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삶을 이렇게 또 배워간다는 것이 재미있다
나는 아직도 잘 울지 않는다. 왜 그런지는 모른다. 남 앞에서는 더 그렇고 혼자서 슬픈 감정이 들 때에도 나는 끝까지 울음을 참으려 한다. 나에게 눈물은 우선 참아야 하는 어떤 것이다. 어린 시절 어떤 경험이 무의식에 남아있는 것인지, 약한 내 모습을 참아내며 강한 척을 하려는 것인지 전혀 알 수 없다. 내가 우는 것을 참는 것과 비슷하게 하는 행동이 또 하나 있는데, 그것은 걱정을 남에게 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가족에게도 거의 말하지 않는다. 혼자서 끙끙 앓고 있는데, 차라리 그게 낫고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때로는 굳이 그렇게 숨길 필요가 없는 일인데도 그렇게 한다. 습관처럼 되어 버린 것이다. 이유는 나도 모른다. 그냥 그렇게 쭉 살아왔다.
이 나이가 되도록 뭐가 부끄럽고 뭐가 무서워서 아내에게조차 걱정을 말할 용기도 없는 것일까? 그렇게 살아오다 보니 사실 비슷한 경험을 많이 했는데, 솔직히 걱정거리를 혼자서 감당했다고 해서 그리고 그렇게 어떻게든 이겨냈다고 해서 그렇게 하는 것이 정말 잘 한 일인지는 모르겠다.
이번에는 아내에게 들키고 말았다. 전에도 비슷한 걱정거리가 있었고, 나는 전에도 잘 이겨냈기 때문에 이번에도 아무도 몰랐으면 했다. 당연히 아내에게는 더욱 그랬다. 아내는 자기 걱정도 많은 사람이어서 내 걱정까지 얹어주면 감당하기 어려울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내가 실수한 것이 아니라, 그냥 어쩔 수 없이 아내가 알아 버렸다. 아내는 내 예상대로 이 문제 때문에 혼자서 걱정을 많이 한 모양이다. 나와 단둘이 있을 때는 조심스럽게 그 일을 꺼내 얘기하곤 하기 때문이다. 나는 아내에게 일이 잘 안되면 당신도 걱정이 클 테니 그냥 모른 척하고 있으라고 했다. 내가 그동안 혼자서도 잘 감당했던 일이라 나 혼자서 견디는 게 낫다고 했다. 아내도 동의하는 것 같다. 둘이 같이 걱정한다고 해서 일이 더 잘 되거나 그렇지 않거나 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 가지 예전과는 다른 게 생겼다. 내 걱정을 아내가 알아 버리고 나처럼 걱정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일이 잘 안되어 내가 당분간 힘들어하게 되더라도 아내가 그런 나를 이해해 줄 거라는 생각을 갖게 된 것이다. 전에 혼자서 감당해야 할 때는 이런 기대를 할 수 없었다. 나는 그저 며칠 이유 없이 예민한 사람이었다가 다시 돌아올 뿐이었다.
걱정거리를 나눈다는 것은 무엇일까? 물론 진짜 가까운 사람에게 말이다. 생각해 보면 나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것 같다. 그 일이 잘 안되더라도 그 사람은 내가 편안하게 힘들어할 수 있도록 내 곁에 가까이 있어 줄 것이기 때문이다. 아내는 슬쩍 내 눈치를 보고 자리를 비켜줄 것이다. 때론 아내는 말없이 내 곁에 있어 줄 것이다. 나보다 더 화를 내며 그 일을 기분 나빠 하면 나는 괜히 마음이 가라앉을 지도 모른다. 나는 아내가 말없이 내 곁에 있어준다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게 알 수 없는 힘이 되어 나를 일어서게 할 것이다. 저 사람과 함께 했던 예전의 많은 추억들이 눈치없이 소환될 것이다. 그리고 나는 저 사람 만큼은 나를 진심으로 걱정해 주고 있다는 사실을 점점 알게 될 것이다. 그럼 된 것이다. 사람은 사람으로 일어선다.
여기까지는 아직 내 생각이다. 이제 처음으로 내 걱정을 아내와 나누고 있으니 내가 생각했던 그런 일들이 정말 일어나는지 살펴보자. 아직 내 걱정은 좋은 결과일지 나쁜 결과일지 모른다. 결과도 궁금하지만 이제는 아내의 모습도 궁금하다. 결과가 좋다면 그것으로 충분히 좋은 일이고,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나는 나를 일으켜줄 아내를 발견하며 또 다른 의미로 좋아하게 될 것 같다. 이번 기회를 통해 걱정을 나누는 것이 결코 나를 나약하게 하거나 상대방을 힘들게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내가 깨달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내가 아내에게도 그런 사람이 되고 있는지 생각해 봐야 겠다. 삶을 이렇게 또 배워간다는 것이 재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