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합리화의 끝판 왕
초등학교 4학년 때의 일이다. 지금 생각해봐도 아찔하고 민망하다.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만들기 수업을 하려고 조별로 테이블을 동그랗게 만들었다. 6명이 한 조가 되어 완성된 미술품을 만들어야 했다. 담임선생님은 돌아다니시며 도와줄 건 없는지 확인하고 계셨다.
관심받기를 좋아했던 터라 선생님에게 한 번이라도 더 주목받고자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시끄럽게 떠들고 있었다. 친구들과 뒤섞여 장난을 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러던 중 사건이 발생했다. '뿡!' 아니 '빵!'... 방귀를 뀌고 만 것이다.
2000년대 초반에 학창 시절(특히 초등학교)을 보낸 사람들은 공감할 것 같다. 대변이 마려워도 내색은커녕 숨기기에 바빴다. 학교 화장실에서 일을 보면 전교생에게 놀림감이 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심한 경우에는 일을 보는 중에 친구들이 장난으로 뿌려대는 물벼락을 맞기도 한다. 물론 방귀는 대변과 다르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발생한 방귀는 그에 준하는 아니 그 이상의 놀림감이 되기에 충분했다.
'빵'하는 소리와 함께 교실엔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얘 방귀 뀌었다!!!' 하는 외침이 들렸다. '빵'의 주인공은 나인데, '얘'는 내가 아니었다. 내 옆에 있던 친구가 나를 대신하여 지목당한 것이었다. 그 친구는 자기는 아니라고 강하게 부정했다. 강한 부정은 이중 부정이라 했던가. 친구들은 그 말을 믿지 않았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얼굴만 빨개졌다. 그러던 중 갑자기 선생님이 소리치셨다. '다들 조용히 해!' 교실은 다시 평온을 찾았고 친구들은 만들기에 몰두했다. 평온을 찾지 못한 건 두 명뿐이었다. 나 대신 오해를 받았던 그 친구와, '빵'의 범인인 나.
선생님이 갑자기 내게 다가와 말씀하셨다. 'OO아, 너 속 보인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빨개졌던 얼굴은 거의 터질 지경이 되었다. 꽤나 큰 충격이었던 것 같다.
그날 집에 돌아와서 선생님이 하신 말씀이 무슨 의미일까 고민했다. 고민 끝에 얻은 결론은 지금 생각해봐도 참 어이가 없다. '아 선생님이 내 팬티를 보셨구나.' '바지가 조금 커서 허리가 헐렁했는데 그래서 속(속옷) 보인 다고 하신 거구나.' 나는 속 보인다는 선생님의 말을 속옷이 보였다는 말로 받아들였다. 정말이다.
인간이 얼마나 자기 방어적이고 합리화에 능한지 여실히 깨닫게 된 경험이다. 속 보인다는 말이 속옷이 아니었음을 깨닫는 데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수치스러웠던 방귀와 자기 합리화의 끝판 왕이었던 그날의 나. 너무 강렬해서 결코 잊을 수 없는 사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