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속력을 즐기고 싶다

- 그래서 운전을 좋아하는 것 같다

by doctor flotte

일이 끝나면 나는 도망친다. 차는 이미 사람들이 없는 곳에 주차해 두었다. 누가 말을 걸까 고개를 숙이고 뚜벅뚜벅 인적이 드문 통로를 지나 아침에 주차해 둔 건물 뒤편으로 걸어간다. 온종일 태양 아래 있던 차는 무척 덥다. 에어컨을 최대로 틀었지만 아직은 미지근한 바람 뿐이다. 등이 뜨겁고 얼굴이 화끈거린다. 그래도 기분은 좋다. 나는 떠난다. 출발한다. 일하는 곳이 멀리 있어 나는 매일 같이 고속도로로 장거리 운전을 한다. 이젠 익숙해진 2시간짜리 고속도로 운전이다. 고속도로에 들어설 생각만 하며 차를 몬다. 일터를 뒤로 하고 빠른 속력으로 고속도로를 달릴 때 나는 편안해진다. 나는 운전을 좋아하는 것 같다.


별로 좋은 차가 아니다 보니 엉덩이로 도로 사정을 느끼며 달린다. 언젠가부터 에어컨 환풍구에서 들리는 미세한 바람 소리, 가속을 할 때 느껴지는 저렴한 자동변속기의 덜컹거리는 느낌도 아무렇지 않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속도에서 집중하지 않거나 방심하면 큰 사고가 날 수 있다는 긴장감도 한 몫을 한다. 할 말은 아니지만 과속단속카메라의 위치도 다 외우고 있어 활주로처럼 펼쳐진 텅 빈 고속도로에서는 더 빨리 달려보기도 한다. Tmap은 시끄러울 뿐이다. 서해안처럼 여기도 속도제한을 110으로 올렸으면 좋겠다.


생각해 보면 사실은 일터를 벗어났다는 해방감도 그리고 집으로 간다는 편안함도 아닌 것 같다. 나는 운전을 하면서 편안함과 불편함, 조용함과 시끄러움, 집중과 방심 사이의 어떤 정확한 중간지점을 즐기고 있는 것 같다. 빠른 속력은 그 중간지점을 살아있도록 만든다. 나는 여기도 저기도 아닌 애매한 곳에 가만히 멈춰있는 것이 아니라 양손으로 내 안전을 책임질 핸들을 붙잡고 차선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며 달리고 있는 것이다. 속력이 근육으로 전해지고 나는 적당한 힘을 주어 속도를 조절한다. 그렇게 하다가 곧게 뻗은 고속도로와 멀리 보이는 커다란 산을 마주하면 나는 장면 속에서 멈춰버린 듯 달려간다. 운전은 언제나 내게 딱 이정도만 요구한다. 그래서 운전을 좋아하는 것 같다.


이런 종류의 편안함을 나는 좋아하는 것 같다. 100키로의 속력으로 달릴 때는 방향과 거리만 생각하면 되고 저 풍경을 즐길 여유도 있다. 생각이 해야 할 일은 딱 이정도이다. 방향과 거리만 생각한다는 것은 멍하게 있는 것이 아니다. 딱 그정도만 생각하면서 운전을 해야 나는 사고 없이 운전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운전을 할 때에는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내가 해야 할 일이 된다. 그리고 나는 그 이상은 하지 않는데 그것은 노력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해서는 안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노력을 하지 않는 것이 재미있게도 의무가 되기도 한다. 적당한 속도로 정해진 방향과 거리를 계산하며 운전한다는 것은 안전한 운전을 위한 마지막 노력이기에 그 이상은 내가 못하는 것이 아니라 해서는 안되는 일, 할 수 없는 일이 된다. 아무래도 삶이 이렇게 되었으면 하고 그리워했던 것 같다. 하고 있는 일이 해야 하는 일이 되고, 그래서 노력이란 것도 무의미해 지는 삶. 나는 그 속에서 살고 싶었던 모양이다.


기대했던 일이 잘 되지 않아 마음이 가라앉아 있다. 내가 책임을 지고 해야 할 여러 크고 작은 일들이 메모지에 가득 적혀 있다. 그런 상황에서 또 하고 싶은 일이 생각나 계획을 세우고 있는 것도 있다. 내가 잘못하고 있어 반성하고 고쳐야 할 일들도 생각이 난다. 고집을 부리면서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 일들도 있다. 그러면서 시간과 날짜는 고속도로를 달리는 내 차처럼 빠른 속도로 달려가고 있다. 나는 무책임하게도 이 삶을 모두 긍정하고 싶다. 방향이 없는 삶의 속력을 즐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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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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