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co-TA, 생태학적 교류분석
2023년은 교류분석 교육전문가 과정의 이론 수업에 매진하며 보낸 시간들이었다. 1년 동안 3권의 교류분석 교재를 공부하고 나니 뭔가 아쉬움이 남아 책을 조금 더 찾아보다가 "교육적 교류분석"이라는 책을 읽게 되었다. 이 책의 편집을 책임진 Giles Barrow는 학교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을 지원하는 교사였고, 현재는 영국의 시골에서 Eco-TA(생태학적 교류분석) 워크숍을 하기도 하고 부모를 위한 워크숍도 하면서 교류분석 교육 전문가로 지내고 있다. 이 분의 여정을 보면서 '아! 나도 이 길을 가고 싶어!' 하는 마음이 생겨났다.
3월은 어린이집에서 가장 중요하고 민감한 시기이다. 원장은 새로운 가정과 신뢰를 형성해야 하고, 교사는 새로운 아이들이 자신을 믿고 어린이집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한다. 3-4월 두 달을 저널 번역과 참고자료 발제, 발표자료 작성에 몰두했다. 퇴근 후 그리고 육퇴 후, 최소한의 수면시간 6시간을 확보해 두고는 Eco-TA(생태학적 교류분석)를 이해하는데 애를 썼다. 그리고 떨리는 성대를 꾹꾹 눌러가며 최선을 다해 발표를 했다. 1시간가량의 발표를 부끄럽지 않게 잘하기 위해 두 달을 준비했지만, 발표를 마치고 보니 그 두 달간의 여정이 보석이었다! 새로운 분야를 탐구하는 즐거움을 알게 되었고, 어렴풋하게나마 Eco-TA(생태학적 교류분석)에 대해 이해하게 되었다.
지금 수준에서 나에게 Eco-TA(생태학적 교류분석)는 인간 또한 자연의 일부라는 것을 깨닫게 해 준 것이고, 자연을 매개로 한 경험들이 내담자와 라포를 형성하는 것과 치료를 적극적으로 돕는 역할을 멋지게 해 낼 수 있음을 알게 해 준 이론이다.
내가 번역하여 발표한 두 사례 중 하나는 내담자가 지역사회의 텃밭 프로그램에 참여하여 안전한 농지에서의 경작활동을 통해 애착을 재형성하고 다시 일상생활로 나아가게 했음을 보여주는 사례였고, 또 하나는 학교에서 부적응 행동을 보이는 두 학생이 각각 강아지와 말을 돌보는 과정을 상담사가 관찰하고 적절한 개입을 하여 학교 생활의 적응을 도왔던 사례였다. 물론 교류분석 상담이론을 바탕으로 활동과 개입은 이루어졌다.
이 발표를 통해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은 더욱 명료해졌다. 인간이 식물과 동물, 땅과 물 등 자연을 단순히 개발하고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일부가 되어 허가와 스트로크를 주고받는 활동들을 개발하는 것!" 우선 교류분석 상담이론을 더욱 견고하게 공부해야겠고, 이를 바탕으로 Eco-TA(생태학적 교류분석)와 관련된 활동을 개발하고 그 효과들을 관찰해야겠다.
요즘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은 자기 효능감이 낮은 사람에게 텃밭 활동이 어떠한 도움이 되는지를 확인해 보는 것이다. 어린이집에서 '생각하기'단계의 발달과업을 수행하고 있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채소를 기르는 일이 어떠한 효과를 주는지 관찰해보고 있다. 교류분석 발달이론에서의 18개월에서 36개월은 '생각하기' 단계라고 불린다. 생각하는 능력이 발달하기 시작하여 떼쓰는 행동이 관찰되고, 능동적인 실험(경험)을 통해 스스로 배우려 하고, 다양한 감정 표현을 통해 양육자로부터 수용되는 감정과 통제되는 감정이 무엇인지 알아가는 시기이다. 발달 과업의 특성상 '미운 3살, 미운 4살'일 수밖에 없는 이 아이들이 어떻게 하면 자신의 능력(노력)을 인정받을 수 있을까? 친사회적 행동을 해야지 칭찬을 받을 텐데, 떼쓰고 실험하고 난리 치는 것이 발달과업이다 보니 칭찬받는다는 것은 성장(발달)의 방향과 반대로 갈 때 가능한 일이 된다. 그래서 이 시기 아이들에게 텃밭 활동은 중요한 것 같다. 이 전 단계는 '행동하기' 단계인데, 이 시기 아이들은 무조건 입에 넣어 탐색하고 협응력이 발달하고 있는 과정이라 텃밭 활동에 필요한 동작이 서투르기만 하다. '행동하기' 단계의 과업을 잘해 낸 아이라면 '생각하기' 단계에 접어들었을 때 흙을 입에 넣거나 물을 흙이 아닌 자신의 발에 부어버린다거나 하는 미숙함은 없을 것이다.
