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은 옳은가? 옳지 않은가?
어린이집에 손님이 찾아오면 나는 직접 현관문을 열고 나가 인사를 드린다. 그리고 늘 "혹시 원장님 안 계신가요?"라는 방문자의 말에 "제가 원장입니다."라고 답한다. 처음 방문하시는 손님들은 누구나 나를 면전에 두고 원장을 찾는다. 이제는 "어서 오세요."보다 "원장입니다."를 먼저 외친다.
나는 5년 차 어린이집 관리자이다. 그리고 MZ세대이다. 대부분의 동료 원장님들은 베이비 부머 세대이거나 X세대이고, 그 틈에서 나는 까치발을 들어가며 애써 당당한 자태로 원장이라는 자리를 붙들고 있다.
어떤 관리자가 될 것인지에 대한 오랜 준비 없이 조금은 쉽게 국공립 어린이집 시설장 위탁을 받아버렸다. 원장으로서의 경력이 전무했지만 열심히만 한다면 좋은 원장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그저 내달렸던 4년 반이었다.
동료 원장님들께서는 열심히 하고 착하게 구는 나를 보며 "너무 잘해주지 마세요."라는 조언을 많이 해주셨다. 좋은 관리자가 되고자 애쓰는 내가 안타깝고 안쓰러워서 해주시는 따뜻한 조언이었지만, '친절'을 삶의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기고 살아가는 나에게는 그 조언들이 '그 자리에서는 결코 너 다워서는 안돼.' 하는 차가운 말로 들렸다. 그리고 원장이라는 자리가 싫어졌다.
엄마, 나 원장 그만할래.
나랑 안 맞는 것 같아-
관리자는 친절할 수 없는 것일까? 돌이켜보면 나는 꽤 친절한 관리자였다. 하지만 나 스스로도 성공한 관리자였다는 평가는 못 내리겠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친절은 옳은데, 왜 난 틀려버렸을까? 재위탁을 받지 않기로 결정했고 이제 임기는 반년이 남은 이 시점에서 굳이 피곤하게 이 고민에 해답을 찾을 필요가 없는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지난 내 노력들을 실패로 저장하기에는 조금은 아쉬운 부분이 있기에 '친절'이라는 전략이 실패한 요인을 분석해 보고자 한다.
첫 번째 실패 요인은 '친절'에 대한 오해에 있었다. 내 멋대로 친절을 정의 내렸다. 아니 정의조차도 내려보지 않았다. 그냥 감으로 친절을 붙들고 버텼다. 우선 친절은 '베푸는 것'이라는 생각부터가 완전히 망하는 길로 나를 안내했다. 내가 나의 머리로 검증을 안 한 탓이 가장 컸지만, 남 탓을 조금 덧붙이자면 '친절'이라는 명사에 '베풀다'는 동사를 짝지어 놓은 문화가 잘못했다고 생각한다. 그 문화 탓에 나는 베풀다가 일을 다 봤다.
가진 자가 베푸는 것은 선순환이 맞지만 나는 내가 제대로 권위를 갖고 있는지에 대한 점검을 미쳐 해보지 못했다. 가만 보니 나는 권위에 대한 오해도 넉넉하게 갖고 있던 터라 권위는 안전하게 집에 모셔놓고 빈손으로 출근을 하고 있었다. 가진 것 없이 베풀기만 하다 보니 금세 기아상태에 빠지게 되었고 이 자리는 더 이상 나에게 안전하지 않은 곳이 되어버렸다.
관리자 자리에 앉아 있으면 많은 요구와 요청들이 접수된다. 그러한 요구와 요청에 대해 친절하게 접수하고 사려깊게 판단하여 결과가 yes든 no든 또다시 친절하게 안내하면 되는 간단한 일을! 나는 친절에 대한 오해 덕분에 이 문제를 어렵게 풀어냈다.
나 자신이 맥가이버라도 되는 냥 무조건 흔쾌히 수락부터 하고 보았고 뒤돌아서서 끙끙대며 해결책을 찾아내느라 조급했다. 도무지 답이 보이지 않을 때에는 낭패감을 느꼈고 내 스스로가 나를 호구라고 낙인찍으며 쓰라린 상처를 움켜쥐어야 했다.
