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잃어버린 레고 조각

- 일상을 저 멀리에서 관찰할 수 있는 좋은 기회

by doctor flotte

매년 겨울 좋든 싫든, 조심하든 그렇지 않든 나는 매번 감기에 한 번씩은 걸리는 것 같다. 그리고 그 춥고 피곤하고 머리 아프고 코가 막히는 날들이 반복된다. 증상이 심할 때는 속까지 울렁거려 움직일 수도 가만히 앉아 있을 수도 없다. 나는 비염 때문에 더 심한 것 같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것은 두통이다. 두통이 심해 몸이 덜덜 떨릴 때가 있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이런 순간에 내가 바라는 것은 당연히 단 한 가지뿐이다. 건강한 상태, 감기에 걸리지 않은 평범한 날들로 어서 돌아가고 싶은 마음뿐이다. 평소에는 무의미하다고 방치했던 그런 날들.


조금씩 상태가 나아져 천천히 생각해 보고 있는 중이다. 내가 다시 돌아가고자 하는 그 일상이란 무엇일까? 하루에 커피 세 잔을 마시고,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일을 하고 더 나은 삶을 살지 못하는 것에 대한 조급함, 비슷한 식사, 비슷한 길들, 단지 그런게 일상일까? 내가 애타게 돌아가고 싶은 것이 겨우 이렇게 수 없이 살아온 그저 그런 일상이란 말인가. 나는 곧 괜찮아질 테고 그 일상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리고 나는 다시 돌아온 일상을 똑같이 살아갈 것이다. 아직 감기가 다 낫지 않아서인지 나는 아직 일상에 대한 그리움을 느끼고 있다. 그래서 생각하고 있었다. 일상이 소중해야 할 다른 이유가 있지 않을까라고. 아주 아플 때는 아니겠지만, 몸이 조금씩 괜찮아진다면 그 순간은 일상을 저 멀리에서 관찰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 사람들이 말하는 틀에 박힌 ‘소중한 일상’이라는 표현을 버리고 내 방식대로 일상에 대해 생각해 보자. 그걸 찾아내고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어 아직 감기기운이 남아있는 지금을 택했다. 이번에 다시 찾아올 일상은 내가 먼저 알아내고 싶었다.


내가 생각하는 일상은 아침에 일어나 화장실에 가고 세수를 하고 양치를 하고 머리를 감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의미 있거나 중요한 일을 하기 위해 소비되는 사소한 일들. 의외로 시간이 많이 걸리고 그만큼 시간 낭비인 것 같아 최대한 줄이기만 하면 되는 일들. 귀찮게 슈퍼까지 걸어가야 하고, 그러려면 또 옷을 꺼내 입어야 하고, 신발을 신어야 하고, 엘리베이터를 누르고 기다려야 하는 시간만 흘러갈 뿐 아무런 의미가 없는 순간들. 우체국에서 줄을 서거나, 신호를 기다리는 아까운 시간들. 하품을 하거나 밥을 차리거나 식사 후 자리를 치우거나 커피를 마시기 위해 원두를 갈고, 커피를 내리고 커피머신을 청소하는 일들. 내가 움직여 무언가를 하고 있지만 언제나 다른 더 중요한 것들에 밀려 준비나 수단, 뒤처리 정도에서 귀찮게 느껴지는 일들.


조금 알 것 같다. 내가 일상이라고 생각하며 써 내려간 것들, 나는 사실 끝없이 쓸 수도 있었다. 너무 많기 때문이다. 만일 내가 아침에 눈을 뜨고 밤에 침대에 누워 잠들 때까지 지금 내가 말한 그런 일상적인 것들을 모두 정확히 나열한다면 나는 얼마나 많은 글을 써야 하는 것일까. 내 삶을 작은 순간들로 쪼개고 그중에 일상적인 것들에 해당하는 조각들을 찾아내 모은다면, 아마도 나는 내 삶의 전부를 다시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일상을 버릴 수는 없다. 내 몸의 절반 이상을 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일상은 그냥 너무 많은 ‘나’들이어서 버릴 수가 없는 것이다. 그것이 없으면 그건 내가 될 수 없다.


음식을 하기 위해 감자를 다듬는다. 그 감자로 맛있게 만들어진 음식을 먹는다. 그 음식을 다 먹고 남은 그릇을 설거지한다. 왜 우리는 이 세 가지 행위 중에 두 번째 가운데 것만을 기억하는 것일까? 감자를 사러 걸어가고 집에 와서 손을 씻고 감자껍질을 까는 것과 그렇게 만들어진 음식을 맛있게 먹는 일 사이에 무슨 큰 차이가 있다고 어떤 것은 사진을 찍고 기억하고 어떤 것은 물에 씻어버리듯 버리는 것일까? 레고 장난감을 만들 때 부품 몇 개쯤은 없어져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는 장난감이 완성이 안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바보가 아니라면.

keyword
금요일 연재
이전 13화내일도 바다가 저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