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합성은 식물만 한다고 하는 데, 때때로 사람도 광합성이 필요하다. 방 안에만 틀어박혀 있으면 부정적인 생각에 젖어 들어 씻는 것도, 청소하는 것도, 먹는 것도 잊은 채 돌처럼 굳어간다. 이 우울감에 지지 않으려면 우선 싫어도 밖으로 나와야 한다. 혼자서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는 것이 힘들다면 반강제로 일어나 보자. 나의 경우 우리 집 고양이와 강아지가 나를 침대 밖으로 끄집어내 줬다.
1. 우리 집 고양이
원래부터 내향적이고 집에서 잘 나오지 않는 슈퍼 집순이인 나는 침대에 누워서 영화나 드라마 보는 것을 좋아하고 나갈 일이 없으면 잘 씻지도 않는 편이었다. 그런 와중에 우리 집에 새 가족이 생겼다. 푸른빛이 감도는 회색털과 녹색의 눈을 가진 러시안블루 고양이었다. 지인이 비싸게 분양받았는 데 알고 보니 아들이 고양이 알레르기가 있어서 못 키우게 됐다며 입양하자마자 파양 하는 바람에 우리 집에 오게 되었다.
고양이는 생후 2개월 차에 집에 왔고, 지금은 6살이 되었다. 이름은 오래오래 살라고 '오래'의 충청도 사투리인 '도래'로 지었다. 엄마는 고양이 관리의 전권을 나에게 일임했다. 조그만 아기 고양이가 내 손바닥 위에서 잠들던 날, 이 아이를 끝까지 책임져야겠다는 의무감이 생겼다.
침대에만 누워있을 수 없었다. 화장실 청소를 해줘야 하고, 시간 되면 밥을 줘야 했고, 음수량을 채우려 매일 아침 130ml의 츄르탕을 만들고, 토하면 누워있다가도 바로 일어나 치워줘야 했다. 그뿐만 아니라 털 때문에 한 달에 한번 이불빨래를 하고, 매일 청소기를 돌리고, 아침저녁으로 낚싯대를 흔들어주고, 아프면 켄넬에 넣어 바로 병원에 달려가야 했다.
특히나 공무원 준비를 할 때는 정말 큰 힘이 됐다. 공부하다 지치면 아무리 같은 자리를 읽어도 글자가 눈에서 튕겨져 나갈때가 있는데 그럴때면 속이 답답해서 터져버릴것만 같았다. 도래는 무심하게 와서 책 위에서 식빵을 구웠다. 그러면 잠깐 공부를 내려놓고 길쭉하고 둥그스름한 등을 쓰다듬었다. 마음이 가라앉았다. (실제로 반려동물을 쓰다듬을 때 스트레스가 줄어든다는 미국의 연구결과가 있다.) 12시 넘어서 지쳐 잠들 때는 골골 송을 부르면서 배에 꾹꾹이를 받으며 잠에 들었다. 우리 집 고양이는 자기 연민과 자괴감에 빠져 힘이 들 때면 그렇게 조용한 위로를 건넸다.
지금은 6살. 사람 나이로 41살. 내년이면 중년으로 접어든다. 아직까진 잔병치레 없이 잘 살고 있다. 나의 오랜 룸메이트로서 오래오래 함께했으면 한다.
2. 천방지축 강아지
공시생 시절 아파트 안에 마련된 독서실에 다녔다. 10시부터 12시까지 밥 먹는 시간 빼고 책상 앞에 앉아있었다. 그러니 허리 상태는 엉망이 되고 살은 15kg 이상 쪘다. 운동 할 시간도 줄이니 체력도 점점 안 좋아져서 나중엔 생존을 위해 혼자서 단지 안을 걸어다녔다. 같은 독서실에서 공무원 준비를 하던, 자주 마주쳐서 내적 친밀도가 쌓인 분이 강아지와 산책하는 모습을 간혹 보게 되었는데, 둘이 함께해서 외롭지 않은 그 산책이 부러웠다.
