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동생아, 부디 일어나줄래?

by 영자의 전성시대

어릴 때 놀이터 삼아 교회를 다녔다. 부모님 따라 작은 교회 다니다 부모님이 안 나가면서 나 또한 나가지 않았다. 잠시 텀이 있다가 중학교 때 친구 따라 지금의 교회를 다니게 되었다. 작은 교회를 다니다 큰 교회를 다니니 재미있기도 하고 많은 아이들로 신기하기도 했고 소위 텃세로 인해 힘들기도 했다. 하지만 힘들었던 기억보다 친구와 동생들로 인해 즐거운 추억들이 더 많다.


이때부터 가깝게 지낸 동생이 하나 있다. 이 아이는 참 뚱뚱하다. 다른 말이 필요 없을 만큼 뚱뚱하다. 먹는 것을 어찌나 좋아하는지 몇십 년째 먹을 때마다 잔소리를 해도 들은 척도 안 한다. 치킨을 앉아서 한 마리를 먹어치우니 살이 어찌 안 찌겠는가! 살이 찌니 행동이 굼뜨고 주변이 지저분하기 일쑤다. 가방에는 먹을 게 늘 있어 다른 사람들에게 푸짐하게도 나누어 준다.


동생은 참 착하다. 얼마나 착한지 자기 것을 나누어 주는데 아까워하지 않고 더 가져다주지 못해 안타까워한다. 만들기는 못하는 게 없다. 비즈부터 뜨개질, 귀걸이, 지갑, 손으로 하는 모든 것을 다 잘 만든다. 이 아이가 만든 것들은 정성스러운 것들이라 소중하다. 그 소중한 것들을 늘 선물로 지인들에게 나누어 주는데 이게 동생의 기쁨이다. 사람을 사랑할 줄 알고 화를 잘 낼 줄 모르는 온유한 성품을 가진 동생이다.


어릴 때 우리는 크리스마스 같은 날이면 음식을 잔뜩 사다가 내 방에서 촛불을 켜고 진실게임을 하며 밤을 새웠다. 누굴 좋아하는지, 누가 누굴랑 사귄다더라 하며 밤새 이야기하는 게 왜 그리도 재밌었는지, 나의 청춘을 함께 보낸 동생이다. 우리가 가장 많이 한 것은 역시나 맛집탐방이었다. 가면 사람수보다 더 많이 시켜서 싹싹 비워 나왔다. 물론 소식좌인 나는 1인분도 못 먹는데 접시는 다 비어있었다.


내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며 동생은 완벽한 이모가 되어주었다. 우리 아이들이 엄마가 싫거나 미우면 이모를 찾아가 위로를 받곤 했고 엄마가 주지 않는 불량식품을 이모는 다 사주었다. 곁을 잘 내주지 않는 우리 아이들은 이모면 뭐든지 다 좋아했다. 동생은 어느새 내 동생이기보다는 우리 아이들의 이모가 되어있었고 자기들끼리 만나 밥 먹고 놀러 다녔다.


나는 점점 너무 많은 일들을 벌여 쓸데없이 바빴고 우린 나이가 들어갔다. 동생은 그 사이 평택으로 이사해 너무 멀리 가버렸다. 거리가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 다 했던가! 보는 날수가 적어지고 만나는 날이 사라져 갔다. 그럼에도 만나면 어제 본 사이처럼 반갑고 가까웠지만 삶을 나누는 사이가 되진 못했다. 간간이 소식만 나누는 사이로 소원해져 갔다.


다른 동생에게서 연락이 왔다. 이 아이가 내출혈로 쓰러져 수술을 받았는데 의식이 5일째 돌아오지 않고 있다고... 너무 놀라 가슴이 벌벌 떨렸다. 얼마 전에 봤을 때는 관절이 안 좋아서 다리를 절어 건강 챙기라고 잔소리를 한바탕 했었다. 살 빼라고 하지 않았냐고 하면서 미운 말만 했다. 또 씩 웃기만 하던 아이가 지금 의식불명이라니... 나는 바로 동생의 친언니에게 전화해서 상태를 묻다가 펑펑 울어버렸다.


전조증상 없이 쓰러졌고 수술해도 못 깨어날 수 있다고, 식물인간이 될 수도 있다고,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했단다. 나는 철딱서니 없이 그 언니를 붙들고 통곡을 했다. 내가 진짜 진짜 열심히 기도할 테니 매일 아이의 상태를 좀 알려달라고 하면서 더 힘들었을 가족을 붙들고 꺽꺽 울었다. 어린 날 동생과 놀던 그 시절부터 지난번 만났던 그 시간까지 머리를 스쳐간다.


동생아, 제발 부디 일어나 줄래? 언니가 미안해. 잔소리만 해서 미안하고 더 잘 챙겨주지 못해서 미안하고, 바쁘다고 만나지 못해 미안해. 네가 이리 소중한 사람이거늘 소중하게 대해주지 못해 미안해. 마음은 당장 네 옆으로 가고 싶은데 나 살자고 이 자리를 지키고 있어 미안해. 다 사과할 테니 깨어나만 줄래? 일어나주라. 언제 그랬냐는 듯이 일어나 회복해 주라. 동생아, 언니가 간절히 기도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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