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시작되었어"

떠돔에 대한 소소한 이야기

두근두근

쿵쾅쿵쾅.


1985년 8월 아직 19살이 되지 않았던 여름의 한가운데 날. 기차에 오르기 전, 내 가슴속에서는 이런 소리들이 들려왔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홀로 여행을 떠나기 직전, 두렵고 떨리고, 막막하고 그러면서도 설명 불가능한 설렘까지 여러 감정들이 회오리처럼 나를 점령했던 기억들.


앞으로 내가 전해 줄 이야기들은 많은 떠돔에 대한 소소한 이야기들이다. 첫 여행의 떨림과 두 번째 여행의 충만함과 세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 그 이후로 쭉 이어진 아름다웠고 따뜻했고 지독히 외로웠고 때로는 두렵기도 했던 내가 바라봤던 세상에 대한 이야기들을 들려주고 싶었다.


이 이야기의 첫 시작은 40여 년 전이라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다. 참 오래전 이야기이다. 그런 만큼 80년대에는 스무 살도 안된 여자 아이가 배짱 좋게 혼자 여행을 다니던 시절이 아니었다. 지금은 역사책에서나 서술되어 있는 ‘군사정권’ ‘자유탄압’ ‘삼청교육대’ 란 단어들이 우리들 곁에서 목을 죄어 오던 시절이었으니 ‘자유로운 영혼’ ‘나 홀로 여행’ ‘방랑, 방황’ 같은 국어사전에서나 나올법한 단어들은 우리를 들뜨게 하고 열망하게 만드는 시절이기도 했다.


어려서부터 늘 잔병치레에 시달리며 집안의 대표 아픈 손가락이었던 나는 대학 일 학년이 될 때까지 혼자서 무얼 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런 내가 혼자 여행 떠나는 걸 맘먹었다는 것 자체가 천지가 개벽할 만큼 어마어마한 사건이었다. 왜 혼자여행을 떠나겠다고 맘먹었는지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 이유는 한참이나 늦게 찾아온 사춘기 때문이었다. 다른 친구들이 중이병부터 시작해서 치열하게 사춘기를 겪으며 세상과 싸워나갈 때 나는 그저 부모님의 막내딸 역할만이 중요과제였었다. 그런데 ‘늦게 배운 도둑질에 밤새는 줄 모른다’는 속담처럼 늦게 찾아온 사춘기의 열병은 나를 길 위를 떠돌게 하는 증상으로 나타났다.


첫 여행부터 좌충우돌 뭐 하나 쉬운 건 없었다. 혼자라는 사실이 두렵고 도망치고 싶었다. 아무도 나를 도와줄 사람도 없었고 ‘나’라는 아이를 인식하는 사람조차 없었다. 그저 길가는 행인 1에 불과한 나의 미미한 존재를 알아가는 시간이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런 시간들이 쌓여가자 나는 더 이상 행인 1의 역할이 아닌 짧은 대사도 나름의 배역도 있는 배우처럼 조금씩 나라는 사람을 알아가게 되었다. 이런 여행길의 가장 큰 즐거움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아름다운 인연이었다. 기차를 타고 가는 동안의 짧은 인연도, 여행이 끝나고도 오래도록 이어지던 인연도 모두 내 가슴을 따뜻하고 아름답게 만들어 준 사람들과의 만남이었다.


“ 무서워서 혼자 어떻게 여행을 가?”


내 지인들은 아직도 이런 질문을 나에게 한다. 곧 60이란 나이를 앞두고 있는 지인들이 대부분인데도 말이다. 물론 두려움이 나이가 적다고 오고 많다고 안 오는 건 아니지만 육십은 ‘어떤 말을 들어도 동요됨이 없다’하여 ‘이순’이라고도 하는데 세상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 버리기는 여전히 쉽지 않은가 보다. 그런 사람들에게 ‘흠, 이런 정도면 나도 한번 떠나 보고 싶다’라는 작은 결심이 생겼으면 좋겠다. 그리고 또 하나 욕심을 내자면 40여 년 전, 어리바리했던 열아홉 살의 나처럼 세상을 떠 돌고 싶고 세상에 도전장을 내 밀고 싶어 하는 흔들리는 젊은 영혼들의 가슴에 작은 파문을 던져주고 싶기도 했다.


이런 소망을 담아 난 오래 전의 기억들을 소환하는 작업을 해 나갔다. 아직도 내 가슴과 기억 속에서 ‘선명함’ 이란 이름으로 살아있는 이야기들이 대부분이지만 간혹 기억의 부재 속에 안개처럼 흐리게만 느껴지는 이야기도 있었다.


이 이야기를 통해 하고 싶은 말 한마디는 내 여행길에서 나를 따뜻하게 바라봐 주었던 많은 길 위의 인연들에게 정말 감사했고 그 마음 때문에 적어도 내 이웃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사람으로 살 수 있었다고, 지금의 내 모습이 부끄럽지 않다고 조용하지만 힘 있게 말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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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