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샤 커피'의 여정(1)

신의 향을 품은 한 잔, 게이샤 커피의 탄생 이야기

by TERAROSA 이윤선
snapbythree-my-g6e641CiHFQ-unsplash.jpg ⓒunsplash

커피 한 잔이 우리의 일상에 아주 조용히 들어와 마음 한구석을 흔들어놓을 때가 있습니다. 향을 맡는 순간, 눈앞에 새로운 풍경이 펼쳐지고, 한 모금 머금었을 뿐인데 ‘이 커피는 무엇이 다르지?’라는 질문이 저절로 떠오르는 순간들.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은 바로 그런 커피입니다. 게이샤 커피(Geisha Coffee). 많은 커피 애호가들이 한 번쯤 들어본, 그러나 쉽게 만날 수 없는 이름이죠.


게이샤 커피가 처음 세상에 강렬하게 등장한 순간은 2004년이었습니다. ‘베스트 오브 파마나(Best of Panama)’ 품평회에서 미국 출신 커퍼 돈 홀리(Don Holly)가 한 잔의 커피를 맛보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컵 안에서 신의 얼굴을 보았다.


그 한 문장이 세상을 뒤흔들었습니다. 이 커피는 그 해 온라인 경매에서 파운드당 21달러에 낙찰되며 전 세계의 시선을 파나마로 향하게 만들었습니다. 커피 러버라면 한 번쯤은 들어봤을 만한 '파나마 게이샤 커피'가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한 순간이었습니다.



'파나마'라는 땅이 커피를 품기까지


스크린샷 2025-11-03 오후 5.05.48.png ⓒ https://www.britannica.com/place/Panama


파나마 공화국. 북미와 남미의 경계이자, 태평양과 대서양이 만나는 곳. 지리적 요충지라는 특성 덕분에 오래전부터 수많은 나라와 문화가 교차했던 곳입니다. 16세기 초, 스페인이 파나마에 도착했을 때 이곳에는 약 75만 명의 원주민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식민 지배, 질병, 착취로 인해 인구의 대부분이 사라졌고, 이후 파나마는 오랜 시간 외세의 영향 아래 놓여 있었습니다.


19세기 중반, 파나마는 또 한 번의 변화를 맞습니다. 1849년 '캘리포니아 골드러시'로 파나마는 번영을 누렸다. 많은 탄광노동자들이 미 대륙을 횡단하는 험난한 여정보다 파나마를 거쳐 이동하는 길이 더 빠르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수많은 사람이 파나마로 몰려들었습니다. 이 시기에 철도가 놓이고, 이후 파나마 운하가 세워지며 파나마는 중미 금융·무역의 중심 도시로 성장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다양한 유럽인들이 파나마에 들어왔고, 이들과 함께 커피 역시 이 땅에 뿌리를 내리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바닷가 근처에 농사가 시도됐지만 번번이 실패했습니다. 커피는, 늘 그렇듯 꼭 맞는 자리를 만날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파나마 커피가 비로소 자리를 잡기 시작한 곳은 보케테(Boquete) 지역이었습니다. 바루(Barú) 화산의 화산재 토양, 높은 고도, 낮과 밤의 큰 일교차. 커피가 천천히 익어가기에 완벽한 조건들이었죠. 뒤늦게 시작된 커피 농사였지만, 품질만큼은 결코 뒤처지지 않았습니다.


스크린샷 2025-11-03 오후 4.53.34.png ⓒ TERAROSA

흥미로운 점은, 파나마는 생산량 자체는 매우 적다는 것입니다. 2024년 기준 약 118,000백/60kg 중 수출량은 34,000백 정도이고 대부분이 자국에서 소비됩니다. 즉, 파나마 커피는 세계시장보다 ‘파나마 사람들에게 먼저 사랑받는 커피’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게이샤 커피가 이렇게 유명해질 수 있었던 건, 그만큼 “압도적인 존재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베스트 오브 파나마,

