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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두란 Jul 13. 2024

9. 다음 놀이터는, 구름바위-

새로운 여정을 가꾸다

  국공립 어린이집 원장 2년 차, 담임겸직에서 물러나면서 재위탁을 받지 않겠다는 결심을 했다. 그 후로부터 나는 인생 이모작으로 무엇을 해서 먹고살지 궁리하기 시작했다. 타이밍이 절묘하게 친정에 좋은 기회가 왔다. 친정 부모님은 고향에서 꽃차용 꽃을 조금 기르며 시골생활을 이어오고 계셨는데, 치유농장 지원 사업에 지원하여 좋은 결과를 얻은 것이었다. 그리하여 고향 마을의 이름인 운암(雲巖)을 한글로 바꾸어 '구름바위농원'이라고 이름을 짓고 치유농장 운영을 시작하게 되었다. 원예업과 서비스업으로 사업자등록을 하고 마땅한 프로그램을 고민하다가 '치유놀이터'를 운영해 보자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아이들이 시골집 마당에 놀러 와 물놀이도 하고 모래놀이도 하며 자연 속에서 마음껏 놀고 갈 수 있는 놀이터를 떠올렸다.


친정에 조성한 자연 놀이터, 계곡물이 흘러 넘치는 물놀이장이 있다.

  

  친정아버지께 물놀이장, 모래놀이장, 휴게공간 등을 만들어 달라 부탁하며 아이들이 안전하게, 그리고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자 애를 썼었다. 친정 마당에는 산에서 계곡물이 흘러내려와 작은 연못을 이루고 있었다. 아버지는 이 연못을 물놀이장으로 바꿔보자 하셨고, 뚝딱뚝딱 돌을 쌓아 계곡물이 항상 흘러넘치는 물놀이장을 만드셨다. '아빠! 모래놀이장도 하나 만들자!' 내가 말만 하면 아버지는 일사천리로 만들어주신다. 우리는 물놀이장과 모래놀이장 주변에 무엇을 심을지 항상 고민한다. 어머니는 꽃을 좋아하신다. 틈 날 때마다 이것저것 삽목도 하고 모종을 사 와서 심으신다. 2022년 여름에 오픈한 놀이터가 이제는 제법 자리를 잡고 모습을 갖추었다.


  '원장을 그만두고 여기 와서 일해야겠다!' 하는 마음을 먹게 되었다. 아이들이 우리 놀이터에 와서 뛰어놀기만 해도 마음이 치유되고 몸이 자라고 행복한 추억이 켜켜이 쌓인다면, 나는  보람으로 즐겁게 일할  있을  같았다.  곳이 있음에 감사하고 안심이 되었다.


  우리 농장은 산에 위치하고 있는데, 우리도 처음에는 마을에 살았었다. 십여   아버지께서 마을의  어귀에 밭을 하나씩 사기 시작하셨고, 여러 밭들을 모아 집터를 닦고 나무를 심으셨다. 우리 자손 중에  공간이 필요한 사람이 있으면 여기 와서 생활도 하고 소일도   있는 유산을 가꾸고 싶다고 하셨다. 그때만 해도 나는 ' 나갈' 생각만 가득했기 때문에, 여기 들어와 생활도 하고 소일도 하게  사람이 나일 줄이야 상상도  했다. 지금으로선 너무나도 감사하고 다행이다. 사십춘기의 가출을 나는 고향으로 택했다!


  우리 농장의 특별한 자원은 '꽃'이다. 꽃차용 꽃들과 관상용 꽃들이 시시철철 피어난다. 2-3년 정도 애정을 갖고 농장을 지켜보자니, 그 장소에 변함없이 그 계절이 되면 잎사귀를 보이고 꽃을 틔우는 식물들이 얼마나 대견하고 아름다운지 모르겠다. 그냥 예뻐서 좋았고, 그저 예뻐서 좋았다.


불구화, 수선화, 능소화, 목수국, 과꽃, 수국- 봄여름가을의 꽃이 해마다 예쁘게 자리한다.


  예쁜 꽃도 보며, 예쁜 새소리 들으며, 자연 속에 폭 안겨 편안하게 쉬고 싶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새로운 계기가 또 하나 생겼다. 2023년에 ITAA(국제교류분석협회)에서 발생된 저널에는 Eco-TA(생태학적 교류분석)에 관한 7편의 글이 실렸다. 내가 원장을 그만두면 치유농장을 운영할 계획이라는 것을 알고 계셨던 이영호 교수님께서 저널을 보내주셨다. 번역을 해서 월례연구회에 발표를 해보자는 것이었다. 3월, 어린이집이 세상 바쁜 한 달이지만 일하고 육아하고 발표준비까지 해내는 능력이 나에게는 있었다. Eco-TA(생태학적 교류분석)에 대해 공부하면서 치유농장에서 내가 할 일은 자연을 매개로 한 상담치료라는 것이 명확해졌다. 농부로서의 꿈이 조금 더 세밀해지는 순간이었다.


  친정에 가면 내가 꼭 멍하니 바라보며 머무르다 오는 것이 있다. 집 앞 소류지에 자라는 버드나무인데, 물가에 심겨있어 큰 가뭄이나 농번기를 제외하고 소류지 물이 마르지 않을 때는 물속에 잔잔하게 잠겨 있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으나 이 나무를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이 채워지고 위로를 받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항상 물에 잠긴 버드나무를 보며 마음을 채웠었다. Eco-TA(생태학적 교류분석) 발표를 준비하며 '우리 인간도 자연의 일부'라는 사실에 큰 울림이 있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지만,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부분과 전체의 개념으로 이해하고 있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 vs. 자연! 이제는 공존하자!' 뭐 이 정도로 생각했던 것 같다.


  최근 자기 분석을 위해 상담을 받으러 교수님 연구실로 여러 차례 발걸음을 했었다. 상담이라는 것은 상담자와 내담자 사이의 작용이다. 네모난 연구실 안의 네모난 책상에 앉아 나의 역할  어려움이 있는 역할에 대해 이야기했었다. 원장, 엄마, , 아내, 친구, 손녀, 동료- 역할도  많다.

  마주 앉은 교수님 뒤로 초록의 나뭇잎이 커다란 통창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손쌤, 그래도 괜찮아." 하는 허가(permission) "잘하고 있어." 하는 인정(stroke) 들으며 마음의 구김살들이 하나하나 반듯하게 펴졌다. 심각한 위기를 겪어서 상담을 받으러  것이 아니라, 교육과정에 있는 자기 분석을 이수하기 위해 상담을 받은 나에게 이러한 허가와 스트로크는 삶을   살아내게 하는  힘이 되었다.

  예방적 차원에서의 상담이라고 할까? 하지만 모두가 예방적 차원에서의 상담을 받으며 살아가지는 않는다. '아하! Eco-TA(생태학적 교류분석) 우리 농장에서 실천한다면 다양한 프로그램개발을 통해 예방적 차원에서의 치료와 상담이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번뜩이며 머리를 스쳤다.


  나는 원장을 마치면 고향으로 돌아가 꽃을 가꾸고 버드나무를 빌어 사람들에게 허가와 스트로크를 주는 사람이 되어 지구라는 행성에서 친절이라는 향기를 퍼트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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