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글티 피글티 팝! 삶에는 뭔가 또 다른 게 있을 거야
나는 모리스 샌닥의 그림책을 좋아한다. 우연한 기회에 '히글티피글티팝'이라는 모리스 샌닥의 책을 알게 되었다. 표지에 있는 강아지가 친정에 있는 우리 복돌이를 닮았다. 이 책의 주인공인 강아지 제니는 주인의 돌봄을 받기를 포기하고 가방을 싸서 집을 떠난다. 창틀에 있는 화초가 네가 무엇이 부족해서 여기를 떠나냐는 잔소리를 하지만, 그런 말을 하는 화초의 잎사귀를 다 뜯어먹어버린다. 제니는 자신에게 없는 뭔가를 갖고 싶었다. 삶에는 모든 걸 갖는 것 말고도 뭔가 또 다른 게 있을 거라고 믿고 집을 나선다.
국공립 어린이집 원장 재위탁을 포기한 이후로 나에게도 화초와 같은 말을 해주는 분들이 많다. 그분들이 다행히 남편과 부모님은 아니어서 다행이다. 이 책의 부제는 '삶에는 뭔가 또 다른 게 있을 거야'이다. 나는 요즘 성공만을 바라보고 쉬지 않고 살았던 자신에게 나의 명함과 따박따박 들어오는 급여가 나를 증명하고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에게 외치고 있는 중이다. 사십을 앞두고 벌어지는 사십춘기- 제니는 자신에게 없는 뭔가를 갖고 싶어 집을 떠났다. 국공립 어린이집 원장이라는 자리를 떠나기로 마음먹은 나에게 그것은 '시간'이다. 나는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은 사람이었고,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인생의 절반 정도를 산 것일까? 마지막이 언제인지 알 수 있다면 가늠이 될 텐데. 돌이켜보면 나는 뭔가 제대로 하나를 야무지게 잘 해내고 싶은 욕구는 없었다. 그냥 두루두루 다 잘하고 싶은 게 나였다. 남은 시간들은 두루두루 하고 싶은 것들을 하면서 살고 싶다. 나는 어차피 "열심히 하라"가 1차 드라이버이기 때문에 원장을 그만둔다 한들 가만히 앉아서 쉴 팔자는 아니다. '시간구조화'를 내 뜻대로 하고 싶다. 가족과 오래된 친구들과의 '친밀'의 시간을 충분하게 잡고, 다음은 어른자아(A)를 사용한 '폐쇄'의 시간도 여유 있게 챙기고 싶다. '활동'은 출퇴근 시간이 명확한 일이 아닌 글쓰기나 강의 등 짧은 숨으로 해낼 수 있는 것들로 채우고 싶고, 적당히 가까운 사람들과 '잡담'을 하며 커피 한 잔 하는 시간과 '의례'의 시간도 서두르지 않고 즐기고 싶다.
원장을 하면서 어린아이를 키워낸 나는 육아기 단축근무를 하시는 선생님들이 부러웠고, 휴가 때는 전화를 꺼두고 삶을 즐기더라도 문제가 없는 책임의 가벼움도 부러웠다. 근로자인 교사들에게는 하루 8시간 근무와 1시간 휴게가 권리로 주어지지만, 대표자의 경우에는 어린이집이 운영되는 07:30-19:30이 오롯이 책임의 시간이다. 육아휴직도 쓸 수 없고 육아기 단축근무도 불가하다. 고용보험을 넣지 못한다는 것은 단지 실업급여를 받지 못하는 것 이상의 고충이 있었다. 정해진 급여를 받는 국공립 어린이집 원장의 '대표자'로서의 고충- 내가 선택한 일이고 5년이라는 계약 기간이 있으니 나는 이 약속과 책임을 잘 지키고 싶다. 하지만 그 이상은 아니다. 내가 만약 정년까지 일을 하기로 마음먹는다면, 그리고 현장이 나를 이 자리에 있게 해 준다면 나는 앞으로도 25년을 더 일 할 수 있다. 근로자가 아닌 급여를 받는 대표자로 4년 반을 지내보니 나에게는 명함과 급여보다는 '시간'이 중요한 가치라는 것을 깨달았다. 물론 그만두고 손가락을 쪽쪽 빨아보면 다시 지금의 이 자리와 급여가 간절해질지도 모른다-