한 나라의 운명을 바꾼 순간


파나마가 커피 생산국이라는 사실조차 널리 알려지지 않았던 1996년. 스페셜티 커피 협회가 주축이 되어 ‘베스트 오브 파나마(BOP)’라는 작은 대회를 열었습니다. 커피 가격 하락이 끝없이 이어지던 시기였고, 농부들은 깊은 절망 속에서 생계를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작은 희망이 필요했습니다. “파나마에도, 세계가 인정할 만한 커피가 있다.”라는 믿음 하나로 시작된 대회였지요. 대회는 처음부터 주목받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미국 바이어들이 참여하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2004년, 운명 같은 한 해가 찾아옵니다. 라 에스메랄다 농장이 출품한 한 커피가 심사위원들의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은 것입니다. 재스민의 우아한 향, 복숭아의 달콤함, 그리고 한동안 어딘가 머물러 있는 긴 여운. 이 새로운 커피는 그해 경매에서 파운드당 21달러라는 놀라운 가격에 낙찰됩니다. 스페셜티 커피 시장의 흐름을 바꾸는 결정적 순간이었습니다.


WhatsApp-Image-2025-04-12-at-2.47.14-PM.jpg
WhatsApp-Image-2025-04-12-at-2.47.15-PM.jpg
WhatsApp-Image-2025-04-12-at-2.47.16-PM.jpg ⓒ https://bestofpanama.org/


하지만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뒤에는 또 다른 이야기들이 있었습니다. 2005년, 수많은 농부들이 희망을 품고 출품했지만, 1위를 제외한 커피들의 평균가는 고작 3.28달러에 머물렀습니다. 게이샤 커피가 모든 스포트라이트를 독점한 만큼, 오히려 다른 커피들은 더 빛을 잃어버린 셈이었지요.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게이샤 커피를 키우고 싶다’는 열망이 커피 산지 곳곳에서 타오르기 시작했습니다. 파나마라는 나라의 이름을 세계에 알리고 싶었던 농부들에게, 게이샤 커피는 새로운 희망이 되었습니다.



게이샤 커피 = 파마나 커피?


IMG_6383.JPG
IMG_6368.JPG Ⓒ Yunseon Lee


많은 사람들이 “게이샤 커피는 파나마 커피"라고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게이샤 커피의 뿌리는 완전히 다른 곳에 있습니다. 바로 에티오피아입니다. 1931년, 에티오피아 남서쪽 ‘게샤(Gesha)’마을 근처. 한 영국 외교관이 서로 다른 모양의 커피나무들에서 체리를 채집했습니다. 그 씨앗들은 케냐, 우간다, 탄자니아를 거쳐 코스타리카로 옮겨졌고, 여러 실험과 실패 끝에 1963년 파나마로 들어오게 됩니다. 하지만 파나마에서도 처음부터 환영받은 품종은 아니었습니다. 수확량은 적었고, 맛은 심심했습니다. 커피로써 매력도, 가능성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더 필요했던 것뿐이었습니다.


2004년, 라 에스메랄다 농장은 우연히 혹은 운명처럼 농장의 높은 고도, 척박한 토양의 한 구역에서 자란 게이샤 커피 체리가 다른 커피들과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알아챕니다. 강하고 또렷한 향미, 이전에 경험해 본 적 없는 우아함. 그제야 사람들은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게이샤 커피에게 필요한 건, 단지 ‘적합한 땅’이었다는 것을. 게이샤 커피는 그렇게, 파나마에서 비로소 자신의 이름을 찾게 된 품종입니다. 그리고 그 첫 발견을 계기로 스페셜티 시장의 역사가 바뀌었습니다.



스크린샷 2025-11-03 오후 6.04.18.png ⓒunsplash


게이샤 커피의 이야기는 결국, 게이샤 커피가 떠난 긴 여정처럼 느껴집니다. 에티오피아의 깊은 숲에서 태어나, 낯선 대륙을 떠돌다, 마침내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땅을 만나 꽃을 피운 커피. 우리는 그 오랜 시간의 실패와 발견, 우연과 선택, 그리고 누군가의 끈질긴 신념이 담긴 결실을 한 잔으로 마주하고 있는 셈입니다.


그래서 게이샤 커피를 마시는 순간, 향과 맛을 넘어 어떤 장면이 마음에 남습니다. 바람이 스치는 고산지대의 공기, 농부의 손끝에 쌓인 시간, 처음 그 향을 맡고 놀랐던 한 심사위원의 표정까지. 모두 한 잔에 스며 있는 듯하죠.


다음 편에서는, 테라로사가 이 특별한 커피를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지, 왜 테라로사에게 ‘게이샤 커피’가 단순한 원두 이상의 의미가 되었는지 들려드리려 합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커피의 품격 Cup of Excellen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