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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두란 Jul 13. 2024

5. 포기! 이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담임겸직 원장을 그만두다

  내가 위탁받은 어린이집은 20 정원의 소규모 어린이집이었다. 나는 집에서 돌박이 아들의 육아를 하는 워킹맘이었고,  아이를 어린이집에 등원시킨  서둘러 출근을 하면 09시부터 16시까지는 담임교사의 업무를 겸직해야 하는 담임 겸직 원장이었다. 지금은 담임 겸직의 기준이 조금 완화되어 현원이 18명이거나 5 학급이 유지되면 담임을 겸하지 않아도 된다. 무튼 나는 담임교사 겸직 원장이었다.  


  보육실마다 CCTV 있으니 내가 맡은 반의 아이들을 우리 선생님들께 떠맡기고 원장 업무를 보는 것도 불가능했다. 그래서 2 가까운 시간 동안 나는 기본보육 시간(09~16)에는 담임 업무에 충실했고, 16 이후에는 알림장 작성, 서류 작업, 전화  퇴근까지 두 시간을 정신없이 보내고 칼퇴를 했다. 집에 돌박이 아이가 있는지라 일이 밀려도 야근을  수가 없었다.


  퇴근 후의 시간은 힘들지만 감사한 시간이었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너무나도 보람되고 사랑스러운 일이다. 저녁을 챙겨 먹고 함께 놀이하고 씻고 잠자리에 드는 일상은, 아이가 아파보았기 때문인지 더욱 감사하고 소중했다. 대단하지 않아도 이렇게 하루하루 평범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이 좋았다.


퇴근 후 저녁시간, 아이와 놀이 시간은 매일 매일이 소중하다.


  아이가 잠이 들고 나면 나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 다시 출근을 했었다. 낮에 보육을 하느라 챙겨보지 못한 회계 서류들과 원장 업무 등을 해내고 아침이 오기 전에 퇴근을 해서 잠시 눈을 붙였다. 


  담임교사 겸직과 퇴근  육아 만으로도 벅찼지만, 나는 서둘러 어린이집 평가를 준비해야 했었다. 정부지원 어린이집의 경우 평가를 받지 않은 신규시설에는 조리사의 인건비가 전혀 지급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조리사 인건비 지원을 위해 개원 반년만에 서둘러 어린이집 평가를 신청하였고, 밤이면 다시 출근하여 어린이집의 각종 문서와 어린이집 평가 지표를 챙겨보았다. 코로나19 인해 원아모집도 원활하지 못했고 운영비가 넉넉하지 않으니 평가를 어서 받고 조리사 인건비부터 챙겨야 하는 상황이었다. 물론 지금은  부분이 개선되어 개원과 동시에 조리사 인건비가 전액 지원되고 있다.




  육아와 일, 육퇴와 함께 재출근의 삶을 나는 개원 첫 1년 동안 너무나도 열심히 수행했다. 어린이집 평가도 A등급으로 잘 받았고, 원아들도 점점 늘어나 어느새 인가 정원도 채우게 되었다. 하지만 그렇게 일과 육아로 쉼 없이 달렸던 나에게 드디어 탈이 났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몸과 마음의 상태가 되었다. 우울증과 불안, 어깨를 펴기 힘들 만큼 무거운 몸을 이끌고 대학병원에 건강검진을 받으러 갔다. 검사 결과를 가지고 방문한 내과에서는 매일 챙겨 먹어야 하는 여러 알의 약을 처방해 주었다. 약 봉투를 물끄러미 보면서 이렇게 계속 생활할 수는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원장을 그만 둘 마음 까지도 먹고 시청에 들어갔다. 담당부서의 과장님께 담임겸직 원장의 어려움에 대해 진솔하게 이야기를 드렸고, 감사하게도 어린이집의 유휴공간을 다시 측정하여 인가정원을 조금 늘리는 방향으로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드디어 반쪽짜리가 아닌, 진짜 원장이 되는 순간이었다.


담임교사 겸직 원장으로 아이들을 위해 놀이를 준비하고 지도했던 날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참 미련하고 우직했다. 나라면 최선을 다해 못해낼 일이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겉으로 보기에는 옳은 말이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인생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소중한 것들이 있다는 걸 그때의 나는 몰랐다. 건강, 애정, 우정- 나는 이러한 것들을 보지 못하고 내 앞에 펼쳐진 일들을 해치우는 성취감과 재미에만 빠져있었다. 끝판을 깨면 이 게임에서 승리하고 멋지게 게임이 끝날 줄 알았다. 이제는 안다. 인생이라는 게임의 끝판은 죽음이라는 걸- 죽을 때까지 끝나지 않는 게임이라는 걸! 삶은 게임이 아니다. 목숨도 단 하나이다. 게임을 하듯이 그렇게 살아서는 안된다. 미련하게도 내 삶을 끝까지 몰아세우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그러면 안 된다는 것을!   


  담임 겸직에서 벗어나 진짜 원장이 되며 마음먹었다. 재위탁을 받지 않을 것임을- 인생에는 또 다른 무언가가 있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집을 떠나는 제니처럼 나도 이 자리를 완전히 떠나기를 진짜 원장이 되면서 마음먹었다. 그리고 진정으로 내가 좋아하고 하고 싶은 일들을 생각해 보았다. 하나 둘, 하고 싶은 일들이 떠올랐다. 그 일들을 하기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도 알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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