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마르티아 Hamartia 란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서 처음 사용된 용어이다. 많많은 능력의 소유자인 주인공이 순간의 '판단의 잘못이나 비극적 결함'을 뜻한다. 희극이나 비극에 많이 나오는 것으로 다른 사람보다 뛰어난 재능과 인성을 가진 주인공이 그의 악의 때문이 아니라 순간적이고 일시적인 잘못으로인해 소중한 많은 것을 잃고 인생의 파국을 맞이하게 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주인공의 남다른 능력에도 불구하고 그가 행한 결함의 크기는 사소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로 인해 최선을 다해 살아왔던 그의 모든 노력과 시간이 한순간에 날아가 버리게 되고 결국 종말에 이르러서는 커다란 비극, 즉 죽음으로 끝을 낼 수도 있는 황은 누구에게나 있다.
영웅들은 다 치명적 결점을 가지고 있다. 오디푸스의 하마르티아는 다혈질이다. 오디푸스의 딸 안티고네의 하마르티아는 '인간다움'이다. 섭정 크레온은 죽은 안티고네의 오빠를 배신자로 규정하고 매장을 금지했지만, 안티고네는 이 명령을 어기고 장례를 치르다가 사형을 선고 받고 자살했다. 오빠에 대한 인간적인 연민을 포기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영웅들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는 결점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인간은 불완전한 것이다. 하지만 완전하다고 착각하고 사는 경우가 많다. 좋은 점을 갖추기 위해 애쓰기보다는 자신의 단점마저 좋은 방향으로 쓰기 위해 애쓰는게 더 나아보이기도 한다.
나 역시 '나에게는 절대 일어나지 않을거야'라는 자신감이 있었다. 그 자신감은 나의 눈을 가렸고 상황을 정확하게 바라보지 못하게 했다. 자신감이 아니라 오만함이었다. 나를 지켜주던 자신감이 순간 나의 눈을 가렸다. 나의 눈을 가린 자신감은 순간 오만함으로 변질되어 눈앞의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만들었던 것 같다.
이제서야 비로소
다른 사람에게 일어난 일은 나에게도 일어난다는 겸손함을 가지게 되었다.
내가 보는 현상을 다른 눈으로도 보는 지혜를 갖추어야 한다. 하다 못해 다른 사람의 의견을 묻는 자세도 필요하다. 내가 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겸손의 자세가 필요하다.
매사에 자신의 의견을 정하려고 하는 것이 결국은 하마르티야를 범할 수도 있다.
때로는 보류할 줄도 알고, 미루줄 도 알아야 할 것 같다.
내가 보는 것은 단지 장님 코끼리 만지듯이 전체가 아니라 전체의 일부일수도 있다는 한계를 인정하는 것이 자신의 하마르티아를 극복하는 일이 아닐까 싶다.