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는 학생의 조력자이자 협력자

by 영자의 전성시대

몇 년 전 일이다. 1학년 남자아이 하나가 자기가 쓰던 색연필 통을 정리하지 않고 일어서길래 “네가 쓰던 것은 네가 정리해야지.”라고 말했다. 아이는 인상을 쓰며 도망하려 했고 나는 아이의 팔을 잡았다. 아이는 내 손등을 할퀴며 소리를 질렀고, 당황했지만 티를 내지 않고 아이를 잡았고 진정되길 기다렸다. 내 손등에서는 피가 맺혔고 아이는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아주 조용하던 아이였는데 도대체 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 너무 궁금했다. 결국 다른 선생님들이 와서 아이를 잡고 담당 선생님이 와서야 겨우 아이를 진정시킬 수 있었다. 다른 교실에서도 이런 모습이 관찰된다고 하니 문제였고 결국 부모님이 학교로 오시게 되었다.


낯빛이 어두운 채로 부모님이 오셨고 나에게 연실 사과하셨다. 어머님이 아이에게 “얼른 선생님께 사과드려, 얼른”이라고 다그쳤고 아이는 완강하게 거부했다. 민망해하시던 어머님은 “엄마가 옆에 있잖아, 괜찮으니까 선생님께 사과드려. 엄마가 옆에서 도와줄게.”하시는 거다. 순간, 분위기가 마치 나는 아이의 적이고 두려움의 대상으로 사과를 받아내야 하는 사람처럼 느껴졌고 아이에게도 그런 투로 들리는 듯했다. 정신이 번쩍 났고 무엇이 문제인지 왜 아이가 교사에게 공격적인지 분석되기 시작했다. 잠시 뒤 아이를 잠시 내보냈다.


“어머님, 저는 아이를 가르치고 도와주는 교사입니다. 어머님의 도움으로 만나야 하는 그런 어려운 사람이 아닙니다. 아이의 적은 더더욱 아니고요. 아이가 집에서는 어머님께 도움을 받고 의지하는 것처럼 학교에 오면 제가 그런 대상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개념을 아이에게 심어주어 학교가 편해져야 하지 않을까요?”라고 물었다. 어머님은 깜짝 놀라시면서 “그러네요. 학교 가서 실수하지 말고 잘하라고만 하고, 선생님께는 예쁘게 보여야 한다고 부담만 줬네요.” 하시는 거다.


더구나 부모님 모두 너무나 바쁜 직업이라 늦게 들어왔고 주말에도 몸이 힘들어 아이와 거의 노는 시간이 없었단다. 거기다 아버님이 매우 권위적이어서 아이를 무섭게 혼낸다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 함께 계시던 나이가 지긋한 선생님은 따끔하게 부모님을 꾸짖으셨다. 아이가 언제까지나 아이가 아니니 지금 아이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잘 관찰하고 그것을 채워주라고, 그게 채워지지 않으니 아이가 이렇게 표현해 내는 것이라고, 지금은 공부보다 더 중요한 게 노는 거라고 아주 중요한 말씀을 덧붙이셨다. 그렇게 이 일은 마무리되었다.


재미있는 것은 그 일 이후에 그 아이는 나를 더 따른다는 것이다. 가끔씩 마주치면 내 이름을 불러가며 인사를 하고 내가 보고 싶어 교실로 찾아오기도 한다. 내심 ‘요 녀석 봐라!’하는 마음이 든다. 그리 혼나고 나면 나를 피하거나 불편해 할 수 있는데 이 아이는 더 나를 찾고 몇 년이 지난 지금도 나를 보면 눈이 하트가 된다. 내성적인 성향의 이 아이는 가끔은 우스개 소리도 해가며 내 옆에 붙어있기도 하다. 물론 나도 이 아이를 보면 예전의 기억은 거의 사라졌다. 언제 그런 행동을 했나 싶게 지금은 정말 의젓해졌다.


아이는 자란다. 언제까지 부모나 교사에게 놀아 달라고 떼를 쓰지 않는다. 놀이가 필요할 때는 질릴 때까지 놀아주면 되고, 관심 꺼달라고 하면 꺼주면 된다. 놀아달라 할 때는 바쁘다고 놀아주지도 않았으면서 관심 꺼달라 할 때는 굳이 서운하다며 아이 옆에 붙어 있으려는 청개구리 어른은 되지 말아야지. 아이들과 수업할 땐 저학년과는 몸으로 놀고 표정으로 말한다. 고학년과는 인과관계에 의해 논리적인 말로 수업한다. 저학년은 내가 먼저 다가가고 아이들은 나에게 뛰어온다. 고학년은 약간의 거리를 두며 눈은 바삐 움직인다. 관찰은 하되 성급히 가까이하지 않는다. 아이들이 다가오면 한껏 품어주면 된다. 나는 이 아이들에게 갈 수 있는 길을 알려주고, 찾아갈 수 있는 힘을 북돋아 주는 선생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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