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선생님에게 전화가 올 때
초등학교 1학년 아이를 둔 엄마가 있습니다.
엄마는 아이가 좀 활발하고 장난을 많이 친다는 건 알고 있었습니다. 가만히 앉아서 무언가를 하는 걸 그리 좋아하지 않아, 한글도 다 떼지 못하고 학교에 보냈지만 크게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때 대면 하겠지, 공부가 다가 아니니까, 건강하게 다치지 않고 학교에 다니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기에 학기 초 선생님의 염려에도 엄마는 크게 동요하지 않았습니다.
학기 초가 지나면서 간간이 선생님께 전화가 왔습니다. 선생님 말씀이 아이가 의자에 앉아 있는 게 힘든지 교실에서 자꾸 돌아다닌답니다. 그 바람에 다른 아이들까지 덩달아 돌아다니는 통에 수업 진행이 어렵다는 전화였습니다. 그 이후로 아이가 높은 곳에서 자꾸 뛰어내린다, 친구들에게 장난을 심하게 쳐 학부모에게 항의 전화가 왔다, 한글을 깨치지 못해 수업을 따라오지 못하다 등 선생님의 걱정스러운 전화가 이어졌습니다.
엄마는 선생님에게 걱정스러운 전화를 받았지만 크게 걱정이 되지는 않았습니다. 그 나이의 아이가 할 수 있을법한 행동이라고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선생님과 다른 아이들의 부모가 유별나다는 생각이 들었다가, 항의를 했다는 말에는 불쾌한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그래도 학교에서 연락이 오면 아이를 앉혀놓고 조곤조곤하지 말아야 할 행동을 설명하며 알려주었습니다. 아이는 엄마의 말에 알았다며 밝게 대답했기에 엄마는 이제 선생님의 전화가 오지 않을 거로 생각했습니다.
엄마의 바람과 달리 선생님에게 다시 전화가 왔습니다. 아이가 친구에게 심한 장난을 쳐 다른 학부모들의 항의 전화가 계속 오고 있다는 겁니다. 이번에는 선생님도 아이를 다루기가 어렵다고 하소연하면서 엄마에게 심리상담을 받아보기를 권하였습니다.
엄마는 썩 내키지 않았지만, 선생님의 권유를 무시하기 어려워 그러겠다고 답을 했습니다. 엄마는 고민에 빠졌습니다. ‘아이에게 정말 문제가 있는 건가?’ ‘내가 잘 못 키웠나?’ 여러 날 혼자 고민하다가 아이에게 문제가 있는 건지 확인하는 차원에서 상담을 신청하게 됩니다.
최근 들어 자녀 문제로 심리상담을 고민하는 부모들에게 흔히 들을 수 있는 사연입니다. 유치원 때까지는 조금 장난이 심하다 정도만 생각했다가 학교에서 아이의 장난스러운 행동이 문제가 된다는 전화를 받게 되면 부모는 당혹스럽습니다. 더군다나 집에서 생활을 잘하고 있다면 당혹스러움은 더욱 클 것입니다. 집에서는 잘하는 아이가 학교에서는 왜 아니라고 할까요?
최근 부모들은 자녀가 자주적이고 자유로우며 독립적으로 자신의 삶을 살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아이가 행복한 삶을 사는 방식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부모 대부분이 자신의 어린 시절이 자주적이고 자유로우며 독립적으로 살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원하는 걸 말하지 못했거나, 말했어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기억을 더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기억이 상처로 남은 부모는 자녀가 원하는 걸 말하고 요구할 때 거절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 순간 부모는 자녀에게서 속상했던 어릴 적 자신을 보게 되고 남아 있던 상처가 건드려집니다.
마찬가지로 부모가 하기 싫은 걸 강요하거나, 잘못한 걸 심하게 처벌했던 기억이 있는 부모라면 아이가 하기 싫어하는 걸 하게 하거나 하고 싶은 걸 못 하게 하는 게 참 어렵습니다. 제한과 지시가 어려운 것입니다.
제한과 지시를 통해 아이는 자신의 행동, 감정, 인지를 조절하는 자기조절력을 발달시키게 됩니다. 자기조절력 발달을 위한 첫 스승인 부모가 이 역할을 하지 않으면 아이는 자기조절력 발달을 방해받게 됩니다. 자기조절력이 발달하지 못한 아이가 학교에 입학하게 되면 학교생활 적응의 문제가 드러나게 됩니다.
학교에 입학하게 되면 이전보다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이 많이 생깁니다. 학교는 아이의 나이에 필요한 활동을 통해 아이가 성장할 수 있도록 개입하는 교육기관입니다. 따라서 아이는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학교에서 정한 교육과정을 잘 참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아이는 일정 수준의 자기조절력 발달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래야 선생님의 지시와 제한에 따라 하기 싫은 걸 하고, 하고 싶은 걸 참을 수 있게 됩니다. 이것이 잘되지 않으면 학교생활이 힘들게 됩니다.
지금 당장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고 싶지만, 미술 시간이면 참아야 합니다. 받아쓰기하기 싫지만 받아쓰기 시간이면 해야 합니다. 갓 입학한 1학년 학생이 스스로 이것이 될 리가 없습니다.
선생님의 지지와 제한을 따르는 겁니다. 이 과정이 반복되면 아이는 스스로 참고 해내는 능력이 생기는 겁니다. 이것이 자기조절력의 발달입니다.
선생님의 지시와 제한에 따르지 않는 아이들을 공격적인 아이, 산만한 아이, 부주의한 아이, 우울한 아이 등의 문제아로 불리게 됩니다. ADHD와 우울로 인해 보이는 문제행동이면 치료를 받으면 좋아집니다. 그런데 자기조절력이 미발달해서 보이는 문제행동인 경우는 성격화되기 전에 빠르고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합니다. 아이들을 무작정 혼내기만 해서는 변화하기가 어렵습니다. 발달하지 못한 자기조절력 발달을 위한 적극적 개입을 해야 합니다.
자기조절력 발달에 문제가 있어 학교에서 어려움을 겪는 아이의 부모님께 ‘집에서 아이가 하고 싶은 걸 참거나, 하기 싫은 걸 하는 게 뭐가 있나요?’라고 묻습니다. 이 질문에 많은 부모가 ‘하기 싫은 건 안 시키고, 하고 싶은 건 웬만하면 다 하게 해 준다’라고 대답합니다. 이렇게 지시에 제한을 따라본 경험이 적은 아이가 학교에 입학하게 되면 그야말로 ‘멘붕’입니다.
매일 ‘멘붕’과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부정적 시선과 피드백을 받는다면 가장 힘든 건 당사자인 아이일 것입니다. 부모와 교사가 적극적으로 개입해 아이를 도와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