이젠 부럽지 않다. 2개월 전에 강아지를 입양했기 때문이다!
아는 분이 바닷가에 돌아다니던 들개 무리를 구조했는데 그중에 한 마리가 바위틈에 새끼 8마리를 낳아서 키우고 있었다. 새끼 전부를 구조해 어느정도 케어를 하시던 분이 몇마리는 입양을 보낼 계획이라고 하셨다. 우리에게도 한마리 데려가라고 하셨는데 집에 고양이도 있으니 처음엔 좀 더 신중하게 고민하고 데려오려고 했다. 근데 하필 강아지를 보러 간 날 바닷가에 천둥번개가 치며 비가 왔다. 이미 두 마리의 새끼가 펜스를 넘어서 나갔다가 바다로 휩쓸려 사라졌다고 했다. 어미개와 새끼들도 바닷바람에 흩뿌리는 비때문에 몸이 축축했다. 도저히 그냥 갈 수가 없어서 귤 박스에 담아 집으로 데려왔다.
천둥치는 날 우리집에 와서 '천둥이'가 되었다.
강아지는 고양이보다 손이 5배는 더 갔다. 다행히 배변은 잘 가렸다. 그렇지만 활동량이 엄청났고, 식탐이 강했고, 고양이 응가와 모래를 먹었다. 고양이 응가와 모래를 맛있게 먹어준 덕분에 알레르기반응때문에 외이도염에 걸려 꽤나 고생했다. 지금도 고양이 응가에 환장한다. 병원에 물어보니 고양이 사료가 고단백이라 응가도 고단백이어서 강아지들이 좋아한다고 한다. 강아지용 프로틴 바(?)인 셈인 것이다. 나이를 먹으면 흥미가 떨어진다니 고양이 화장실을 높이 올려놓고 흥미를 끊길때까지 기다려 보는 수 밖에.
고양이만 있었을 때는 함께 누워있는 시간이 많았다. 하지만 사람 나이 5살의 영유아 강아지가 집에 오니 엉덩이를 소파에 붙일 시간이 없었다. 밥 주고, 배변패드 갈아주고, 가구나 카펫 이빨로 뜯지 않게 해야하고, 청소기 돌리고, 물걸레질하고, 계속 장난감 던져주고, 산책 2시간. 살이 일주일에 1kg 이상 빠졌다. 2달간 공시 생떼 찐 15kg 중에 총 10kg을 뺐다.
계속 움직여야 해서 우울할 틈이 없다. 산책을 나가야 하니 씻어야 하고, 옷을 갈아입어야 하고, 적어도 30분은 밖에 나가 걸어야 하고, 나가서 걷고 뛰면 땀이 흘러 또 씻어야 한다. 누우면 생각할 시간도 없이 깊은 잠에 빠진다.
밖에 나가면 다른 견주들과 인사를 나누고 대화도 하고 일 외의 다양한 이야기도 나눌 수 있다. 방에서 혼자 계속 답도 없는 생각을 하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
지금은 강아지를 자랑하려고 멍스타 그램도 하고 있다. 나는 내가 이렇게 부지런해질 수 있다는 것을 매일 깨닫고 놀라는 중이다.
이 글을 읽고 조울증, 우울증 치료를 위해 반려동물을 입양하겠다는 생각은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반려동물을 치료 도구로 쓰라는 말이 아니라 책임져야 할 가족으로서 우울함에도 불구하고 당신의 반려동물을 위해 몸을 일으켜 움직이라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오늘의 글을 다 읽었다면 함께 살고 있는 반려동물과 한번 눈을 맞춰보자. 그 친구는 오직 당신밖에 없다. 그 친구들이 당신에게 주는 사랑만큼 당신도 오늘만큼은 아이에게 오롯이 사랑을 주는 것은 어떨까. 아, 물론 반려동물이 없는 사람도 마음속에 작은 멍멍이 하나 떠올려 함께 밖으로 나가 얼굴에 스치는 시원한 바람을 느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