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발병
진의 장례식장. 해가 사람들 사이로 앉아있다. 장례식장은 소란스럽다. 심각한 분위기는 아니다.
동기1 사고였대.
동기2 무슨 사고?
동기1 교통사고랬나.
동기2 교통사고?
동기1 의료사고랬나.
동기2 그거는 완전 다르잖아.
동기1 아니면… 뭐 그냥 사고…
동기2 그럼 씨, 세상 모든 죽음이 다 사고지. 사고 아닌 죽음이 어딨냐?
동기1 얘는… 완전 사고지. 이제 막 제대했는데. 불쌍한 놈.
동기2 씨… 그건 맞아. 진짜 어쩌다가…
동기1 사고…
동기2 사고…
비, 장례식장으로 들어오다 동기들과 떨어져서 테이블 한 가운데 앉아있는 해를 발견한다. 비는 해의 옆자리에 앉는다. 해는 알아차리지 못한다.
비 안녕?
해 ……
비 안녕.
해 ……
비 저기, 해.
해 어?
비 안녕, 이라고 했어.
해 아… 안녕.
비 너랑 이렇게 다시 만날 줄은 몰랐네.
해 ……
비 잘 지냈어?
해 근데 너 누구지?
비 뭐? 이년도 안 됐는데 벌써 잊어버린 거야?
해 정신이 없어서.
비 너 진이랑 헤어지고 우리 사이도 멀어졌으니까… 이렇게 얘기하는 건 한 삼 년 만이지. 그럼 한 번에 못 알아볼 수도 있지.
해 ……
비 나 정말 모르겠어?
해 ……
비 ……
해 비.
비 진짜 기억 못하는 줄 알았어.
해 아, 미안. 비. 내가 널 어떻게 못 알아봤지? 내가 정말 정신이 없나 봐.
비 이게 갑자기 무슨 일이니.
해 ……
비 너 많이 놀랐겠다.
해 나?
비 괜찮아?
해 괜찮냐고?
비 아…… 여긴 언제 왔어?
해 한 두 시간 됐나…
비 두 시간이나 있었어?
해 그렇게 오래 있었던 것 같지는 않은데. 그러게, 벌써 두 시간이나 지났네.
비 빨리 온다고 왔는데.
해 사실 요즘은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 잘 모르겠다고 해야 할까. 그냥 가만히 멍 때리다 보면 한 두 시간은 훌쩍 흘러 있어. 나는 한 십 분쯤 앉아있었다고 생각했는데.
비 나도 안 믿겨.
해 응?
비 지금 너랑 여기 앉아있는 거.
해 응.
비 믿을 수 없는 일이야. 시간이란 거, 정말 어떻게 흐르는지 모르겠다.
해 나도 몰라.
비, 해를 바라본다.
비 모두 너 걱정하는 것 같더라.
해 날?
비 다들 아닌 척 다른 이야기하면서도 너 신경 쓰고 있어.
해, 뒤늦게 주위를 둘러본다. 해를 보던 시선들이 다른 곳을 본다.
해 왜?
비 당연하잖아.
해 뭐가 당연한데?
비 우리도 다 슬프지만……
해 이해가 안 돼.
비 이해가 안 된다니?
해 왜 날 신경 써?
비 그거야…
해 그거야?
비 넌.
해 난?
비 아무리 지난 일이라지만.
해 ……
비 여자친구였잖아.
사이.
비 가늠이 안 돼.
해 ……
비 그러니까, 내 말은 네 맘이 어떨지 말이야.
해 난 괜찮아.
비 괜찮을 리가 없잖아.
해 나 아무렇지도 않아.
비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괜찮아. 다른 애들 때문이면.
해, 주위를 살핀다. 동기들, 해의 눈치를 본다.
해 나 정말 괜찮아. 사실 나는 하나도 안 슬퍼.
비 그렇게 말하는 편이 편해?
해 아니, 나는 정말…
비 ……
해 그러니까, 걔가 죽어버려서.
비 ……
해 나는 걔가 더 이상 없어서 좋아.
장례식장이 일순간 조용해진다. 긴 침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