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에 대하여 캐롤라인 냅 <명랑한 은둔자>
혹시 누군가에게 형식적으로 언제 한 번 커피나 한 잔 하자, 고 했는데 막상 그 사람이 언제? 라고 물으면 부담감이 팍 밀려온 적 있지 않나요? 또 막상 사람을 만날 약속을 했는데, 그 약속이 상대의 사정으로 취소되면 당황스러우면서 왠지 안도감이 느껴진 적은요?
우리는 너무나 많은 관계의 압박을 받으며 살고 있습니다. 혼자서도 충분히 재미있을 수 있는데 반드시 누군가와 만나서 함께 시간을 보내야 하고, 당연하다시피 이성 친구나 배우자가 있어야 한다는 사회적 압력은 약속 하나 없이 텅텅 빈 나의 주말을 좀 짠한 것으로 보이게 하죠. 어쩌면 인스타 피드에 뜬 명품이나 해외 휴양지보다 다정한 친구들, 연인들과 함께 찍은 사진에 고독한 나는 더 우울해질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정말 과연 그래야 할까요? 혼자 있으면 안 되나요? 친구 좀 없으면 안 되나요? 연인과 꼭 주말 약속이 없어도 괜찮을 수는 없을까요? 혼밥, 혼영, 혼카페 해도 나 잘살고 있다고 외치면 안되나요? 그런데 말입니다. 지나치게 혼자 다니다 보면 사람을 만나는 것을 점점 더 기피하게 되고 두려워하게 되는 지점에 다다르는 수가 있습니다. 즉, 사회적 관계도 연습에 의해 길러지는 부분이 분명 있는데 아주 작은 실습조차 할 기회가 전무해지다 보면 타인과 만나 차 한 잔 마시는 한 시간이 마치 공부 안한 과목 한 번호로 찍으러 나가야 하는 부담감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는 거죠.
캐럴라인 냅의 <명랑한 은둔자>는 발칙한 에세이입니다. 저자는 안타깝게도 암으로 사십 대 초반에 이미 하늘의 별이 되었지만, 이 에세이집에 그런 기미는 다행스럽게도 아직 보이지 않습니다. 그저 사랑하는 반려견과 함께 살며 주말 약속이 거의 없는 "명랑한 은둔자"인 싱글 여성의 위트 있고 재미있으면서도 결코 가볍지만은 않은 에세이들이 아주 잘 읽히고 그만큼 공감 가는 대목도 아주 많습니다. 캐럴라인 냅의 표제작인 <명랑한 은둔자>에는 이 고독과 고립의 경계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나옵니다. 그리고 그 균형을 유지하는 것에 대한 중요성과 어려움에 대한 이야기도 있죠. 누구나 한번쯤 생각해 본 문제입니다. 나는 자발적 왕따인가, 아니면 진정한 아웃사이더인가. 또 그런 결론은 차치하고서라도 나의 지금 이 라이프 스타일은 고수해도 되는 것인가, 아니면 뭔가 깨고 나가야 하는 불완전한 상태인가. 이런 애매한 질문들 말입니다. 저자는 본인이 실제 그런 고민을 치열하게 하고 난 후 쓴 유쾌한 글을 통해 우리 자신도 들여다 보게 만드는 재주를 가지고 있습니다. 캐롤라인 냅의 에세이를 읽으며 우리는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건 읽기의 가장 심오한 체험 중 하나죠. 타인의 이야기를 읽으며 나를 돌아보게 되는 일. 이런 순간은 그리 흔지 않아요.
"우리"라는 그 무거운 단어에 대한 저자의 이야기는 꼭 한번 읽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다음 번부터는 홀로 지내는 시간이 왜 저번에는 좋았고, 이번에는 짜증스럽게 느껴지는지 그 차이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게 될 거라 믿어요.
고독은 종종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배경으로 두고 즐길 때 가장 흡족하고 가장 유익하다. 적절한 균형을 지키지 못하면, 삶이 약간 비현실적인 것이 된다.
-캐롤라인 냅 <명랑한 은둔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