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사랑이 아닙니다.

by 영자의 전성시대

스승의 날 아침 출근길, 일찍 출근하는 나보다 아이들이 먼저 와서 머리에 카네이션 모양의 띠를 두르고 길을 만들어 박수를 쳐 주었다. ‘왠지 기분이 으쓱한걸!’ 하며 교실로 들어갔다. 가방을 내려놓자마자 눈에 익은 아이가 쓱 들어왔다. ‘누구지?’ 하며 몇 초의 시간이 지난 뒤, “어머 어머 어머, 너 웬일이야? 학교는 어쩌고 여길 왔어?” 소리 높여 아이를 마주했다. 이 아이는 6년 내내 나와 붙어살다가 2월에 졸업한 졸업생이었다. 아이는 깜짝 파티를 위해 동생의 교복을 입고 가방도 찾아 메고 선물과 카드를 들고 등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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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보니 너무 반가웠고 내가 아이를 그리워했던 만큼 아이도 나를 그리워하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중학교에서 스승의 날을 자유 휴업일로 정해 아침 일찍 찾아올 수 있었다고 몇 개의 과자들을 포장하고 곱게 쓴 편지를 내밀었다. 이 아이를 만날 수 있게 해 준 스승의 날이 참 고마웠다.


1교시부터 아이들은 학교를 돌며 카네이션 배지를 달아주고 노래를 불러주는 이벤트를 진행했다. 쉬는 시간이면 여러 명씩 편지를 들고 찾아와 “선생님 축하드려요, 사랑합니다.”를 외치며 고백해 주었다. 편지도 편지지만 아이들이 자기들의 입으로 사랑을 표현해 주어 얼마나 감사한지, 이것도 중요한 교육이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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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명의 아이들이 불쑥 들어오더니 나를 위해 춤을 춰준다고 한바탕 난리를 치고 나가고, 안마 쿠폰을 선물로 주며 억지로 내 어깨를 꼬집다 나간 아이들, 자신들의 이벤트에 어떤 생각이 드는지 인터뷰하며 영상을 찍는 아이들, 카드를 들고뛰어 들어와 안아달라고 조르는 1학년 아가들 등등 코로나 기간이 끝난 뒤 아주 오랜만에 느끼는 스승의 날의 감동이었다.


점심시간, 6학년 남자아이가 조용히 들어와 “선생님, 혹시 내일 점심시간에 시간 있으세요?” “왜?” “오늘은 바이올린을 안 가져와서 못할 것 같고, 내일 점심시간에 바이올린 연주를 해드리고 싶어서요.”라는 거다. 나는 또 감동해서 “와 너무 신난다. 어쩜 그런 생각을 했어?” 하며 좋아했다. 다음날이 기대된다. 스승의 날이 있어 이런 선물을 받을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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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하고 내려와 잠시 커피를 마시는데 어느 분이 조용히 교실 문을 열더니 “이영자 선생님 계신 가요?” 하신다. “전데요?” 하니 손에 들고 있던 꽃바구니를 전해주셨다. 지도하는 독서동아리 중 <버지니아 울프와 밤을 새다>에서 보내주신 선물이었다. 영화에서만 보던 ‘직장에서 꽃바구니 받아보기’를 실현하는 순간이었다. 보내주신 선생님들께 감사드리고, 이런 영화 같은 일이 일어난 이날이 참 좋았다.


고등학생이 된 남자아이 둘이 찾아와서 성적 고민을 하며 내내 한숨만 쉬고 돌아간 뒤, 고1이 된 제자가 인스타로 연락이 왔다. 만나고 싶다고 내 시간을 물어오는 것이었다. 학교로 오면 맛있는 떡볶이를 사주기로 하고 약속을 잡았다. 찾아온 학생들 하나하나에 과자 하나씩을 쥐여주며 그리움의 단맛을 해갈했다. 그리운 이들을 만나는 이날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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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출근해서 내 자리에 가니 책상 위에 아이들의 편지와 꽃과 작은 선물들이 어지럽게 늘어져 있다. 이 편지와 꽃과 선물은 사랑의 표현이고 존경의 의미라고 생각한다. 마음에 벅차오르는 무언가가 있었다.


‘아, 나만 이리 사랑한 게 아니구나. 나 혼자 짝사랑한 게 아니라, 우린 서로 사랑했구나.’


내 사랑을 알아준 아이들에게, 그리고 마음으로 받아준 이들에게 감사하고 이날을 빌어 나도 사랑받고 있음을 알게 해 주어 나는 스승의 날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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