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아파트 시멘트처럼 딱딱해진 내 마음

- 아파트는 계속 속삭인다

by doctor flotte

사람들이라고 표현하지만 어쩌면 나 자신일 수도 있을 텐데, 사람들이 아파트에 몰려 사는 건 사실 약간은 삶이 불안하고 외로우면서도 또 자기만의 영역을 지키고 싶은 지극히 단순하고 개인주의적인 마음 때문이 아닐까. 그리고 동시에 그 귀찮은 문제를 자기 삶의 문제로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나약하고 어리석은 마음. 겉으로는 투자라고 얘기하고, 편리한 생활권이라고 얘기하겠지만 아마도 조금만 솔직해진다면 그리고 솔직해지기 위해 노력한다면 삶에 대한 맹목적인 불안과 그 불안을 모른척 하려는 마음이 있다는 것을 시인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같은 동에 살며 저 사람이 몇 층에 살고 누구 아빠라는 것도 짐작하고 있지만 엘리베이터에서 결코 인사하지 않는다. 좁은 공간에서 조차 핸드폰으로 숨어들어가 확실한 보호막을 친다. 그리고 나처럼 엘리베이터에서 그냥 서 있는 사람들을 경계한다. 나는 종종 본의 아니게 상대방을 신경 쓰게 하는 이상한 사람이 된다.


사람들이 사는 곳에 끼어들어가 자기도 한 공간을 차지하고 싶지만, 실은 사람들과 같이 있고 싶지는 않은 것이다. 애매하고 손해볼 것이 없는 삶의 상태를 만들고 그 안에 머물며 자기 삶을 눈치 보고 있는 것, 그것이 아파트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솔직한 모습이다. 아파트라는 가장 기괴하고 비인간적인 거주방식은 이제 선생님이 되어 우리에게 삶을 가르친다. 시멘트로 나를 둘러싸고 현관문 작은 구멍으로 밖을 내다보는 것이 잘 사는 것이다.


우리가 들어가 살고 있는 치사한 거주형태는 딱딱한 시멘트로 보호되고 있다. 시멘트는 우리에게 사는 법을 가르쳐주는 선생님이 되고 우리는 모범생이 되어 잘 살아간다. 애매한 말투와 표정, 애매한 눈빛과 속을 들어내지 않는 처세, 나는 오늘 하루도 나를 잡아먹으려는 이 야생의 사회 속에서 현명하게 잘 살아 남았다. 사람들은 믿을 것이 못된다고 나는 퇴근 후 시멘트 둥지에서 내 새끼들에게 가르친다. 나처럼 아빠처럼만 살면 된다고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것인데, 실은 내가 그렇게 이기적이고 개인주의적이고 비겁하게 살아가는 것은 아니라고 변명하고 싶은 것이다.


아파트를 깨고 나올 수는 없을까? 현관문을 열고 나오면 사람들을 경계하기 위해 시멘트처럼 딱딱해지는 내 표정과 내 마음을 다시 체온이 있는 살로 만들 수는 없는 것일까? 그냥 원래 그렇게 살아가는 모습대로 말이다. 그렇게 할 필요도 없고 방법도 없는 것일까? 그건 정말 내 걱정처럼 손해일까? 사람들에게 내 허점을 보이는 꼴이 되는 것일까? 아니, 사실은 모든 사람들이 그저 이런 걱정을 하며 서로 눈치를 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누가 먼저 내 마음을 열어주기를 기다리면서.


자신의 순수한 마음을 믿어보는 것은 어떨까? 어린아이처럼 말이다. 마름모꼴 보도블럭에 금을 밟지 않고 다시 한번 걸어가 보는 것이다. 어린 시절 학교길에서 내가 그리고 우리 모두가 그랬던 것처럼. 가끔 그렇게 어린아이가 되어 다시 한번 금을 밟지 않고 걸어보고 싶지만 누가 옆에서 보고 있을까 눈치를 보게 된다. 하지만 아무도 뭐라 하지 않고 아무도 당신을 욕하지 않을 것이다. 당신 생각보다 위험하지도 않고 안전한 행동이다. 금을 밟지 않고 보도블럭을 걸어가는 어른은 이상한 사람도 아니다. 누구도 그런 당신을 비난하지 않는다.


놀랍게도 우리는 사실 이미 이 모든 걸 알고 있다. 그런데도 하지 않는다. 시멘트처럼 굳어진 내 얼굴과 내 마음이 자꾸 그건 이상한 행동이라고 내 귀에 속삭이기 때문이다. 아파트는 계속 속삭인다. 멍청한 짓 하지 말고 얼른 안전한 아파트로 들어가 문을 걸어 잠그라고.

keyword
금요일 연재
이전 08화삶이 나를 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