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것은 비겁한 것도 작은 용기도 아니다
요즘 니체의 책을 읽고 있다. 오랫동안 연구해 온 것들이 책 한 권으로 묶일 만큼 정리가 된 것 같아 다른 주제를 찾던 중 오랫동안 미뤄왔던 니체 연구를 시작하기로 했다. 니체를 미뤄 온 것은 사실 철학자로서 어떤 콤플렉스 때문이었다. 인 것 같다가 아니라 이었다. 니체의 글은 강렬하고 파괴적이다. 그리고 그를 이해하는 만큼 그 매력은 더해진다. 철학과 학부생 시절 누구나 한 번쯤은 니체에 빠지고 니체를 이해했다고, 심지어 자기만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넘치는 자만심으로 세상을 내려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공부를 더해가며 니체는 마치 숨기고 싶은 사춘기의 유치한 실수처럼 느껴진다. 철학은 개념과 체계로 이루어진다고 가르치는 교수들 앞에서 나는 순종하듯 지식을 쌓아간다. 그리고 내 앞에 있는 저 ‘성공한 철학자들’(교수)과 같이 개념과 체계로 세련되게 철학을 하는 것이 성숙한 철학자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니체라는 사람은 점점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 그리고 잊히지 않는 첫사랑이 되어 간다.
그동안 나는 왜 니체를 읽지 않았을까? 그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니체를 조금씩 알아갔기 때문이다. 니체를 조금씩 아는 만큼 니체를 읽는 것이 점점 걱정스러웠다. 그의 생각 깊숙이 들어가면 어쩌면 지금까지 내가 생각했던 것들, 오랜 시간 쌓아온 업적들이 모두 흔들릴 수 있다는 불안감이 생겼기 때문이다. 니체는 확실히 자신의 생각을 받아들이거나 그렇지 않거나를 선택하게 하고 자신의 생각을 받아들이는 경우 그 외 모든 것들을 과감하게 포기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그런 내가 조심스럽게 니체를 읽기로 했다. 아직 대단한 결단과 용기를 가지고 그러는 것은 아니다. 내가 다치지 않을 만큼만 가시들을 피해가며 일단은 너무 위험하지 않은 곳까지만 걸어가볼 생각이다. 이런 내가 철학자로서는 비겁한 것일 수 있다. 나도 안다.
철학만이 아닐 것이다. 그건 쉬운 일이 아니다. 지금의 나를 만들어 온 것들, 그래서 내가 지금도 의지하고 있는 튼튼한 것들, 그것 때문에 내가 지금 사람들 앞에 나설 수 있는 것들이 무너질 수 있다는 생각을 받아들이는 것. 그건 분명 위험한 일이기도 하다. 누군가에게 그렇게 하라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다. 나 역시 신중해야 한다. 용기 없고 비겁해 보일 순 있어도 어쩔 수 없다. 그건 분명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조심하면 되지 않을까? 가 본적이 없고, 혹시 돌아올 수 없는 길이라면 조심해서 더 조금씩 걸어가 보면 되지 않을까?
남이 보지 않고 알아차릴 수 없게 나만 알게 한번 그렇게 해 보자. 내가 하던 일들은 포기할 수 없으니 그대로 같이 하면서 말이다. 소심하게 시작해 보자. 천천히 조심조심 그래서 피해가 있더라도 크지 않게. 그럼 그건 신나는 일이 될 것이다. 물론 나만 신나는 일이겠지만.
두 개의 갈림길이 있다는 것은 책에서나 하는 말이다. 삶에는 둘로 갈라지는 길은 없다. 나는 한 명의 사람으로 하나의 생을 살 뿐이다. 두 개처럼 보이는 것은 하나가 분명하게 그리고 동시에 다른 하나도 그만큼 분명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실은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문제가 아니라, 둘을 느껴가며 하나의 길을 걸어가는 것뿐이다. 이 길을 걸어가는 것이 다른 길을 포기하는 것 같아 아직도 확신이 서지 않아 걱정이 된다면 조심조심 겁쟁이처럼 살금살금 걸어가면 된다. 그것은 비겁한 것도 작은 용기도 아니다. 삶에 가까이 붙어 살아가는 것이다. 내가 배워온 것들, 다른 사람의 눈이 아닌 내 삶이 나에게 가르쳐 주는 것에 더 귀를 기울이는 솔직함.
크고 강한 니체에 내가 언제 도착할지 모르지만 나는 지금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