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없지는 않은 것'으로 그렇게 '있는 것'이다
생각은 실제로 있는 것일까? 머릿속으로 생각하는 이런저런 생각들은 실제로 있는 것일까? 내가 있고 내 머리로 생각하는 것이니 없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우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익숙한 것들에 비하면 뭔가 허전하다. 보이지도 만질 수도 없기 때문이다. 생각의 모양이라는 것은 있을까? 그럼 도대체 내 머릿속으로 생각하는 것들이 실제로 있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나는 살아있고 이렇게 있고 그런 내가 생각이라는 것을 한다. 생각은 아무튼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어떻게 있는 것인지 우리는 알 수가 없다. 그럼 우리는 인정해야 한다. 있는 것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어쩌면 내가 지금까지 생각하지 못했던 다양한 방식으로 있을 수 있다.
오늘은 오랜만에 직접 철학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다. 물론 아무런 전문용어나 개념은 사용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런 것들을 싫어한다. 오늘날 철학교육을 망치는 것들 중에 하나가 바로 '자신의 생각'보다 전문용어와 개념을 가르치는 교육이다. 대학에서 전공수업이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이런 행태들을 보면 나는 정말 너무 한심하다. 개념은 나침반이고 이론은 지도이다. 세상을 걸어가야 하는데 교실에 앉아 지도 보는 법이나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지도에 있는 산은 산이 아니고, 지도에 있는 바다는 바다가 아니다. 우리가 걸어가는 길은 지도에 그려진 선이 아니다. 개념의 뜻을 외우고, 그 개념들 간의 관계를 앞에 나와 발표하고 그런 이야기들이 책의 어디에 있는지를 말할 수 있는 것이 철학이 되어 버렸다.
나는 이 글을 읽고 있는 몇 명의 사람들과 지금 짧게라도 진짜 철학을 하고 싶다. 철학은 철학적인 개념에 반비례한다. 이제 시작해 보자. 몇 문단이어도 좋다. 모양도 크기도 없는 생각이란 것이 어떻게 있는 것이 되는 것일까? 생각이 없다고는 할 수 없으니 물어야 하는 질문이다. 그것으로 이 질문의 필요성은 충분하다. 크기도 모양도 무게도 없는 생각이 있어야 한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할까? 철학을 하는 사람은 이 질문을 살면서 적어도 열 번은 물어야 하고, 적어도 열 개의 서로 다른 대답을 해야 한다. 오늘 그중 하나의 질문이 시작되었고 그 하나의 대답을 할 때가 되었다.
생각이 있음에도 크기나 모양, 무게가 없다는 것은 생각을 마치 어떤 물건처럼 생각해서는 안된다는 안내가 된다. 크기, 모양, 무게는 우리에게 익숙한 물건들로부터 만들어진 ‘어떤 것이 있는 특정한 하나의 방식'일 뿐이다. 반면 생각은 언제나 나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온다. 슬픈 생각이 들면 눈에서 눈물이 나고, 화가 나면 내 입에서는 욕이 나온다. 부끄러운 생각이 들면 나는 시선을 피해 움츠린다. 어떤 생각이 나에게 그런 행동을 야기하는 ‘그런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생각들이 때로는 무의미하다는 것도 알고 있다. 산다는 것은 내 생각들이 얼마나 무의미했는지를 성실히 노트에 적어 가는 것과 같다. 단순한 후회가 아니라, 생각이 현실과 정말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날들을 받아들여야 하고 나는 그런 날들을 살아가며 나이를 먹는다. 생각은 무의미한 것이기도 하다. 생각이 아무런 의미가 없기도 한 것이다. 생각은 의미로서만 있는 것인데, 그런 생각이 무의미하기도 하다는 사실을 한 손으로 꼭 잡고 있어 보자. 어떤 마술이 일어날지 기다리면서 말이다.
자리를 옮겨, 실제로 몸을 가지고 살아가는 ‘정말 있다고 생각하는 우리의 삶’을 생각해 보자. 먹고 마시고 싸우고 웃고 울고 하는 나와 너의 이 적나라한 '생' 말이다. 정말 있는 이 삶. 생각해 보면 이 삶도 무의미한 부분이 있다. 나는 꿈이 내 앞에서 무너질 때, 내 몸이 지쳐서 앉아 있는 것도 힘들 때 생이란 것이 너무 무의미하다는 것을 느낀다. 혹시 이 둘이 서로 만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머릿속 생각의 무의미함과 실제 생의 무의미함이 겹쳐지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 나도 몰래 '내 생각의 무의미함'과 '내 생의 무의미함'이 서로 만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알것 같다. 생각은 그렇게 현실의 무의미함과 연결된 채로 적어도 '없지는 않은 것'으로 그렇게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