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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하정 Dec 08. 2023

복숭아 심지

1장. 시작


늦봄. 비의 엄마 소유의 과수원. 푸른빛의 나무들 아래로 비와 재. 비와 재, 나무에 매달린 과실을 수확하고 있다. 재의 핸드폰에서 뉴스 소리 작게 흘러나온다. 


  그 뉴스 들었어?

  어?

재  뉴스. 여자들 말이야.

  뭐?

  온 몸에 멍이 든 채로 죽은 여자들. 계속 발견되고 있잖아.

  아…

  너도 들었지?

  뭐… TV 넘기다가 본 것 같네.

  그거 병 때문이래. 알아?

  ……

  무슨 벌레가 있대. 기생충 같은 거. 근데 그게 사람이 느끼는 고통의 냄새를 맡는대. 벌레가 아픈 사람 몸을 찾아서 들어가는데, 그러면 그 사람 몸이 꼭 벌레 먹은 과일처럼 상하고 짓무르게 된대. 보이지? 딱 이 썩은 과일들처럼 되는 거야. 근데 꼭 멍 든 것처럼 보인대.

  ……

  어떤 사람들은 심식나방 바이러스라 부르더라. 죽어서 발견된 사람들 몸이 꼭 심식나방 애벌레가 갉아먹은 복숭아처럼 보인다나.

  ……

  신기하지 않아?

  신기하긴 뭐가.

재  그 익숙한 나방 이름이 이렇게 들으니까 낯설다. 진짜 이상하고 무섭지.

  헛소리 하지 말고 일이나 해.

  헛소리라고? 다들 난리야. 요새.

  재수 없어.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해.

  좀 터무니 없는 얘기 같긴 해도… 아니라고 하기엔 계속 발견되잖아. 죽은 사람들이.

  됐다고.

  넌 무섭지 않아?

  무섭긴.

  진짜 안 무서워?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나방이니 과일이니 헛소리해대는 거 마음에 안 든다고.

  헛소리일지 진짜 바이러스일지 그걸 어떻게 알아.

  네가 말한 그 멍 들어서 죽었다는 여자들… 모르는 거잖아.

  당연히 모르지. 넌 뭐 그 여자들 알아?

  내 말은.

재  뭐.

비  데이트폭력이나 가정폭력 같은 거 당했을지도 모르는 거잖아.

  야. 그런 거 아니야. 그랬으면 진작 그런 쪽으로 조사를 했겠지.

비  ……

  아, 진짜 이상하다니까? 너 봤어? 발견된 사람들?

  보기 싫어.


비, 말없이 일을 계속한다. 재, 비를 잠시 바라보다가 멈췄던 일을 다시 시작한다. 비와 재가 일하는 동안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다. 비의 엄마, 과수원으로 들어온다. 비와 재, 일에 집중해 알아차리지 못한다. 비의 엄마, 머뭇거리듯 잠시 비를 쳐다보다 다가선다.


엄마  전화 두고 나갔지.


비, 돌아본다. 서 있는 엄마를 발견한다.


  아, 응. 일하느라.

엄마  계속 울려서 내가 받았어.

  무슨 일인데?

엄마  진이라는 애 아니?

  진?

엄마  ……

  아… 대학교 동기.

엄마  친하니?

  아니?

엄마  ……

  왜?

엄마  진이…

  걔가 뭐?

엄마  그 애가…

  ……

엄마  죽었대.

  ……뭐?

엄마  사고가 났대. 장례식에 올 수 있냐고 전화가 왔더라. 방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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