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아웃 1, 그리고 인사이드아웃 2
인사이드아웃 1은 뉴욕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보았었다. 신혼여행을 위한 비행기에서 긴 시간을 보내기 위해 별생각 없이 영화를 보았다가 큰 낭패를 겪었다. 너무 울어서 얼굴이 퉁퉁 부은 채로 비행기에서 내렸다.
이때는 내가 상담 공부를 시작하기 전이었으니 감정이니, 정서니 하는 것에 큰 관심이 없었다. 그런 나에게 이 영화는 어린 시절의 내가 초등학생이 되면서 변화되었던 아쉬움을 떠올리게 했다. 성격의 섬들이 무너질 때 심장이 내려앉는 상실감을 느꼈고 눈물이 왈칵왈칵 쏟아져 흘렀다.
유아기의 내 모습은 공주 같았다. 예쁜 치마를 입고 긴 머리도 예쁘게 땋아 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나는 바지 차림에 짧은 커트머리, 그리고 무표정한 선머슴애가 되어있었다. 그런 나의 성장을 지켜보는 엄마의 마음은 어땠을까? 나는 아들이 되기로 마음먹었던 것 같다. 운동장에서 공을 차는 아이들이 부러워 고무줄 뛰기를 하는 여자아이들을 뒤로하고 물끄러미 운동장을 바라보며 쉬는 시간을 보냈다.
장녀인 나는 아들을 낳기 위해 고생하는 엄마를 보며 '내가 남자아이였으면 우리 엄마가 저렇게 고생하지 않았을 텐데.' 하는 생각을 갖고 성장했다. 어른들이 그런 말을 하시지 않았지만, 착하고 좋은 딸이고자 했던 나는 너무나도 당연하게 스스로 그런 생각을 갖게 되었던 것 같다. 바지를 입고 머리를 짧게 하며 공부를 열심히 했다. 내가 성공하면 엄마가 아들이 없어도 기죽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면서 나에게 있던 성들이 하나씩 무너져 내렸다.
장난감을 고르는 대신 책을 골랐고, 예쁘게 꾸미는 대신 밖에 나가 뛰어놀았다. 여자 친구들과 어울리기보다 책상에 앉아 혼자 공부를 했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렸다. 그렇게 나는 어린아이 같은 모습에서 어른의 모습으로 일찌감치 모습을 바꾸었다.
우리는 누구나 성장한다. 성장하는 과정에서 겪는 상실감은 충분히 슬픔으로 애도해야 하는 감정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러한 애도의 시간이 없었던 것 같다. 슬픔 이가 빙봉을 어루만져주면서 충분히 슬퍼할 시간을 갖게 해 주자 빙봉이 슬픔을 털어내고 힘차게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엄마의 곁에 안전하게 머물기 위해 기쁨이라는 감정만 사용하려 애썼던 어린 나였다.
'내가 화를 내거나 울거나 떼를 쓰면 엄마가 힘들어질 거야.' 그렇게 나에게서 부정적인 감정들은 유리병에 담겨 깊은 잠재의식 속으로 묻혀버렸다. 그 덕분에 나는 직장에서 인정받은 교사가 되었다. 어린이집 교사로 일하면서 항상 웃었고, 남을 기쁘게 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인사이드아웃 2를 보면서는 지금 내가 겪고 있는 문제를 그대로 마주했다. 인정받기 위해 멈추지 않고 일하고 공부하고 노력했던 내가 건강의 문제로 멈춰 서기로 마음먹은 지금의 상황들이 영화 속에서는 청소년기의 라일리로 그려졌다.
34살의 국공립 어린이집 원장을 만든 것은 불안이 덕분이었고, 마흔을 앞두고 격렬하게 사십춘기를 겪게 한 것도 불안이 때문이었다. 영화의 말미에서 기쁨 이가 불안 이에게 의자와 따뜻한 차를 내어주며 여기 앉아서 쉬어도 된다는 허가를 주는 장면이 잊히지 않는다. 나도 이제 곧 원장이라는 자리를 내려놓을 것이다. 그러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느낀 것은,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일만 마치면 나는 쉴 수 있을 거야.'라고 생각하는 것은 과정각본을 따르는 것일 뿐이다.
그때는 그때고 지금은 지금이다. 지금 쉬지 못하는데 그때라고 마음 편하게 쉴 수가 있을까? 불안 이를 뒤에 앉히고 기쁨 이를 내세우는 일. 버럭이 와 까칠이, 소심이에게도 종종 컨트롤러를 내어줄 수 있는 용기를 내는 일. 그것들이 내가 앞으로 수행해야 할 과제들이다. 어쩌면 쉬운 일들이 나에게는 큰 용기를 내야 하는 일이라는 것이 조금은 서글프지만, 재결단하고 새로운 각본을 살겠다고 마음먹은 나에게는 희망이고 꿈이다.
나는 나의 지금이 좋다. 마흔을 앞 둔 사십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