무튼 이러저러하여 만 1세 반 영아들과 종종 텃밭에 물을 주러 나온다. 아이가 토마토에게 물을 줄 때 나는 곁에서 토마토로 빙의하여- 이렇게 말해준다. "친구야, 나한테 물을 줘서 고마워~ 네 덕분에 내가 쑥쑥 자라서 맛있는 토마토를 맺을 수 있을 것 같아." 물을 주는 아이는 방긋! 웃는다. 그리고 그 아이는 일과 중에서도 "고마워."라는 말을 많이 하게 되었다.
텃밭 가꾸기와 더불어 마음을 쏟아 본 것이 또 있는데, '스트로크를 주는 나무'이다. 교류분석에서 '스트로크'는 claude steiner라는 분의 개념인데, '인정자극'이라고 할 수 있다. 타인을 인정하는 자극의 최소 단위로 긍정적인 자극도 있고 부정적인 자극도 포함한다. 칭찬이나 비난과 같이 언어로 표현될 수도 있고, 포옹이나 폭력과 같이 비언어적으로 표현될 수도 있다. 또 노력이나 실패에 대한 조건적인 인정자극도 있으며, 존재 자체에 대한 사랑 또는 미움의 무조건적인 인정자극도 있다. Claude Steiner는 인간행동의 동기는 스트로크를 받고자 함에 있다고 하였다.
나는 스트로크를 잘 받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누군가가 나에게 존재 자체로의 인정 또는 내 능력에 대한 조건적 인정을 줄 때, 겸손한 사람의 가면을 들고 칭찬과 사랑을 거부했다. 스트로크를 받으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내 볼을 빨갛게 상기시키고 심장을 뛰게 만들었다. '칭찬이나 사랑은 나를 멈춰 세울 거야. 나는 더 노력해야 하는 사람이야. 여기에 머무를 수는 없지. 듣지 마, 그리고 더 노력해.' 하는 내면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그런 나에게 친정에 가면 유독 마음 깊숙이 들어오는 나무가 한 그루 있었다. 친정 집 앞 소류지에 자라는 버드나무인데, 물속에 뿌리를 두고 마르지 않는 싱그러움을 보여주는 나무이다. 어느 계절에 보아도 힘이 있고 여유로운 이 나무를 보고 있으면 부담스럽지 않은 인정자극을 느낄 수가 있었다. 그래서 친정에 갈 때마다 물속에 자라는 버드나무를 한참을 바라보며 마음을 채우고 또 채웠다.
사람에게 직접 듣는 스트로크가 부담스러웠던 나 지만, 누구에게나 스트로크는 필요하다. 마음의 영양소이고, 스트로크가 없이는 심리적인 기아상태를 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버드나무로부터 스트로크를 받은 나는 이제 사람에게도 스트로크를 받는 일이 어렵지 않다. 누군가가 나에게 칭찬을 해오면 "고맙습니다!"하고 넙죽 받는다. 더 노력하고 더 나아갈 힘은 스트로크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생각했다. 사람들이 이 나무에게 메일을 보내면 내가 버드나무를 빙자하여 '스트로크'를 주겠다는 재미난 생각을 했다. 메일 주소는 스트로크라는 개념을 만든 학자인 claude steiner와 친정 농장 이름인 '구름바위농원'에서 공통으로 연상되는 구름, cloud를 따 오고 버드나무를 영어로 하여 willow를 붙여주었다.
위로받고 싶고, 인정받고 싶은 누구나- cloudwillow@naver.com으로 메일을 보내주기를 바란다. 마르지 않는 물을 머금고 사는 버드나무가 당신에게 힘이 되는 스트로크를 보내줄 것이다. 내가 꿈꾸는 Eco-TA(생태학적 교류분석)은 이런 것이다. 인간도 자연의 일부임을 알고 인간과 자연이 서로 교류하면서 위로받고 의지하고 힘을 내는 것- 사람에게 상처받고, 관계에 지친 사람들이 자연으로부터 치유받을 수 있는 것, 그것이 내가 꿈꾸는 Eco-TA(생태학적 교류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