자리였지만 사투리가 섞인 농담과 수저 부딪히는 소리가 이내 벽을 허물었다.
“왜 그 넓은 한강에 주차를 하는데 돈을 받는지 이해가 안 된다. 서울은 참 고약하다”
“그럼, 낙동강은 주차하는데 돈 안 받아요?”
“ 우린 그렇게 인심 사납지 않습니다”
서울살이와 안동살이가 얼마나 다른 지 이야기를 나누며 감탄하다 보니, 분위기가 무르익어갔다.
거리감이 사라지자 나는 안동여행의 이유를 솔직하게 말했다. 예전에 만났던 어느 안동 사람의 친절이 단순히 개인의 성향인 것인지, 안동 사람 특유의 기질인지. 그 궁금증을 해결하고 싶어 이렇게 삼십여 년 만에 다시 찾아왔다고. 여행의 이유를 들은 그들은 “좋은 분을 만나셨네요. 안동 사람이 다 좋기만 하겠어요”라며 가볍게 웃었다.
명쾌한 답을 얻지는 못했지만, 문제는 이미 풀린 것 같았다. 혼자 식사하는 이방인에게 따뜻한 관심으로 함께 해 주는 그들의 마음. 밥상 위에서 오가는 웃음과 온기는 나를 금세 ‘혼자 온 손님’에서 ‘함께 나누는 식구’로 바꾸어 놓았다. 그 식사는 배를 채우는 끼니가 아니라 마음을 채우는 자리였다. 한 잔 따라주는 맑은 안동소주의 맛은 이제 새롭게 추가되는 안동의 향으로 기억되는 순간이 되었다.
안동 사람들의 친절은 특별한 이유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뿌리 깊은 전통과 생활 속에서 배어 나온 자연스러운 품성이었다. 대청마루를 열어놓고 지나가는 이가 잠시 쉬어가도록 자리를 내주는 너그러움이 몸에 밴 것이리라.
삼십여 년 전의 그에게 안동은 자신의 집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집을 찾아온 손님이었다. 자신의 집에 온 손님을 맞이하고 후하게 대접하는 것은 당연한 미덕이었다. 지금 만난 종택 후손도, 식당에서 함께 했던 그들도 모두 도시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따스한 사람의 냄새를 풍겨내는 사람들이었다. 화려하지 않지만 꾸준한, 겉으로는 소박하지만 속으로는 깊은 힘을 간직한 품성. 나는 그것을 30년이나 지난 지금, 그곳을 다시 찾은 후에야 비로소 이해하게 되었다.
안동을 떠나는 날, 창밖으로 붉게 물든 노을이 강물 위에 길게 번져 있었다. 그 빛은 삼십여 년 전의 기억과 지금의 만남을 하나로 잇는 다리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