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문학을 망치는 책
몇 년 전 유행했던 책이 있다. 지금 나도 중고책으로 한 권 구입해 가지고 있는데, 아마도 인문학 쪽에, 아니 너무 유행해서 책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은 다 들어봤을 책이다. 굳이 책 이름을 밝힐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인문학의 다양한 기초지식을 모아놓은 책인데, 시대흐름에 맞게 잘 편집하고 책 제목도 잘 붙여서 잘 팔렸던 것 같다. 저자와 출판사는 아직도 비슷한 책들을 계속 만들어내고 있는 것 같다. 사실 내용이나 구성은 전혀 새로울 것이 없다. 전에도 이런 책들은 있었다. 여기저기 인문학, 인문학 하던 시대, 하지만 깊고 어렵고 긴 글을 싫어하는 사람들에게 ‘그래도 당신은 인문학을 사랑하는 교양있는 사람’이라고 위로해 줄 수 있는 책을 잘 기획했던 것 같다. 내가 아는 한 출판사 대표도 그 책의 성공을 부러워하며 자기가 했어야 했는데 타이밍을 놓쳤다며 입이 닳도록 한탄했다.
나도 그 책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지만 돈을 주고 사고 싶지는 않았다. 인스턴트식 지식과 출판사의 상술이 만들어낸 책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없다. 아니 그 책의 저자와 출판사에는 미안하지만 남산골샌님같은 내 눈에는 그 책은 인문학을 망치는 책이다. 수업시간에 학생들이 종종 그 책을 언급하길래 어쩔 수 없이 중고로 사서 읽었다. 너무 많이 팔려서인지 책이 넘쳐나 당근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다. 나는 그 책 첫 페이지에 이렇게 적어놓았다. “이따위 책이 인문학이라는 이름으로 팔리고 읽히고 있다는 것이 안타깝다. 아무런 희망이 없는 세상”
나도 남산골샌님이라고 접고 하는 얘기이니 또 삐딱한 얘기나 하겠구나 그렇게 들어주었으면 좋겠다. 인문학의 위기라는 말은 이 나라에서 사람들이 교양서적을 읽지 않는다는 것으로 잘못 간주되었다. 그래서 시청의 지원 아래 동네 주민센터와 도서관에서 독서모임이 증가하고 저자 강연회를 허겁지겁 만들어냈다. 인문학 지원사업, 인문학을 사업으로 보고 돈으로 막으면 해결이 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아까 말했던 책은 사실 이런 문화적인 현상의 한 부산물일 뿐이다. 저자가 탁월하거나 책이 좋아서가 아니다. 인문학의 위기의 완성은 인문학이 유행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희망이 없다고 얘기했다.
영어도 그렇고 우리말도 그렇고 인문학이라는 말에는 인간, 사람이라는 뜻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렇다고 사람을 연구하는 학문이라는 뜻은 아니고, 삶을 다룬다는 것이다. 사람만 삶이라고 하는 것이니, 인문학을 그냥 ‘삶을 다루는 학문’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물론 삶을 그 자체로 다룬다고 하면 더 정확하다. 수학과 과학, 경영, 경제가 인문학이 아닌 이유이다. 그것은 자기들의 규칙 안에서만 삶을 다룰 뿐이다. 인문학은 여기저기 걸쳐있는 잡다한 지식이 아니라, 삶을 향해야 하고 삶을 직접 다루어야 한다.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이 참 공허하게 들리기는 하지만 이 질문을 피하는 순간 그 무엇도 더 이상 인문학은 아니다.
인문학이 정말 위기라고 생각한다면 그 처음과 시작으로 돌아가야 한다. 단순히 옛날 고전을 읽자는 것이 아니다. 인문학의 처음과 시작은 ‘지금 살아 있는 사람의 삶’이다. 그렇다면 삶이라는 것을 시야에 확실히 묶어 두고 그놈이 스스로 무엇을 말하는지 들어봐야 한다. 엉덩이를 무겁게 해서 딱 자리를 잡고 앉아서 기다릴 수 있어야 한다. 삶이 스스로 나에게 무어라 말하는지 앉아서 기다리는 태도가 필요하다. 갑자기 표현이 이상하게 들렸겠지만 그게 맞다. 그리고 그 대답을 누군가 글로 만들어 작품을 남겼다면 우리는 몇 번이고 읽어야 한다. 우리에겐 새로운 책이 더 필요한 것이 아니다. 필요한 것은 서산(書算)을 끼워두고 몇 번씩 책을 읽는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