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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두란 Jul 13. 2024

7. 우리 매달 만나요!

교류분석 부모훈련 커뮤니티의 대성공

  개원 첫 해 공약을 지키듯 용감하게 시작한 TAPT는 나의 첫 실험작이었다. 워크북을 학부모 수만큼 구매해서 나눠드리고 교재에 충실하게 워크숍을 진행했다. 아쉬움이 있었지만 내가 부모교육 강사로 자리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설레고 감사했다. 다음 해는 코로나로 모든 교육이 불가했고, 세 번째 2학기가 되어 나의 TAPT는 다시 재개되었다.


  우리 어린이집은 보육실 세 개에 별도의 공간이 없어 교육은 항상 원외에서 이루어졌다. 조용한 카페를 전전하며 부모님들을 모셨지만, 한 마음 한 뜻으로 이야기 나누고 공감하는 우리에게 장소는 크게 문제 되지 않았다. 나도 또래의 영아를 키우는 워킹맘인 점이 부모교육 강사로서 가장 큰 무기가 되었다. 특히나 우리 아이는 까다로운 기질의 아이였으며, 선천성 기형을 갖고 태어나 수술을 여러 차례 했어야 했던 케이스였다. 워킹맘으로서의 내 일은 우리 반만 잘 챙기면 되는 자리가 아니었고, 원 전체를 책임지면서도 담임교사 역할을 했어야 했던 자리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모자람 없이 사랑과 돌봄과 구조를 주었고, 아이는 더함도 없지만 모자람도 없이 행복하게 잘 자라고 있는 것 같다.


  그렇게 카페를 전전하며 부모님들과 끈끈한 지원관계를 이루어가다가 공공기관의 공간대여를 알아보기 시작했고, 인근 도서관의 동아리실이 독서모임 동아리원들에게 정기대여된다는 정보를 얻게 되었다. 그래서 부모님들과 동아리 형태를 갖추고 매월 셋째 주 목요일 13시-15시에 동아리실을 1년간 빌리게 되었다.

  매월 이루어지는 만남은 달마다 새로운 교류분석 주제로 이루어졌지만, 지난해에도 참여했던 부모님들의 경우엔 똑같은 주제를 다시 듣는 꼴이었다. "지난해 들으셨는데 또 들어서요?"라는 나의 물음에 한 부모님께서 하신 답변이 잊히지 않는다. "원장님! 작년의 우리 아이가 지금의 우리 아이가 아니네요. 애가 크니까 엄마도 따라 또 공부하고 커야 하는 것 같아요." 이렇게 우리는 주제가 무엇인지 상관없이 매달 만났다. 두 시간 동안 서로 어려움을 나누고 격려하고 칭찬하고 공감하면서 힘을 나누어가졌다. 그 힘으로 한 달을 버텨보겠다며 웃으며 헤어지고, 다음 달이면 어김없이 또 만났다. 사정이 있어 한 달 참여를 놓친 분들은 두 달 만에 앉은자리에서 이야기를 나누며, 두 달이 너무 길었다며 이 시간을 너무 기다렸다며 막혔던 숨통을 터뜨리셨다.



지역의 도서관을 대관하여 독서동아리의 형식으로 매월 진행한 부모교육 워크숍-


  내가 진행하는 한국교류분석상담학회의 '교류분석 부모훈련(TAPT)'은 자녀와 함께 부모가 성장하는 것이 특징이다. 자녀의 성장을 위해 부모가 자신을 갈고닦는 것이 아니라, 부모가 재성장 하고 힘을 얻어 자율적으로 삶을 살아가면 자녀 또한 그 울타리 안에서 건강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교육을 말미암아 자신을 조금 더 깊이 알아가고자 하는 부모님을 위해 나는 매주 화요일을 부모개인상담일로 정해두고 상담예약을 받았다. 매달 2회 정도 상담 예약이 있었고, 상담을 신청하시는 부모님마다 평균 4-5회기의 상담을 이어가셨다. 아직은 전문상담사가 아닌 내가 진행하는 상담은 분명 미흡했지만, 상담을 받은 부모님들은 도움이 많이 되었다며 고마워하셨다. 교류분석으로 상담을 하는 과정은 내담자의 부모자아와 어른자아, 어린이자아에 저장된 기억들을 살펴보고 어른자아로 업데이트를 하는 과정이었고, 나는 그 과정에서 적절한 허가와 스트로크를 줄 수 있도록 애썼다. 상담 공부를 하고 있는 나에게는 귀한 수련의 기회였다. 이렇게 부모님들과 나는 상담과 교육으로 끊임없이 연결되고 서로를 알아갔다. 운영이 처음인 새내기 원장에게 이렇게 연결된 부모님들과의 관계만큼 좋은 윤활유는 없었다. 지금도 하원 후 바깥놀이터에 나가면 졸업생 아이들과 부모님들이 반갑게 나를 맞아주신다. 졸업 후에 관계는 여러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어 더 편안하고 가깝게 느껴진다.




  지금도 부모님들과 sns로 서로의 육아를 훔쳐보고 응원한다. 한 번 원장은 영원한 원장일 테지- 원장이라는 이름으로 불릴 날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이후에도 나는 누군가에게 원장님일 것이다. 서로 이 어려운 육아를 우리가 해내고 있다며 격려해 주고, 눈물이 날 때는 육아가 원래 힘든 거다 위로해 주고, 아이의 성장에 함께 손뼉 치고 기뻐해주었던 사람이 나였다. 나를 "원장님"이라고 불러주는 부모님들과의 관계가 나에게는 훈장과도 같다. 관리자로서는 야무지지 못하고 철저하지 못한 부족함을 안고 버텼지만, 부모님들과 마음으로 교류하고 함께 성장할 수 있어 보람되고 즐거웠던 시간이었다. 졸업을 하고 수년이 흘렀지만 어김없이 "원장님~"하고 찾아주시는 부모님들이 나에게는 훈장이고 표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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