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 입학할 때부터 2년 내내 질문만 하는 학생이 있다. 아이는 끊임없이 손을 든다. 수업에 방해가 되든, 안되든 신경 쓰지 않는다. 아니, 거기까지 신경을 못 쓴다. 지금 자신의 물음이 더 중요하니까.
아이의 궁금증은 사소하다. “선생님, 이거 맞아요?”가 80%를 차지한다. 선생님의 설명을 들었을 텐데도 어떤 활동을 하는 데 있어 자기 확신이 없어 계속 질문만 한다. 그렇다고 선생님의 대답이 크게 작용하지는 않는다. 5분이 지나면 똑같은 질문, “선생님, 이거 맞아요?” 한다.
‘아이는 왜 이런 행동을 할까?’를 생각하며 2년 정도 아이를 관찰했다. 먼저 아이는 발음이 매우 부정확하고 글자를 몰랐다. 그러다 보니 학습에 소극적이고 아이들 사이에 잘 끼지 못했다.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했고 아이들은 기다려주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아이는 자꾸 무언가를 확인했고 스스로 결정하는 일을 멈췄다. 자기 자신에 대한 자신이 없어서 나오는 행동일 것이다. 아이를 보고 있자니 마음이 짠했다. 10년도 채 안 살아 본 아가가 벌써 자신에 대한 자신이 없다는 게 참으로 씁쓸했다.
우리는 엄마 뱃속에서 나올 때 자신감을 100% 충전하고 나왔을 거다. 살면서 이 배터리를 매일 조금씩 사용하는데 어떤 날은 “훅”하고 대량으로 써버리고, 어떤 날은 다행히 배터리를 충전하기도 한다.
우리는 타인을 바라보며 비교하며 자신감을 갖는다. ‘저 사람보다 내가 낫네.’하며 자신감이 자라기도 하고 타인의 인정을 받으면 자신감 뿜뿜이다. 그러나 반대로 생각하면 ‘저 사람보다 내가 못하네.’라고 느끼면 자신감을 잃는 것이고, 타인이 나를 인정하지 않거나, 무시하면 자신감 바닥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믿지 못할 타인에 의지하며 자신감을 갖는다는 건, 매우 위험한 일이다. 적어도 나를 한결같이 관심 있게 지켜보며 일관적으로 평가해 줄 사람이 기준이 되어야 안전하다.
그럴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바로 ‘나’다. 타인과 비교하지 말고 내가 생각했을 때 만족하는 영역이면 ‘나는 잘하는 사람’인 것이다. 때로 실패할 경우에라도 남들은 몰라도 나는 안다. 내가 왜 실패하게 되었는지.
그럼 다시 그 부분을 보완하면 되는데, 괜히 옆에 잘 있는 자신감까지 건들지는 말자. 보완한 후에도 안된다면 그때 건드려도 늦지 않는다. 그래서 적어도 나한테 만큼은 자신 있는 내 모습이 되어보자!
아이를 보며 ‘저 아이가 자신 있게 잘 컸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결국 돌고 돌아 내 인생을 성찰하고 있다. 역시 ‘아이는 어른의 거울이다’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다. 아이의 모습이 결국 내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기에, 아가들의 사회가 다 큰 어른들의 사회와도 무관하지 않기에 오버랩되며 숙고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