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교통사고가 나서 입원했던 청년에게 들은 말이다. 퇴원하자마자 회복이 안된 상태로 출근해서 일한다는 소식을 듣고 "왜 그랬어?"라고 걱정 어린 타박을 하니 이리 말한다. 한쪽 다리에는 보호대를 차고 심장이 좋지 않다는 결과를 듣고도 몸 쓰는 일을 하러 일터로 나가는 이 청년의 말이 내 맘 한구석을 아리게 만든다.
호주에 간 아이가 베이커리 카페에서 일하게 되었다. 새로 문을 연 곳이다 보니 아직은 체계가 안 잡혀 스케줄이 전날밤에 통보되기도 하고, 점심시간도 없어서 굶기도 하고, 보내기로 한 주급도 안 줘서 몸고생 마음고생 중이다.
한 번은 이미 카페 앞에 도착했는데 매니저가 늦잠을 자서 1시간 뒤에 출근하라고 문자를 보내고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안 했다고 해서 한국에서 열받은 내가 날아갈 뻔하기도 했다. 아이는 고스란히 그 일들을 겪어내고 있다.
집에서는 하나도 잘 안 넘어가 주는 아이인데, 사회에 나가서는 안 참아도 될 일도 잘 참아내고 있었다. 혹시 이 아이도 '먹고살아야 하기에' 이러고 있나 하는 씁쓸한 생각이 든다. 그런 아이에게 "당장 그만둬!"라고 소리치고 싶지만 끝내하지 못하게 하는 마음도 '먹고살아야 하니까'하는 마음 때문일지도 모른다. 씁쓸하다.
해뜨기 전, 새벽같이 출근하는 ㅇㅇ이
이 나이에, 여기저기 쑤시고 아픈 몸을 이끌고 일하는 내가, 저 젊은 나이에, 무얼 해도 다 될 것 같고 할 것 같은 청년들이 짠하고 안쓰러워 죽겠다. 이 무슨 아이러니일까 싶지만 난 이제 '먹고살려고' 일하지 않는다.
'먹는 것'이 분명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들이 있다는 걸 안다.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제대로 사는 것'이 훨씬 더 가치 있다는 걸 안다. 이것을 긴 시간을 통해 체험적으로 알게 된 것인데, 청년들은 아직 덜 살아서 뼛속깊이 알기 어렵다.
그래서 '먹고사는 것'이 부담스럽고 가끔은 그들의 목을 조여오기도 할 것이다. 과거의 늙은 청년들이 만들어 놓은 힘에 부치는 사회의 역사가 미안하고 부끄럽기도 하다.
아무쪼록 덜 먹더라도 마음의 양식은 채워져 궁극적인 삶은 더 풍요롭기를, 그렇게 살아가며 오늘 하루도 사는 것이 기대가 되는 날이라 고백하는 우리 청년들이 되기를 축복한다. 내 딸이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만큼 모든 청년이 잘 살아주기를 바라 마지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