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허무주의는 나를 두 개의 길 앞에 세운다
누가 샀고 어떻게 있다가 내게 온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인터넷 중고거래로 책 사는 걸 좋아한다. 이번에 산 책 맨 앞장에는 누군가 나처럼 무언가를 손으로 써 놓았다. 나도 책을 사면 항상 짧은 단어나 문장으로 무언가를 책 맨 앞장에 써 놓는다. 이제부터는 내 책이라는 통과의례다. 어린 시절 누나가 책에 그렇게 하는 것을 본 적이 있는데 그게 좋아 보였는지 따라하게 된 것 같다. 쓸 내용이 없으면 그냥 날짜와 어디에서 샀는지 그리고 내 싸인을 남기기도 한다.
이번에 산 책에는 누군가 연필로 이런 문장을 적어 놓았다. ‘세상 한 복판에 너를 던져놓고 너를 관찰하라. 니가 왜 살아야 하는지. 아무런 이유를 찾을 수가 없다’ 손글씨는 사람을 추측하게 한다. 교양 철학책이었는데 아마도 학생인 것 같다. 어른들은 잘 쓰든 못 쓰든 시력처럼 글씨도 굳어져서 아무튼 같은 글자는 일정한 모양을 보인다. 내가 궁금한 것은 사실 글씨가 아니라, 이 글을 쓴 사람이 아직도 그런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을까라는 걱정이었다. 2015년 발행으로 되어 있으니 아마 지금은 서른 가까이 되지 않았을까. 그 사람은 아직도 삶에는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고 살아가고 있을까.
삶이 무엇이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는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살아야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다른 것이다. 알 수 없다는 것과 아예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전혀 다르다. 내 말이 아니라, 우리 삶이 그 차이를 가르쳐 준다. 그래서 나는 우리가 흔히 허무주의라고 말하는 것의 위험성을 말하고 싶다.
허무주의적인 태도는 모든 의미와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다. 자신이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무의미하다고 단정짓고 그것이 냉정한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자신은 그 냉정한 사실을 받아들이고 있는 만큼 적어도 세상에 휩쓸리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허무주의만큼 세상을 색칠하고 꾸며내는 것이 또 있을까.
허무주의는 모든 것의 의미를 부정하기 때문에 결국 처음부터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을 향해 나아가게 된다. 인간의 생물학적인 본성에 이르러 정신과 마음 모두 그런 것들의 작용에 불과하다고 생각하거나 심지어 자신과 세상을 완전히 물질적인 것으로 간주하기도 한다. 나는 우연히 만들어진 화학적인 조합물이라는 식이다. 이렇게 허무주의는 의미와 가치가 없는 중립적인 것들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에 실컷 의미와 가치를 부여한다. 그것만이 사실이고 그것만이 삶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결국 자신을 그 작은 방에 가두어 버린다. 하지만 그 방이 편안하기 때문이다. 다 치워버리고 나와 상관없는 것들로 채워버렸으니 나는 더 이상 어떤 것을 찾아내거나 생각할 노력을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내 생각은 이렇다. 삶은 허무주의적인 통찰에 이르러야 한다. 세상을 의심하고 달리 보는 눈을 가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 빨리 판단을 하고 결정을 지으려 한다. 삶은 의미가 없으니 더 생각할 필요도 없다는 결론 말이다. 결론을 최대한 나중으로 미뤄두고 허무주의에 머물러 보자. 그럼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삶의 의미를 찾는 것은 이만큼이나 어려운 것이구나라는 통찰일 것이다. 그 어려운 일을 하기 싫어 작은 방으로 도망칠 수도 있겠지만, 한 번쯤 용기내어 그 어려운 일을 내 숙제로 받아들이고 싸움을 시작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삶의 의미를 찾는 것은 이만큼이나 어려운 일이구나, 제대로 된 상대를 만났으니 한 번 싸워봐야 겠구나’
허무주의는 나를 두 개의 길 앞에 세운다. 내 작은 방으로 들어가는 가까운 길과 알 수 없는 저 먼 길. 니체가 혼자 걸어갔던 그 먼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