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유 에세이 1
두 번의 수술 이후, 건강을 위해 밤마다 걷기운동을 한다. 가족이나 지인들과 하는데 가끔은 혼자서도 걷는다. 어느 날, 무선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들으며 걷다가, 전화가 와서 통화를 하고 있었다. 열심히 걷느라 텐션이 올랐고 잘 안 들려서 더욱 큰소리로 통화를 했다. 나를 앞지르려던 아주머니 한 분이 내 옆을 지나다가 뒤로 펄쩍 뛰며 놀라셨다. 혼자 걷던 여자가 큰 소리로 중얼거리니 아마도 미친 여자로 생각하셨던 모양이었다. 나는 웃기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해서 미소를 지으며 귀를 보여드리는 시늉을 하고 멀어졌다. 가면서 나를 미친 여자로 보았음에 억울하기도 했다. 내가 어딜 봐서 미쳐 보이지?
다른 날, 동행과 함께 빠르게 걷던 중에 맞은 편에서 재빠르게 뛰어오는 여자가 있었다. 머리를 산발했고 뛰어오는 모양새가 좀 특이했다. 우리는 길가 쪽으로 비켜 걸었는데 이상한 사람처럼 보여 살짝 긴장했다. 역시나 가까이 오니 혼자 큰 소리로 말을 하고 있었다. 우리는 더욱 긴장해서 후다닥 지나가려 했다. 그때 들리는 말, “어 언니 안 들려? 잠깐만.” 하는 소리가 들렸고 우리는 안도했다. 치안이 잘 되어있는 자랑스러운 우리나라라지만, 사람이 많지 않은 밤의 운동길에서 미친 사람을 만난다면 상상만으로도 꽤 공포스럽다. 그래서 자연스레 몸이 움츠려들고, 조금만 이상한 낌새가 보여도 뛸 준비를 한다.
미친 여자로 오해도 받아보고, 다른 이를 미친 이로 오해도 해보고, 공포에도 떨어보며 든 생각. 옛날에는 미친사람을 구분하기가 쉬웠다. ‘머리에 꽃을 꽂으면 미친X’로 우리는 안다. 혼자 큰 소리로 떠들거나 웃으면 미친 거다. 겉옷이 후래하고 지저분하며 냄새가 나고 동공이 풀려 정처 없이 거닐거나, 머리를 풀어 헤치고 히죽히죽 웃어도 미친 거다. 몇 가지 더 특징들이 있겠지만 과거에는 미친 증상이 겉으로 나타나서 타인은 그걸 보고 알 수 있었다. 이 ‘앎’은 중요하다. 아는 순간 우리는 그것에 대처하고 문제로 인식하여 그다음을 본능적으로 해결하려고 한다. 그러면 타격감이 덜하고 놀람도 덜 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미친 이는 일반인과 구분할 수도 없고, 겉으로 드러나지도 않는다. 더 무서운 것은 일반인 같은 나도 미친 이로 오해받고, 내가 받은 그 오해가, 오해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차라리 꽃 달던, 그래서 공포스럽기보다 챙겨주고 관심 갖고 보듬어 주던 예전이 나았다. 지금은 여기저기서 미친 증상을 몰래 갖고 다니다가 ‘묻지마’라는 이름으로 풀어 헤쳐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저기요, 우리 미치지 않고 살아봐요. 미침의 전조 증상이 보이면 지금의 상황과 환경에서 나와 버리자구요. 그걸 더더더 참으려니까 끝을 치는 거잖아요. 일반인과 미친 사람은 한 끗 차이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