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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하정 Dec 08. 2023

복숭아 심지

2장. 발병

진의 장례식장. 해가 사람들 사이로 앉아있다. 장례식장은 소란스럽다. 심각한 분위기는 아니다.


동기1  사고였대.

동기2  무슨 사고?

동기1  교통사고랬나.

동기2  교통사고?

동기1  의료사고랬나.

동기2  그거는 완전 다르잖아.

동기1  아니면… 뭐 그냥 사고…

동기2  그럼 씨, 세상 모든 죽음이 다 사고지. 사고 아닌 죽음이 어딨냐?

동기1  얘는… 완전 사고지. 이제 막 제대했는데. 불쌍한 놈.

동기2  씨… 그건 맞아. 진짜 어쩌다가…

동기1  사고…

동기2  사고…


비, 장례식장으로 들어오다 동기들과 떨어져서 테이블 한 가운데 앉아있는 해를 발견한다. 비는 해의 옆자리에 앉는다. 해는 알아차리지 못한다. 


  안녕?

  ……

  안녕.

  ……

  저기, 해.

  어?

  안녕, 이라고 했어.

  아… 안녕.

  너랑 이렇게 다시 만날 줄은 몰랐네.

  ……

  잘 지냈어?

  근데 너 누구지?

  뭐? 이년도 안 됐는데 벌써 잊어버린 거야?

  정신이 없어서.

  너 진이랑 헤어지고 우리 사이도 멀어졌으니까… 이렇게 얘기하는 건 한 삼 년 만이지. 그럼 한 번에 못 알아볼 수도 있지.

  ……

  나 정말 모르겠어?

해  ……

  ……

  비.

  진짜 기억 못하는 줄 알았어.

  아, 미안. 비. 내가 널 어떻게 못 알아봤지? 내가 정말 정신이 없나 봐.

  이게 갑자기 무슨 일이니.

  ……

  너 많이 놀랐겠다.

  나?

  괜찮아?

  괜찮냐고?

  아…… 여긴 언제 왔어?

  한 두 시간 됐나…

비  두 시간이나 있었어?

  그렇게 오래 있었던 것 같지는 않은데. 그러게, 벌써 두 시간이나 지났네.

  빨리 온다고 왔는데.

  사실 요즘은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 잘 모르겠다고 해야 할까. 그냥 가만히 멍 때리다 보면 한 두 시간은 훌쩍 흘러 있어. 나는 한 십 분쯤 앉아있었다고 생각했는데.

  나도 안 믿겨.

  응?

  지금 너랑 여기 앉아있는 거.

  응.

  믿을 수 없는 일이야. 시간이란 거, 정말 어떻게 흐르는지 모르겠다.

  나도 몰라.


비, 해를 바라본다.


  모두 너 걱정하는 것 같더라.

  날?

  다들 아닌 척 다른 이야기하면서도 너 신경 쓰고 있어.


해, 뒤늦게 주위를 둘러본다. 해를 보던 시선들이 다른 곳을 본다.


  왜?

  당연하잖아.

  뭐가 당연한데?

  우리도 다 슬프지만……

  이해가 안 돼.

  이해가 안 된다니?

  왜 날 신경 써?

  그거야…

  그거야?

  넌.

  난?

  아무리 지난 일이라지만.

해  ……

  여자친구였잖아.


사이.


  가늠이 안 돼.

  ……

비  그러니까, 내 말은 네 맘이 어떨지 말이야.

  난 괜찮아.

  괜찮을 리가 없잖아.

  나 아무렇지도 않아.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괜찮아. 다른 애들 때문이면.


해, 주위를 살핀다. 동기들, 해의 눈치를 본다.


  나 정말 괜찮아. 사실 나는 하나도 안 슬퍼.

  그렇게 말하는 편이 편해?

  아니, 나는 정말…

  ……

  그러니까, 걔가 죽어버려서.

  ……

  나는 걔가 더 이상 없어서 좋아.


장례식장이 일순간 조용해진다. 긴 침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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