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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무릎이 네 거지?

by 영자의 전성시대

아이는 좀 느렸다. 아니 많이 느렸고 수업진도도 맞추질 못할 만큼 산만했다. 잘생긴 얼굴에 하얀 피부, 해맑은 미소를 띤 아이는 아이들과 함께 있지만 홀로 있는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자폐스펙트럼 장애가 있는 것은 아닌가 의심이 드는 행동도 관찰되었고 아이는 반의 부담임 선생님이 전담해서 케어하셨다.


아이는 주로 수업을 방해하는 소리를 냈다. 갑자기 혼자 웃거나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강아지가 낼 법한 끙끙 거리는 귀여운 소리를 내기도 했다. 여하튼 조용한 수업에 아이로 인해 분위기가 흐트러지고 산만해지는 일은 다반사였다. 아이를 위해 내 옆자리를 비워주거나 다른 학생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유심히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한 번은 복도에서 우는 소리가 나길래 나가보니 아이가 서럽게 울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니 아이는 내 품으로 들어와 조그마한 손으로 나를 붙들고 서럽게 울었다. 일단 아이를 울음을 그칠 때까지 안아주었다. 머리를 쓰다듬으니 강아지 같이 꿈틀거리며 찡얼거렸다. '에고 아가가 학교에 적응하느라 고생이구나!' 하는 마음으로 "괜찮아, ㅇㅇ이가 속상했구나!" 하고 말해 주었다.


괜찮아진 뒤에 물으니 더운데 체육 하는 게 힘들어 울었단다. 에고, 내가 너무 오버해서 달래준 것 같아 어이없기도 하고 별일 아니라서 다행이기도 하고, 아직 학생이기보다는 아기 같은 아이가 귀엽기도 했지만 얼른 자라야겠다는 걱정도 들었다.


하루는 글을 쓰는 데 아이가 어려웠나 보다. 자꾸 징징대서 옆의 아이들이 불편해하길래 내 옆으로 와 따로 가르치려고 "ㅇㅇ이 선생님한테 와." 하니 아이가 씩씩하게 나와 내 의자를 밀더니 무릎 위에 척하니 앉는 것이다. 그리고는 내 책상에서 자기 활동지를 펴고 사랑스러운 눈으로 날 바라보았다. 어이없는 사랑스러운 천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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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손을 잡아 글을 같이 쓰며 완성한 후 아이는 답례로 환하게 웃어 주고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내 허벅지에는 아이의 무게에 눌린 자국이 선명히 남았는데 내 마음에도 행복한 느낌이 선명히 남았다. 스스럼없이 교사의 무릎에 앉는 아이의 천진난만함과 너무도 오랜만에 누군가를 무릎에 앉히는 느낌을 받았고, 아이가 나에게 그리 스스럼이 없어 고마웠다.


나는 아이가 와서 다시 내 무릎에 앉으려 하면 또 다리를 내어줄 거다. 이 아이가 얼른 커서 더 이상 나를 찾지 않길 바라고, 그렇다고 아이가 빨리 크는 건 아쉽고, 지금 같은 아이의 사랑스러운 미소가 영원히 사라지지 않았으면 바라보기도 한다.


아이야, 당분간 내 무릎은 네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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