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lanca Nov 03. 2023

이런 사랑

앤드루 포터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사랑에 빠져본 적이 있나요? 아니, 사랑에 대해 어떤 그림을 그려본 적이 있나요? 저는 어릴 때 흔히 사랑에 대한 환상을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서 키워왔던 것 같아요. 상대가 딱 적절한 타이밍에 가장 이상적인 모습으로 나타나 나의 부족한 점, 공허, 지루한 시간을 채워줄 거라 믿은 거죠. 하지만 사랑이 어디 그렇나요? 저는 첫사랑부터 사랑은 서로 전혀 다른 생애 역사를 지닌 사람과 찰나 같은 시간을 비껴가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혹독하게 배웠답니다. 상상했던 것처럼 사랑은 달콤하지도 않았고, 해피엔딩도 아니었어요. 사족이지만 실패한 첫사랑으로 사랑에는 희극적 요소보다 비극적인 요소가 훨씬 많다는 것을 배웠죠. 커져가는 마음은 결국 바람이 빠져 쪼그라들고 그 템포는 각자가 다르기에 어느 누군가 하나는 결국 울게 되어 있다는 걸요. 물론 아주 순탄하게 결혼이라는 제도로 안착하는 경우도 있습니다만.


앤드루 포터의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은 제목과는 달리 물리 관련 얘기가 아닙니다. 제목 탓에 소설 코너가 아닌 과학 서가에 꽂혀 있는 경우도 있다지만, 엄연히 사랑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은 물론 실패한 사랑입니다. 노년의 물리학 교수와 학생 간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렇게만 요약하면 상당히 부적절해 보이죠? 그러나 이야기는 물론 그 부적절함에 초점을 맞추지는 않습니다. 헤더는 물리학 강의 시간 교수가 낸 방정식 문제에 유일하게 해답을 제출한 학생으로 그의 티타임에 초대받게 됩니다. 그에게서 헤더는 "포괄적인 온기"를 느끼게 됩니다. 이후로 둘은 종종 교수의 아파트에서 대화를 나누게 됩니다. 그런데 헤더에게는 멋진 의대생 남자 친구 콜린이 있었습니다. 물론 헤더는 그 교수와의 관계에서 전혀 에로틱한 뭔가를 느끼지 않았기에 남자 친구가 있다고 로버트 교수에게 미리 밝히죠. 문제는 남자 친구 콜린에게는 왠지 로버트에 대해 얘기할 수 없었다는 겁니다. 이 지점에서 뭔가가 느껴지죠. 네, 맞습니다. 헤더가 그 노교수에게서 어떤 뭔가를 느끼게 되는 겁니다. 그리고 로버트도 그걸 거부하지 않습니다. 둘의 공감대와 교감은 참 골치 아픈 종류의 것입니다. 사실 누가 이상하다 하지 않겠어요? 결혼할 사람이 있는 학생과 별거 중인 교수와의 정기적인 만남에 대해서요. 그런데 독자는 이 관계에 바로 설득되어 버린다는 겁니다. 로버트는 절대 헤더에게 에로틱한 접근을 하지 않습니다. 극도로 조심하고 그건 헤더 또한 그렇습니다. 그러나 이런 조심스러움에는 말하여지지 않는 그 무언가가 항상 드리워져 있습니다. 그리고 작가는 독자들을 그 모호하고 어릿한 지점으로 기민하게 끌고 갑니다. 


이런 사랑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앤드루 포터가 사랑을 형상화해 낸 지점에는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반드시 그 사랑이 육체적이거나 에로틱한 정서를 띨 필요는 없다, 그러나 그럼에도 그 사람의 인생에 굉장히 중요한 지분을 차지할 수 있다, 그 사랑은 사회적으로 반드시 용인될 성질의 것은 아니다, 이런 메시지입니다. 헤더는 콜린과 결혼하며 로버트와 연락이 자연스럽게 끊깁니다. 그 둘의 사랑은 그렇게 끝났을까요?


"모두 다 말할 수 있었다."라고 헤더가 표현하는 로버트와의 관계는 끝나도 끝난 게 아닙니다. 궁금하시면 짧은 이야기니 찾아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어떤 사랑이 한 사람의 인생에 어떤 여운을 남기며 산화하는지에 대한 아름다운 이야기니까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