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각하고 재결단하기!
나는 음식과의 관계를 달리하고 싶다. 친정엄마는 음식을 잘하신다. 멋진 음식솜씨로 식당을 10년이나 운영했다. 나도 엄마를 닮아 음식을 잘하는 편이다. 그런데 음식과의 관계는 썩 좋은 편이 아닌 것 같다.
나는 항상 열심히 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린다. 잠시도 쉬지 않고 뭘 하든 하고 본다. 나에게 허가되는 휴식은 음식을 먹는 시간이다. 그래서 일을 하거나 먹거나로 시간을 채운다. 그렇다고 해도 음식을 먹는 시간을 잘 쉬는 시간으로 여기지 않음이, 음식에 대한 죄책감으로 확인된다. 쉬는 것에 대한 죄책감이 음식을 먹는 것에 대한 죄책감으로 물들어버렸다.
올해 4-5월에는 나의 슈퍼바이저이신 이영호 교수님께 자기 분석을 받았다. 나의 어려움은 남들이 보지 않는 가운데 음식을 허겁지겁 먹는다는 것이었다. 일이 유독 힘들었던 날에는 배달음식을 주문했고, 식사를 마친 후에는 더부룩함과 죄책감까지 맛봐야 했다. 음식이 나를 달래줄 것이라는 착각 속에서 나는 헤어 나오지 못했다. 음식이 아닌 다른 스트레스 킬러를 찾아보았다. 청소, 명상, 공부- 여러 가지가 떠올랐고 예쁘게 글로 써 잘 보이는 곳에 붙여 두었지만, 어김없이 힘든 날엔 음식을 찾았다.
음식과의 관계를 달리 해야 한다는 깨달음은 이미 오래전에 읽은 '오늘도 허겁지겁 먹고 말았습니다.'라는 책에 잘 나와 있었다. 읽고 또 읽고 필사도 해 보았지만, 나의 병은 쉽게 고쳐지지 않았다. 고지혈증 약을 먹으면서도 나는 멍청하게 이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으려 했다. 이제는 간수치도 너무 높아 식단조절과 운동을 더 이상은 미룰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제 치킨을 시켰었지-
무튼 나의 음식에 대한 문제는 음식 이전에 휴식을 대하는 태도와 관련이 깊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휴식을 취하는 나 자신을 수용하지 않고는 음식을 대하는 잘못된 인식을 개선하기가 어려울 것 같다. 나는 언제부터 마음 편히 쉬지 못한 걸까?
초등학생 때 매일 타고 다녔던 셔틀버스에서도 나는 책을 손에 들고 읽었다. 그다지 재미있지도 않았지만, 뭔가 책을 쥐고 있는 나 자신이 멋있어 보였던 것 같다. 고등학생 때는 컴퓨터로 EBS를 시청하는 척하며 프로야구 중계를 보기도 했다. 당당하게 보면 될 것을 숨어서 보았다. 성실하게 공부하는 착한 딸이고 싶었다. 원장이 되고는 휴대폰 키즈노트로 부모님들께 공지사항을 올리는 와중에도 교사가 옆을 지나가면 원장이 일은 안 하고 폰이나 하며 놀고 있다고 생각할까 봐 얼른 폰을 내려놓기도 했다.
"열심히 해, 그럴 때에만 너는 OK야."
내 안에서는 항상 그런 소리가 들려왔고, 나는 주변에 누구라도 있을라치면 제대로 된 휴식을 할 수가 없게 되었다. 나에게는 음식을 먹는 시간이 잠시 공부나 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래서 휴식에 대한 나의 죄책감은 자연스럽게 음식에게로 전염이 되었나 보다. '아하!'하고 무릎을 탁! 쳤다. 휴식에 대한 인식을 바꾸지 않고서는 음식에 대한 수치심과 죄책감을 날려버리기 어렵겠구나 생각했다. 그래서 이제 나는 잘 쉬기로 마음먹었다. 여유 있어도 괜찮아. 그건 게으른 게 아니야-하고 나 자신에게 허가를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