그렇게 나는 나에게 '친절하지 마.'라는 말을 던지는 사람이 되어갔다. 친절하지 말라고 누가 그랬냐면, 그건 실패한 내가 그랬던 것이었다.
이제는 요령이 조금 생겼다. 어떠한 요구나 요청이 들어오면 "고려해 보고 답해줄게요."라고 말한다. 무작정 yes도, 덮어두고 no도 아닌 '생각'해보고 답을 주겠다고 말하니 마음에 한 결 여유가 생긴다.
두 번째 실패요인은 내가 정서를 나누는 능력이 미숙하다는 사실을 간과했다는 것이다. 친절하려면 정이나 사랑 따위를 타인과 스스럼없이 잘 주고받는 능력을 갖고 있어야 했지만 나의 마음속에 충만했던 사랑은 표현으로 넘쳐흐르지 못했다. 표현 방법을 몰랐기 때문이다.
그냥 한 번 웃어주고 농담도 나누고 컵라면 봉지도 같이 뜯고 했더라면 간단했을 일을! 그 소소한 걸 못하다 보니 크게 갚으려고 들었다. 업무를 나눠 맡아주거나 업무 관리를 조금 느슨하게 해주는 것으로 퉁치려고 했다. 하지만 정서를 나누는 것과 업무를 나누는 것은 상호보완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나의 정서는 갈수록 빈곤해졌고, 업무는 쌓여만 갔다.
'교직원이 연차 휴가를 내어도 사유는 묻는 게 아니야.', '내가 교사일 때의 경험을 빌어 말하면 꼰대 취급을 받게 될 거야.', '회식 자리에 관리자가 오래 앉아 있는 건 눈치 없는 짓이야.' 등의 신념들을 핑계 삼아 나는 점잖게 뚝 떨어져 앉은 원장이 되어갔다. 어쩌면 너무 좋은 관계가 형성되면 그들의 부탁에 거절하지 못하는 내가 될까 봐 두려웠을지도 모른다. 그것은 '나에게 도움을 청하는 사람을 거절해서는 안돼.'라는 나의 가혹한 신념 탓이었지, 나에게 도움을 청하는 그들이 나쁜 사람인 것이 결코 아니었다.
나는 친절한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자부하며 살아왔지만 관리자가 되어 보니 친절에 대한 비합리적인 편견을 갖고 있었으며 친절을 표현할 능력도 미흡한 어중간한 사람임을 자각할 수 있었다.
완전히 실패했다고 말하기에는 좀 아쉽기는 하다. 나의 얄짤없는 자기 비하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나를 친절한 원장으로 인정해 주고 있으며, 어린이집에 소소하게 문제가 생기면 나이불문하고 많은 원장님들께서 나에게 상담을 요청하신다. 내가 자주 듣는 말은 "원장님은 나이도 어린데 어쩜 그렇게 문제를 바라볼 수 있나요?"이다.
나의 친절이 가장 빛을 보는 때는 삐뽀삐뽀 문제가 발생하는 순간이다. 부정적인 감정들이 오가는 틈에서 나의 일관된 친절은 반짝반짝 빛이 나고, 그 빛의 밝기는 문제를 환하게 비추어 명확한 판단으로 이끌게 해 주었으며 그 빛의 따스함은 주변의 부정적인 감정들을 감싸 녹아내리게 만들었다. 불안은 진정되고, 분노는 사그라들며, 기쁨은 배가 되었다. 위기에서는 매번 친절이 탁월한 해결사 역할을 해내었다.
친절은 무엇인가?
왜 나는 나자신에게 친절하지 못한가?
왜 우리 문화는 친절을 경계하는가?
내 인생 첫 경험이자 마지막 경험이 될 원장으로서의 올 한 해는 친절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배우고 경험하고 느껴보는 중이다. 그리고 해답을 찾았다! 그 해답을 공유해 볼까 하니 모두 집중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