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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희수 Aug 31. 2022

마음속의 전쟁

소 우주

내가 어학연수를 위해 미국에 있을 때, 60대 중반의 할아버지 한 분과 룸메이트였던 적이 있었다. 



그분이 주택 한 세대를 임차하고 나한테 다시 방 하나 임대를 놨다. 좀 독특한 분이었는데, 한국에서 파는 빨간 내복만 아래위로 입고 아침 거리를 뛰며 운동할 때도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 중에 “Are you crazy?”라고 놀리기도 한다고 스스로 말했다.

내가 야간 아르바이트를 하고 낮에 잠을 자다가 이상한 소리가 나서 보니 거실에서 봉술을 연마하고 있던 적도 있었다. 

냉장고에는 3~4일 치 음식이 가득 들어있었는데, 냉면 그릇 하나에 오곡밥과 아채, 계란 등 건강식이 한 끼 식사였다. 웃통을 벗어 던지고 봉술을 하는 몸은 잘 단련된 40대로 보였다. 

한국에서 영어 교사를 해서 그런지 말이 많았는데, 내가 아르바이트와 영어 수업 때문에 서로 자주 만나지 못했지만, 화장실에 가다가 통로에서 잘못 걸리기라도 하면 한 20분 정도 무용담과 개똥 철학을 꼼짝없이 들어야 했다. 도통 속사포같이 말하는 틈새를 찾아 빠져나오기가 힘들었다.

한국에서 10여 년 전에 미국으로 와서 미국시민권을 취득했는데, 한국에 대한 언급에서 6.25 전쟁에 대해 말을 했었다. 커다란 포탄 하나가 자신의 바로 옆을 스치고 지나가서 뒤에 있던 사람의 머리에 맞고 터진 일 때문에 전쟁 트라우마가 있었다. 그 할아버지에게 물리적 상황은 종료가 되었으나 마음속의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그 마음속에 치유되지 않은 상처는 살아있다. 전쟁으로 인한 상처가 원망, 미움으로 전환되어 있다. 

그러면서 자신은 한국에 가지 않는다고 했다. 그 이유가 한국에 가있는 동안 전쟁이 일어날지 몰라서라고 했다. 수십 년의 세월도 마음속의 상처와 미움을 지우지 못한 것이다. 지금 상황이 바뀌고 남북한에 해빙이 찾아와도, 한국에 두 아들이 학교에 다니고 있어도 아직 그 마음 속은 전쟁중이다.         


영화 ‘반지의 제왕(The Lord Of The Rings)’에 나오는 골룸이 선과 악을 짧은 시간에 번갈아 가면서 독백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인간의 번민과 갈등을 잘 묘사했다. 마치 천사와 악마가 옆에서 경쟁적으로 속삭이며 자신들이 바라는 행동을 할 것을 종용하는데, 결국은 악을 선택하고야 만다.


 우리도 하루에도 수십 번 선과 악의 선택을 해야 한다. 누가 길을 물어보면 친절하게 대답할지, 불친절하게 대할지. 나의 실수를 꾸중한 직장 상사를 고맙게 생각할지, 두고 보자며 이를 갈지. 말대답을 삐딱하게 하는 신입직원을 골탕먹일 일을 꾸밀지, 차를 한 잔 사주면서 잘 타이를지. 멋진 이성을 보고 이미 마음은 호텔에 함께 가 있는지, 아니면 멋진 모습에 경탄만 하는지. 길에서 주운 지갑을 경찰서에 갖다가 줄지, 안에 있는 돈만 가져갈지. 발각되기 어려운 불법적인 거래 이익을 좇을지, 거절해야 할지.

선과 악의 전쟁이 매일같이 우리 마음속에서 일어난다. 동물들은 선과 악에 대한 인식 자체가 없이 그냥 본능에 따라서 살아가지만 인간은 그렇지가 않다. 복잡계이다.    


우리의 생각은 무엇이 좌우하는가? 불현듯 떠오르는 생각들. 그 생각에 어떤 힘이 느껴지지 않는가? 우리가 보고 듣고 경험한 것들이 떠오르지만 때로는 강한 잘못된 길로 인도하는 생각을 느껴봤을 것이다. 때로는 강하게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속삭임을 느껴봤을 것이다. 그 강력한 힘은 때로는 저항하기 힘들 때가 있다. 그리고 나중에 후회를 한다. 그러면서 내가 왜 그 길을 선택했을까를 의아해하기도 한다. 





하루 정도 자신의 생각을 면밀히 모니터링 해보자. 내 속에서 어떤 생각들이 오고 가고, 내 의지에 의해서 어느 정도 그 흐름을 바꿀 수 있는지 조사해보자. 아마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동안 너무 생각나는 대로 행동해 왔다고 느끼기도 할 것이다. 때로는 강하게 나를 휘감는 생각이 감지되면 조용히 눈을 감고 그 힘의 원천을 생각하자. 나의 신경을 꿈틀거리게 하고 몸의 마디 마디를 휘젓는 힘. 

어떤 생각은 굉장히 미묘해서 나 자신을 잊고 세밀하게 들여다봐야 알 수 있는 것들도 있다. 그것은 세밀하지만 나를 지배하는 강한 힘일 수 있다. 아니, 그럴 가능성이 높다.

내가 내 생각을 완전히 지배하면 아무 문제가 없겠지만 그것은 불가능하다. 내가 감지하지 못하는 생각이 있고 어떤 것은 너무 강해서 거기에 끌려갈 수밖에 없다.     




 나를 이끄는 힘. 그들의 전쟁. 과연 내가 그들의 전쟁의 완전한 심판자인가? 

내 속에서 일어나는 전쟁을 내가 어찌하지 못한단 말인가? 나는 그 힘을 깨닫고 싶다. 내 속에 또 다른 힘이 있지는 않은가? 그 힘들은 나의 내부에 존재하지 않는 것들일 수도 있다. 

선과 악의 세력들. 그들은 외부에서 와서 내 속에서 내 허락도 없이 싸운다. 물론 선택은 나의 몫이지만, 나는 그 싸움을 중지시킬 수 없다. 내가 죽는 날 그 전쟁이 끝날 것이다.


우리는 진리를 알기 위한 여정에서 그 세력들을 간파해야 할 필요가 있다. 내 안에 소우주가 있다. 우리의 인생은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오히려 보이지 않는 것이 더 치열하고 중요하다. 아무 성찰 없이 사는 인생은 보이는 것만 보고 생을 마감한다. 그렇게 하고 싶지 않다.


그리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이 어떤 생각을 가지면 그 자신도 그렇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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