제니의 경우는 주연배우를 꿈꿨다. 하지만 극단에서는 '경험'이라는 것을 갖고 오라고 하였고, 제니는 보모가 되어 '경험'이라는 것을 채우게 된다. 그리고 멋지게 주연배우로 데뷔한다. 비록 대걸레를 삼키는 역이었지만 제니는 머더구스 극장 최고의 배우이자 스타가 되었다. 경험을 발판 삼아 비로소 삶의 주인이 된 것이다. 이 이야기는 모리스 샌닥이 아끼던 강아지를 무지개다리 너머로 보내고 쓴 작품이라고 해서 더욱 울림이 컸다. 무지개다리 너머에서는 마음껏 네 삶의 주인이 되어 뛰어놀라는 주인의 애틋한 마음이 담겨있는 게 아닐까? 강아지와 주인의 관계에서 우습지만 자녀와 부모의 관계가 오버랩된다. 부모는 자녀를 사랑으로 아끼고 돌보지만 자녀들은 그 보호 아래 수동적인 삶을 사는 경우가 종종 있다.
나의 경우에는 내가 스스로 부모로부터의 인정을 원해 '열심히' 일을 하며 살았던 것 같다. '국공립 원장 정도 되어주면 유아교육과를 졸업하고 임용시험을 통과하지 못한, 교육공무원이 되지 못한 나도 충분히 인정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 최선을 다해 일하고 공부하고 가르쳤던 것 같다. 그 마음과 노력들이 후회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대견하고 자랑스럽다. 하지만 그것은 어린이자아(C)의 희망이고 기대였다. 앞으로 살아 낼 나의 시간들이 지난 세월들과 같다 하더라도 그것이 어른자아(A)로 한 번 업데이트된 결과여야 한다. 하지만 어른자아(A)로 업데이트한 결과 앞으로의 내 삶은 지금까지의 삶과는 같아서는 안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도시에서의 삶은 시골에서의 삶으로, 관리직의 일은 글쓰기와 집단 상담으로, 출퇴근 시간이 있는 삶에서 없는 삶으로, 고정급여가 있는 삶에서 없는 삶으로 업데이트할 것이다. 'up'이 아닌 'down'같아 보이기는 하나, 인생의 가치는 개인이 정하는 것이니까- 나는 이것을 당당하게 '업데이트'라고 여긴다.
무튼 나는 '시간'을 택했다. 현재 나의 하루는 24시간 중 8시간은 잠을 자고 9시간은 어린이집에 묶여 있으며 아이의 등하원과 출퇴근에 1시간, 아침과 저녁 육아에 4시간(나의 식사시간과 씻는 시간 포함), 아침 자유시간(06시-08시) 2시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지금도 바로 그 시간이다! 반짝반짝 빛나는, 아이와 남편이 잠들어 있는 아침 7시! 하루 2시간의 자유시간을 보내온 지 오래되었다. 몸과 마음이 많이 안 좋았을 때엔 주로 이 시간에 명상을 하거나 걷기를 했었고, 지난해에는 교류분석 상담공부에 몰입했었다. 올 해는 글을 쓰고 있다. 이 시간이 나에게는 너무나도 감사하고 행복한 시간이다. 대낮에 이런 시간을 4시간 정도 가질 수 있다면 얼마나 멋질까! 무모한 도전 같아 보일 수도 있지만, 나는 '시간'을 택했다.
히글티 피글티 팝! 을 읽고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다. 제니의 무모함을 내가 닮아 있었다. 얼렁뚱땅한 연극도 기가 막히게 훌륭해 보였다. 원장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간다면 아마도 잡초를 뽑고 놀이터를 관리하고 살림을 천천히 살고 가족과 탁구를 치고 시(詩)를 읽으며 글을 쓰겠지. 아이와 인생을 즐기고, 친구와 만나 두런두런 이야기도 나누며 존재 자체로의 스트로크를 주고받을 수 있겠지. 나의 탈출기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