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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들은 고혈압 환자들이 아닐까?

- 내가 놓치고 있는 것이 있다. 삶의 진리

by doctor flotte

생각하는 삶을 살아야만 하는 것일까? 우리가 무엇이든 솔직하게 생각하고 이야기할 수 있는 방이 있으면 좋겠다. 그럼 나는 그 방에서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저 타고난 이상하고 예민한 성격이 이렇게 저렇게 생각하고 천천히 생각하는 습관을 만든 것이고, 그 습관이 너무 오래되어 이제는 마음 안에 딱딱한 확신이 되었고 그래서 그렇게 우리는 삶을 진지하게 생각하며 살아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리고 이제 용기 내서 물어본다. ‘삶은 원래 생각의 대상이 될 필요가 있는 것일까?’


나는 어렸을 때는 더욱 그리고 지금도 아직은 평범한 사람들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과연 저들은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은 하며 살고 있는 것일까?’ 남들 앞에서 그렇게 강하게 얘기하지는 않지만, 나는 산다는 것 그 자체를 궁금해하지 않고 고민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이 과연 가치 있는 삶일지 의문을 가지고 있다. 솔직히 나는 그들이 스스로 자신의 삶을 가치 없는 삶으로 만들어 가는 멍청이들이라고 생각한다. 오만한 생각이지만 솔직히 나는 그런 생각을 한다. 그리고 나는 저런 한심하고 무가치한 삶을 살지 않는 고매한 인간이라고 자부한다. 그래서 무서운 눈으로 세상을 노려보고, 어려운 철학책에 갇혀 무언가 새로운 것을 배운 것 같으면 지적인 쾌감을 가득 안고 1미터 언덕위에 올라 세상을 내려 본다. 나는 너희들과 같지 않다는 자만심 속에서 자기만의 승자가 되어 오늘 나의 하루와 타협한다. 이 정도면 나는 또 하루를 철학자답게 잘 산 것이다. 나는 인간의 삶이 천박해지는 것을 막고 있는 외로운 투사이다. 그러나 실제 나의 삶은 이를테면 어린 시절 동네에 한 명쯤 있는 말 없고 무시무시한 소문을 가진 이상한 할아버지와 같은 모습일 것이다.


내가 자주 놓치고 있는 것이 있다. 삶의 진리, 즉 ‘깊이는 철학에서 오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삶을 진지하게 생각하며 산다는 것은 삶의 한 종류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나는 왜 인정하려 하지 않는 것일까? 왜 내 말이 맞고 다른 사람의 말은 들어볼 가치가 없다고 고집을 부리는 것일까? 왜 다른 사람들 역시 내가 선택한 삶의 모습을 따라와야 한다고 소리치는 것일까? 삶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 삶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는 것이다. 타고난 소질이 다르거나, 그런 것을 생각할 틈이 없는 삶을 살아야 하거나, 그런 생각이 필요하지 않은 것일 수 있다. 나는 반 고흐기 삶을 진지하게 ‘물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에게는 그럴 필요가 없었는데, 왜냐하면 그는 삶을 진지하게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아예 처음부터 삶을 물어볼 기회도 없이 살아 온 늙으신 어머니를 욕할 철학자는 없다. 공원에서 아이와 뛰어노는 가족들에게 가서 내가 굳이 ‘그런데 삶이란 무엇인지 진지하게 생각은 하고 있는 겁니까?’라고 물을 수는 없다. 원래 삶은 진지한 생각들로 채워질 필요가 없는 것 같다. 그렇지 않은 삶이 다양한 모습으로 여기저기에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삶들은 나처럼 오만하지도 않다.


정리된 생각, 즉 지식으로는 삶을 이겨낼 수 없다. 왜냐하면 삶은 처음부터 이겨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식은 무엇인가를 안다는 것, 그래서 그것의 정체를 파악할 수 있다는 것, 다시 말해 내가 그것을 내 손아귀에 쥐고 지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오만이다. 그러나 실은 그것이 삶이 인간에게 허용한 여러 가지 모습들 중에 일부라는 것은 분명하다. 철학자들은 고혈압 환자들이 아닐까? 정상 혈압을 유지하기 위해 평생 약을 먹어야 하는 처지. 그렇게 약을 먹지 않으면 갑자기 심장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자기 건강이나 먼저 챙겨야 하는 심각한 고혈압 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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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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