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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는 숲 속의 공주가 되어 보련다

by 영자의 전성시대

심각하다. 이러다가 퇴근과 동시에 저녁도 거르고 잘 각이다.


예전에는 올빼미형이라 아침마다 일어나는 게 고역이었다. 그래서 차가 없을 땐 아침마다 걸어 다녀도 될 거리도 택시로 출근했었다. 오전이 지나고 점심을 먹고 나면 완전 살아나 오후부터는 날아다녔고 저녁이 되길 기다렸다. 약속 있는 날은 즐거운 날, 새벽까지 놀다 들어갈 때의 그 어떤 뿌듯함이 있었다. 약속 없는 날은 뭐라도 하며 늦은 시간을 즐겼다.


그렇게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과 어울리며 살아있음을 느꼈고 수많은 대화 속에 내가 있음이 좋았다. 고만고만한 사람과의 교제는 가끔 다툼도 있었지만 주로 유쾌하고 즐거운 시간이었다. 맛있는 거 먹고 예쁜 카페도 가고 진짜 신나면 노래방도 가서 목이 쉬어라 소리도 지르고 어디서 그런 에너지가 쏟아졌는지 참 그립다.


시간이 흐르고 흘러 나는 이제 새벽형 인간이 되어버렸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는 속담을 삶으로 보여준달까? 리처드 바크의 <갈매기의 꿈>의 명대사인 '높이 나는 새가 가장 멀리 본다'는 새이고 싶은데 나는 벌레를 잡으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되고 만 것이다.


어제도 그제도, 한주전도 퇴근해서 집에 들어가면 씻고 저녁을 가볍게 먹은 뒤, 소파에 가서 앉는다. 자지 않겠다는 굳은 의지의 표명으로 소파에 앉는 것인데 앉다가 20분 정도 지나면 나는 어느새 소파 아늑한 곳에 이미 머리를 들이밀고 있었다. 그러다 나를 부르는 목소리에 화들짝 눈을 뜨면 "얼른 침대 가서 자."


왜인지는 모르나 이때 꼭 시간을 확인하는데 처음에는 10시, 그러다 9시, 이제는 8시 반이 나의 취침시간이 되어가고 있다. 이제 나에겐 밤문화란 존재하지 못하는 걸까? 약속이 있는 날은 좋지만 고단할까 봐 미리 불안하기도 하다. 예전 그 신나던 나는 어디로 간 것일까?


이렇게 일찍 자면 당연히 일찍 일어난다. 처음에는 6시, 그러다 5시 반, 이제는 4시 50분이 나의 기상시간이 되어가고 있다. 이제 나에겐 새벽문화만 존재하는 걸까? 출근 전, 나는 별거별거 다하고도 시간이 여유롭다. 할 거 다 하고 출근해도 직원선생님들보다도 일찍 올 때가 흔히 있다.


주야장천 잠만 자는 숲 속의 공주가 아니라, 새벽문화도 즐기고 밤문화도 즐기며 활기차고 힘이 넘치는 잠자는 숲 속의 공주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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