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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희수 Sep 12. 2022

삶의 철학

분별

저명한 연사가 여러 나라에서 강연을 해왔다. 한번은 마음을 사로잡는 연설을 끝내자 이름 있는 인사가 이 명 연사를 만나 보려고 무대 뒤로 찾아왔다. “그 호소력 있는 강연을 하기위해 연단에 나서기 전에 마지막으로 하는 것이 무엇인가요? 셰익스피어 작품의 마음에 드는 대목들을 보는가요, 아니면 예이츠의 시에서 감동적인 것들을 머리에 떠올리는가요?”.

 “아닙니다. 그런 일 없습니다.” 연사는 대답했다. “바지의 지퍼가 잠겨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거기를 만져본답니다.”



삶과 죽음은 같이 움직인다. 

우리는 삶에 치우치지만 생각해보면 살수록 죽음에 가까이 간다. 

터부시하는 죽음은 실은 우리 삶인 것이다. 

장례식에 가서 죽은 자의 주검을 볼 때야 비로소 그 사실을 깨닫기도 하지만 또 일상으로 돌아가면 삶의 무게가 죽음의 존재를 잊게 만든다. 


그렇다고 해도 죽음이 삶에 비해 가벼워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점점 죽음이 더 무거워지고 있음을 깨닫지 못한다. 

어찌 보면 죽음이 있기에 삶이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 죽음은 터부시하고 피할 것이 아니라 진지하게 생각하고 다루어야 할 것이다. 삶을 대하듯이, 아니 삶보다 더 중요하게 다루어야 할 영역이다. 바늘과 실과 같이 무엇하나가 빠지면 옷을 만들 수 없듯이 둘 중 어느 하나를 제외하고 우리의 인생을 만들 수 없다.      


죽음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준비하는 사람은 현명한 사람이다. 

삶의 의미를 제대로 인식하는 사람이다. 

죽어서 갈 곳을 고민하고 준비하는 사람은 분별 있는 사람이다. 이것은 사(死)의 찬미가 아니고, 염세적인 것도 아닌 오히려 진취적인 것이다. 그러나 삶에 파묻혀 자신을 돌아보지 못하고 삶의 바탕에 있는 죽음을 무시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다. 

죽음을 바탕에 두지 않고 사는 사람은 무의미한 삶을 살 수밖에 없지 않은가? 


이 시대 최고의 석학 이어령 교수의 말처럼 현대는 죽음을 인식하기 힘들다. 예전에는 역병이 들면 길거리에 시체가 나뒹굴었고 병, 기근으로 인한 주검을 심심치 않게 보면서 자연스럽게 죽음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나, 현대에는 일생에 한두 번 시체를 볼까 말까 한다. 그래서 아마도 사람들이 자신은 천년, 만년까지 살 것처럼 생각하는 것 같다. 

내가 초등학교 때 한강 광나루에 수영하러 갔다가 익사한  시체를 보았다. 그리고는 40세가 넘어 아버님이 관속에 누워계신 것을 본 것이 마지막으로 본 시신이었다. 아버님이 영욕을 뒤로하고 한 줌의 가루가 되어 작은 단지 안에 담겨 안치되는 것을 보고는 삶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어디로 가고 있고 무엇을 남길 것인가?      


죽음은 아무것도 남기지 못한다. 아무리 큰 재물, 명예를 가졌더라도, 수많은 사람을 움직이는 영향력을 가졌더라도 코의 호흡이 중단되는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우리는 매일 삶을 생각하듯 죽음도 생각하며 살아야 한다. 매일 치열하게 삶을 살아가듯 치열하게 죽음을 준비해야 한다. 나의 죽음이 의미가 있도록, 나의 죽음이 새로운 삶의 시작이 되도록 해야 한다. 

이스라엘의 가장 태평성대를 누리고 부유한 왕이었던 솔로몬이 인생 말기에 “헛되고 헛되도다”라고 말했듯이 우리의 삶의 종착역은 제로(0)이다.


그래서 삶의 철학은 죽음의 철학이다. 죽음에 대한 철학이 있는 사람은 온전히 자신을 바라보며 살 수 있다. 

앞만 보고 달리다가 “어”하는 순간에 이미 불귀(不歸)의 객(客)이 될 수 있다.  


‘레미제라블’의 저자 빅토르 위고(Victor-Marie Hugo)는 이런 말을 했다. 

“나는 무덤에 들어갈 때에 하루의 일과를 마쳤다고 말할지언정 내 인생을 마쳤다고는 말하지 않으리라. 나는 그다음 날에도 여전히 일할 것이기 때문이다. 죽음은 막다른 골목이 아니라 새로운 삶을 향한 통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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