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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희수 Sep 16. 2022

환경이 우리를 짓누를 때

환경의 본질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우리를 둘러싼 환경과 함께 한다. 

환경은 우리를 성장시키기도 하고 나락으로 떨어뜨리기도 한다. 




선천적인 고유의 특질을 감싼 환경은 한 사람의 전반적인 성격을 결정한다. 

그중에 가장 중요한 환경은 사람이다. 더 어려서 만난 사람일수록, 친밀한 정도에 따라 영향력은 더 클 수밖에 없다.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인생의 방향이 달라지는 경우가 많다. 부모는 물론이고 때로는 선생님의 특별한 지도가 인생의 지표가 되기도 하고 한마디의 조언이 평생의 좌우명이 되기도 하며, 친구의 영향으로 인생이 바뀌기도 한다. 

어린 시절 가정의 형편과 배경은 많은 영향을 미치고, 사건과 경험은 성인이 되어서도 때로는 평생 그 틀을 깨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환경은 선택보다는 반응이다. 

환경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그것이 독이 되기도 하고 유익이 될 수가 있다. 

때로는 나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환경은 멀리하는 것이 그 속에서 저항하는 것보다 좋지만 그 선택은 한정적일 경우가 많다. 특히 어린 시절의 환경은 내가 선택하기가 어렵다. 

현재 진행형인 환경은 물론이고 이미 지나갔지만, 우리의 기억과 잠재의식에 존재하여 여전히 영향을 미치고 있는 과거의 환경은 우리의 반응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우리가 올바른 자세를 갖추고 있다면 환경이 나를 지배하지 못하고 어떠한 환경에서든 배울 수 있다. 우리에게 주어지고 있는 환경이 아닌, 우리의 마음속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가 중요하다.        

사람의 일생은 환경과 반응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내가 선택한 것과 주어진 것에 대한 나의 마음가짐은 나를 만든다. 그 마음가짐 하나하나가 나를 지배하는 것이지 환경이 지배하는 것이 아니다.  

아래 그래프는 환경에 따른 반응이 사람에 따라 다르게 나타남을 보여준다.    


      


A는 환경(상황)이 좋으면 그만큼 반응(감정)도 좋고 안좋으면 그 안좋은 감정이 그대로 드러난다. 평균적인 우리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B는 상황에 따라 감정의 폭이 작다. 상황에 잘 좌지우지되지 않는다. 

이런 사람들은 소수의 선천적인, 혹은 많은 경험을 한 사람들도 있고 각고의 노력에 의해 그런 능력을 갖춘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공히 마음 바탕에 무엇이 자리하고 있는지가 중요하다.


환경이 나를 지배하지 못하도록 환경에 집중하기보다 환경의 이면(裏面)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환경의 의미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그 환경이 나에게 주어진 의미는 무엇인가를 파악하면 그것을 받아들일지, 또 어떻게 받아들일지를 판단할 수 있다. 

확실한 것은 나에게 다가오는 환경은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다가오는 환경을 피해서 도망치거나 정면으로 맞아들일지를 선택할 수 있지만, 환경 자체는 나의 소관이 아니다. 

나쁜 일을 꾸미려는 친구무리들을 벗어나서 그 일에 대한 공동책임을 면할 수 있다. 그 친구무리의 환경이 나를 나쁜 사람으로 만들 수 있었는데, 나는 현명하게 대처한 것이다. 다가왔던, 혹은 내가 다가갔던 그 친구들과의 쾌락을 즐기려는 마음가짐이 자칫하면 해를 당할 뻔한 것이다.     


우리 자신 스스로 유혹을 극복하고 환경에 맞서 싸울 수 있지만 쉬운 일이 아니다. 내 마음속에서 매일 일어나는 선과 악의 갈등이 얼마나 많은가? 환경에 반응하는 나의 마음 때문에 실패하고 죄를 짓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환경은 저절로 만들어지는가, 아니면 어떤 절대적인 법칙의 영향인가? 환경에 가장 잘 대응할 수 있는 방법, 아니 비결은 무엇인가? 

  

내가 통제할 수 없는 환경이 어떤 절대적인 법칙에 근거해서 생긴 것이라고 생각하면 어떨까? 

여기에 비결이 숨어있을 수 있다. 잘 모르지만, 환경은 분명히 내가 어쩔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을 인정하면 그 환경이 만들어진 절대 법칙이 있을 수 있다. 그러면, 그것에 의지하여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어떤 환경이 주어지던지 그 환경을 준 절대적인 힘을 생각할 때에 나는 그것을 회피하거나 극복할 이유가 있다. 

때로는 엄청난 시련이 포함된 환경은 나를 단련시키기 위한 누군가의 계획이라면 나는 그것을 회피해서는 안될 것이다. 성장의 기회이기 때문이다. 또는 나를 나락으로 떨어뜨릴 수 있는 상황에 그가 원하는 길이 아니라고 판단한다면 한 발짝 더 다가가지 않고 큰 화를 당할 것을 예방할 수 있을 것이다.


환경은 다양하고 나에게 미치는 영향을 예측하기가 힘들 때가 많다. 여러 가지 선택지에서 어느 길로 가야 하는지 도저히 모를 때도 많다. 기술과 미디어의 발달로 너무 많은 정보가 오히려 선악의 분별과 올바른 선택을 더 어렵게 할 때도 많다. 이럴 때야말로 나의 가치관과 주관이 분명해야 한다. 완전하고 확실한 무언가가 필요하다. 이런 세대에 안전하게 의지할 곳이 없는 것은 불행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절대적인 힘을 생각하면, 세상은 복잡하지만 단순한 원리에서 출발한다. 

만일, 누군가가 세상을 만들었다면 그가 만든 세상의 섭리에 따라 사는 것이 가장 행복할 것이다. 

세상을 단순하게 사는 것이 가장 안전하고 현명하다. 그리고 가장 고차원적이다. 겹겹이 쌓여있는 복잡한 환경을 한 꺼플씩 벗겨내면 나중에 남는 하나. 그것은 인간이 만든 모든 것을 제외한 것이다. 

인간은 스스로 복잡한 환경을 초래했고 행복을 묻으려 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올바른 것을 신뢰할 때, 환경은 단순해지고 내가 가야 할 길이 명확해진다. 그 길은 혼자 갈 길이 아니고 무한한 신뢰의 원천과 동행하는 길이라 외롭지 않고 두렵지 않다. 그래서 기쁜 마음으로 함께 갈 수 있다.

여기에 주어진 환경에서 평안을 얻을 수 있는 라인홀드 니부어(Karl Paul Reinhold Niebuhr)의 기도 구절 하나를 소개한다.     


“제가 변화시킬 수 없는 것들에 대해서는 받아들일 수 있는 평안을, 

 제가 변화시킬 수 있는 것들에 대해서는 그것을 변화시킬 수 있는 용기를,

 그리고 그 둘의 차이를 알 수 있는 지혜를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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